[이야기의 이야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두 번째 이야기 '오즈의 마법사'
글 입력 2017.11.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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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꽉 찬 대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것 저것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음...... 그래서, 하고 싶은 게 결국 뭐예요?"

  최근 몇 달 사이에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몇 번 받을 때마다 무언가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곤 해서 안그래도 찜찜하던 차에 저런 반응과 마주하니 당황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말했던 내용을 곱씹어 보았더니 질문을 했던 상대방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만 줄줄 늘어놓았던 거다.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 솔직하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뭘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는데 예상과 달리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젠가부터 남들에게 볼품이 없어 보일까봐, 철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얼까봐 마음 속 보이지 않는 한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문제는 숨어버린 그 답을 내 마음의 주인인 나조차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사라진 빈 자리를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의 탈을 쓴 채 메꾸고 있었다. 숨어버린 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정말로 즐거워서 설렘을 느끼며 했던 일이 무엇일까 돌이켜보던 중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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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나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좋아했던 걸 뽑으라면 떠오르는 몇 가지 중 하나가 '오즈 시리즈'다. <오즈의 마법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는 사실 시리즈 열네 권 중 첫 번째 책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의 내용일 뿐이다. 원작자인 L.프랭크 바움이 쓴 책만 무려 열네 권인 오즈 시리즈는 200여명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따로 지도까지 있을 정도로 방대한 작품이다. 1900년을 시작으로 1920년까지 20년에 걸쳐 출간된 오즈 시리즈 열네 권은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특히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내용인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는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은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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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그 '전 세계 사람들' 중 하나로 12살에서 13살 무렵 오즈에 푹 빠져 있었다. 열네 권의 책을 모두 읽으며 수많은 캐릭터들의 이름을 줄줄 외웠다.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들의 그림을 그린 후 옆에 설명을 써놓은 일종의 백과사전을 손수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오즈클럽' 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오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한 두 편 올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오즈 시리즈를 읽으며 작가 L.프랭크 바움이 쓴 머리말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했는데 그는 스스로를 '오즈의 왕실 역사가'라 칭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의 일을 기록하듯 글을 썼다. 어릴 때는 그런 머리말을 보며 이 작가는 오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만든 세상 속의 역사가라니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정말 즐겁지 않을까? 어릴 적 나 역시 그런 세상의 창조자가 되기를 꿈꿨기 때문에 더욱 오즈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봐도 출간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을 어떻게 그렇게 열렬히 좋아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그 때의 나는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망설이는 기색조차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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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오즈의 이야기로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바움이 처음에는 오즈의 한계를 느끼고 1910년,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인 <오즈의 에메랄드 시(The Emerald City of Oz)>를 끝으로 더 이상 오즈 이야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 두 번째는 그가 오즈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소설과 연극을 창작했지만 결과가 녹록치 않았다는 것. 작가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바움은 <오즈의 에메랄드 시> 외에도 여덟 권의 오즈 이야기를 더 썼고, 그 책들은 모두 반응이 좋았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열네 권의 오즈 시리즈가 완성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픈 나는 궁금해졌다. 과연 바움에게 나머지 여덟 권의 책을 쓰는 건 하고 싶은 일에 가까웠을까 해야 하는 일에 가까웠을까.

  어느 쪽이었든 중요한 건 그가 작품을 넘어선 하나의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오즈의 마법사'를 검색하면 그 시리즈가 40여권이나 된다. 바움이 쓴 열네 권을 제외한 나머지 스무 여섯권은 그 매력적인 세상을 사랑한 다른 작가들과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후속편이다. 물론 공식 시리즈만 40권이고 비공식적으로는 수많은 후속편들이 지금도 창작되고 있다. 또한 오즈 시리즈의 팬들이 만든 사이트 오즈클럽에는 바움이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오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쩌면 바움이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썩 내키지 않아하며 썼을지도 모르는 오즈 시리즈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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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L.프랭크 바움


  둘러보면 백프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늘 있다. 과거에는 하고 싶은 일이었을지라도 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괜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 일이 싫어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경계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는 게 더욱 필요한 게 아닐까? 그게 비록 미래에는 '해야 할 일'이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처음부터 해야 할 일만을 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그게 '해야 할 일'이 되는 건 많이 다르다. 후자의 경우 더 오랫동안 열심히 애정을 가지고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이 다시 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써 놓고도 나는 좀처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자꾸만 숨어버리는 내 마음 속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찾아다녀야 할 것 같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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