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연극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리뷰
글 입력 2017.09.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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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이라는, 길고 직설적인 제목을 처음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연극이 그 답을 알려줄 거라 기대하며 객석에 앉지만 연극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은 2시간 내내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극은 제목과는 반대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세 인물의 몸개그와 시덥잖은 농담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극장을 메우는 건 눈물이 아닌 관객들의 웃음소리다. 그러나 연극이 끝난 뒤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이 무엇인지 아주 명확히 알 수 있다. 언제나 좋은 연극은 관객에게 설명하는 대신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은 좋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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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띨빡, 세수, 타짜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오직 보험사기로 한 탕 거하게 해먹을 생각 뿐인 '밑바닥 인생' 들이다. 이들은 1980년 5월의 광주에 살면서도 시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 의지도 없다.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대 소리도 이들에게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소음일 뿐이다. 그러나 개인이 사회 속에 살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 극이 전개되면서 세 사람의 삶에도 1980년 광주의 비극이 스며든다. 이를테면 띨빡 일행이 띨빡의 치료비를 뜯어내러 '청하물산'의 사장을 만나러 갔다 민주열사들의 신상정보가 적혀 있는 장부를 훔쳐오는 바람에 정보부 사람들과 추격전을 벌이는 식이다. 이런 장면에서조차 시대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띨빡의 일행들은 청하물산이 정보부 산하 조직일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간첩 조직의 본부일 거라 믿는다는 점이 웃음 포인트다. 여기에 잠잠할 만하면 나오는 광주를 침략했다는 외계인 이야기까지 더해져 극은 절정으로 향해 간다. 띨빡 일행과 광주 시민들, 계엄군, 경찰, 정보부 사람들이 얽히고 섥히며 따로 따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하나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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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역사적 사건이라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이 달라진다.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은 5.18광주 민주화 운동은 시국을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시위대를 '빨갱이'라 여기는 밑바닥 인생 셋의 입을 빌려 블랙코미디의 형태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했다. 이런 방식은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보던 구도가 아니라 신선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꼭 진지하게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이야기를 할 사람도 많고 할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 확실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 그 당시 광주에 살았던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고 그들 각각의 눈에 이 비극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들 각자가 들려주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야기는 역사를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연극을 보고나서 더 다양한 사람들의 입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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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컷 웃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과연 우리가 37년 전 그 떄 그 사람들을 충분히 애도하였는지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는 연극 소개글은 옳았다. 시국을 알지 못한 채 민주화 운동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시국적인 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한 세 사람의 최후를 보며 그런 죽음조차 너무 흔해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았을 1980년의 광주를 떠올렸다. 우리는 마땅히 애도해야 하는 죽음들을 그저 그 시대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친척이라도 잘 알지 못하는 친척이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애도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애도해야 할 죽음을 알고 애도하는 걸 배우는 것이야말로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한 첫걸음이다.





<공연 정보>


일시: 2017.9.21-10.1
화-금 20시, 토 15시, 19시, 일 16시, 월 쉼.

장소: 예술공간 오르다

티켓: 전석 30000원
(학생할인 10000원. 할인제도는 인터파크 참조)

러닝타임: 90분

문의: 창작집단 상상두목 0505-041-0707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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