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05. 더렵혀지고 싶지 않아요 : 김세옥, 하양

글 입력 2017.10.2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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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當身)

1.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2. 문어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 * 5회는 인터뷰 내용을 단편 소설의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인터뷰어의 생각과 인터뷰이의 답변이 문장에 혼재되어 있습니다.
모든 문장을 인터뷰이의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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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오늘 처음으로 인터뷰 하러 간다? 응. 제주도는 어때? 더워? 여기는 추워.
 출근은 했어? 응. 어, 나도 잘하고 올게."


 당신은 설렜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어색한 안정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엄마와의 통화는 당신의 삶에 주어지지 않았던 가정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두르는 시작이었다. 문을 닫으며 당신은 인터뷰가 끝나면 짐을 싸야지, 생각했다. 비가 온 거리에는 깨끗함과 서늘함이 섞여 있었다. 빼꼼 얼굴을 내미는 해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당신은 걸으면서 당신의 그림을 생각했다. 당신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던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이 쌓여 인터뷰를 하러 가는 이 순간을 생각했다. 하양은 언제나 그랬듯 조용히 당신의 뒤를 따랐다.


 당신은 그렸다.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당신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고 그저 웃어주었다. 그게 좋았다. 종이 바깥에서는 당신에게 삶을 물려준 이가 당신의 삶을 가장 괴롭혔다. 좋아하는 그림도, 감정도, 삶도 부정하는 존재 앞에 어떤 위로도 얻지 못하고 상처는 곪아갔다. 바다는 그때부터 좋아했다. 고요한 밤, 해변을 거닐고 있노라면 울음소리는 파도소리에 묻히고, 눈물의 짠 맛은 바다 짠 내와 섞였다. 모래사장에 앉아 한 차례 울고 눈을 들어도 바다는 거기에 있어주었다. 다 울어도 바다는 거기에 있어줄 것이다. 다 울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까? 생각이 들 때는 다시 얼굴을 묻었다.


 당신은 웃었다. 눈물이 마를 날은 오지 않을테니, 웃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우울한 얼굴로 다니면 정말 우울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우울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우울한 당신을 싫어했던 것은 당신이었다. 그림은 기록이다. 당신을 기록하는 그림에 우울한 당신은 없었다. 우울한 당신이 싫었으니까.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을 화폭에 담았다. 상처받은 어린 당신은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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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만 힘든 게 아니야. 힘든 척 하지 마렴.”


 당신은 깨달았다.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겠구나.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교수의 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완벽한 타인 앞에 당신은 무너졌다. 눈이 아플 정도로 눈물을 쏟으며 당신은 생각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더 이상 당신을 외면하고 살지 못하겠다고. 더 이상 당신을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고. 당신은 그렇게 우울한 당신을 끌어안았다. 우울은 그렇게 당신이 되었다. 도망치듯 제주를 떠났다. 아픔, 두려움, 상처. 당신 우울의 시작지인 고향을 도망치듯 떠났다.


 당신은 다시 그렸다. 남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 당신을 그렸다. 우울한 당신을 인정하자 주위는 그릴 것으로 가득했다. 우울은 여전히 싫었지만 당신은 우울을 부정하지 않았다.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일상의 순간을 화폭에 담고, 당신의 감정을 그 위에 얹었다. 그렇게 하양이 태어났다. 하양은 당신이 바라는 이상이었다. 가장 완전하지만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색. 한 번 더럽혀지면 되돌릴 수 없는 색. 지킬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 지키고 싶은 색. 하양은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하양을 통해 당신은 많은 감정을 그렸다. 당신의 감정이 당신만의 것이 아님을 느끼고,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울어도 된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하양을 좋아했다. 당신은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신은 괴로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시작하니 그림을 그릴 시간도, 힘도 없었다. 하양이 옆에서 당신을 쳐다봤다. 당신은 그런 하양이 싫어 눈을 감아버렸다. 넌 인기가 많으니까. 넌 사람들을 위로해주니까. 넌 상냥하니까. 당신은 하양이 부러웠다. 당신이 만든 존재인데도 하양이 부러웠다. 억지로 잡은 펜은 당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당신은 잠시 펜을 놓았다.


 당신은 쉬었다. 쉬고 싶었다. 좋아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좋은 책을 읽고, 생각나는 게 있으면 낙서장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다시 그리고 싶어지기 전까지 가만히 쉬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13월을 만들어서라도. 쉬면서 당신은 당신을 보듬고 싶었다. 세상은 지금껏 당신을 보듬어주지 않았기에, 당신을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은 당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다. 마음의 공간을 꾸역꾸역 차지해오는 일들을 비워내기 위해 당신은 여백의 시간을 가졌다.


 당신은 하양의 손을 잡았다. 결국 당신은 다시 그림으로 돌아온다. 당신에게 삶은 그림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밖에는 기록하는 방식을 알지 못하니까. 아니, 그림보다 정확히 기록하는 방식은 당신에게 없으니까. 당신은 펜을 잡는다. 하양이 발표한 그림들을 많은 사람들은 좋아해주었다. 당신은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호응을 얻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당신 스스로 계기를 마련했다. 그림으로 돌아올 핑계를 당신 스스로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손을 잡게 되는 하양처럼, 당신에게 그림은 어느 샌가 손에 잡혀있는 당신의 기록이었다. 당신이었다.


 당신은 제주로 돌아간다. 당신에게 아픔을 주었던 곳, 당신에게 상처를 준 곳, 당신에게 우울을 선사한 곳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당신의 바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월미도의 바다는 제주의 바다와 달랐다. 새카만 물은 너무도 냉정해 보여서 당신을 위로해준 바다와는 너무도 다르게 보였다. 너무 힘들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물론 힘들지만 당신에게 제주는 아픈 손가락이었는지 모르겠다. 아파서 싫지만 결국 당신의 일부인 아픈 고향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궁금하다. 하양과 함께 돌아가는 제주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당신을 한 번도 지켜주지 않은 가정이 어떤 모습으로 갖춰질지 궁금하다. 엄마와 통화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할 때마다 이상적인 가정이 당신 삶에도 존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당신은 아픔을 준 고향으로 돌아감으로 변화하게 될 당신의 삶이 궁금하다. 우리는 그런 당신이 그릴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당신은 하양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저요? 감정, 우울, 하얀 강아지. 이렇게 세 단어가 저를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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