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렇게, 아이돌 덕후가 된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7.2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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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어언 십몇 년 전, 아마도 열 살 그 언저리쯤이었던 것 같다. 나의 첫 덕질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 ‘오빠들’ 덕분에 시작되었고, 그렇게 나의 덕후 인생은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자칭 ‘프로 덕후’의 경지에 오른 필자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덕후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아이돌 덕후라면 대부분 공감할 ‘덕질’의 전반적인 과정을 입덕 초기부터 순서대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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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덕질의 시작, 입덕기

 세상에 수많은 아이돌들과 그 팬들이 있듯, 각각의 입덕 과정은 모두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모든 덕후들의 입덕은 절대 의도적이지 않다. 그저 물 흐르듯, 또는 화장솜에 스킨을 적시듯 자연스럽고 우연하게 시작된다. 아직 그 어느 누구의 팬도 아닌 사람이 있다면, 항상 매사에 조심하길 바란다. 직캠, 직찍, 예능, 음방… 그 계기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 혹은 '그녀'가 그 이후 계속 궁금하고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면, 곧 노래가사 그대로 당신의 덕질은 처음에는 ‘달콤하고 평범하게’ 시작되어 이윽고 ‘운명처럼 깊숙하게’ 당신의 심장을 파고들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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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덕질은 자아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입덕 부정기와 현실인정의 시간

 입덕한 아이돌의 사진 또는 영상을 보며 어느새 흐뭇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몇몇의 초덕(초보 덕후)들에게는 ‘입덕 부정기’가 한번씩 찾아오게 된다. ‘입덕 부정기’란 자신이 덕질을 시작했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정의 시기로, 보통 이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당황하여 해당 아이돌의 사진, 영상 등 자료를 스스로 보지 않으려 애쓰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피하려 하면 할수록 금단현상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기 마련. ‘떡밥(아이돌의 자료. 소식 등을 일컫는 말)’이 없으면 곧 손발이 떨리게 되는 것이 입덕한 자의 본능이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그대,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아성찰과 현실인정의 시간이 찾아오리니. 깊은 번뇌를 통해 자신이 진짜 ‘덕후’임을 깨닫는 순간, 다시금 행복과 기쁨의 세계가 당신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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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많은 ‘떡밥’들, 내 하드 속에 저장!- ‘현망진창’이 되다

 그렇게 입덕 시기와 현실 부정기를 거쳐 비로소 진정한 덕질을 시작했다면, 당신은 먼저 ‘Ctrl+C’와 ’Ctrl+V’를 무한반복하고, 보다 더 많은 용량을 갈망하며 빠른 속도로 당신이 가진 모든 저장공간들을 아이돌의 사진과 영상, 음성파일 등 수많은 ‘떡밥’들로 채워나가게 될 것이다. 마침내 당신의 ‘내 문서’와 ‘로컬 디스크’가 극도의 배부름에 시달리는 순간, 아마 당신은 약 65%의 확률로 외장하드라는 신세계에 눈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영상 복습과 떡밥 저장으로 외장하드와 머릿 속 지식이 채워져 갈 때 덕후의 마음은 뿌듯함과 행복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아이돌로 인해 ‘현망진창(현실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순간도 종종 있으니 항상 현실생활을 위해 너무 과도한 덕질은 지양할 것. 하지만 아마 마음대로 잘 되진 않을 것이다. 필자도 이미 ‘현망진창’일 때가 여럿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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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제는 화면 속에서 나와주지 않을래?- 로또보다 더 힘든 콘서트 티켓팅과 팬싸 당첨

 이제 어느 정도 영상과 짤들을 다 섭렵한 덕후라면, 내 아이돌을 ‘실물영접’ 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거기다 마침 새 앨범이 발매된다는 소식이 뜬다면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신곡 활동을 통해 팬들과 아이돌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다수 생기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돌들을 ‘실물영접’ 할 수 있는 기회로는 먼저 새 앨범 발매 쇼케이스, 팬 싸인회, 공중파 및 케이블의 음악방송과 토크쇼 방청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회들은 보통 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만 참여권을 주기 때문에, 남다른 당첨운을 가진 덕후에게 유리하다.

 한편, 티켓팅을 통해 실물을 볼 수 있는 콘서트나 팬미팅 등의 기회도 있는데, 이 또한 온전한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광클의 노력과 천운이 함께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티켓팅 시작과 동시에 수많은 팬들의 접속으로 인해 예매 사이트의 서버가 다운되거나 속도가 느려져 창이 제대로 뜨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만약 이 난관을 뚫고 가까스로 좌석선택창에 도달했더라도 이미 자리는 순식간에 없어지고 있을 것이고 남은 자리를 클릭하더라도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의 늪에 빠질 확률이 상당하다. 그렇게 눈앞에서 실물 영접의 기회를 광탈하게 될 때, 덕후들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실물 영접의 행운은 로또보다도 더 힘들고, 내 돈을 내가 쓰는 것도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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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덕질은 세상을 이롭게 한다- 생산적인 덕질에 도전하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듯, 덕질도 나날이 진화를 거듭한다. 이제 덕후들은 단순히 해당 아이돌의 생산물을 구매하는 ‘소비하는 덕질’의 개념을 넘어, 조직적으로 기부나 선행 등의 사회공헌활동은 물론, 다양한 문화활동을 기획하고 주최하기도 하는 ‘생산적인 덕질’을 해나가고 있다. 그 예로는 아이돌의 이름을 붙여 만든 숲이나 도서관, 학교 등을 국내외에 세우기도 하고, 팬덤이 주축이 되어 정기적인 자원봉사 모임을 만들거나 전시회 등의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것 등이 있다. 이러한 ‘선한’ 팬덤 문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이제 아이돌의 콘서트장에서 팬들의 ‘쌀 화환’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기도 했다. '생산적인 덕질'은 덕질을 하면서 의미있는 일도 하고, ‘내 가수’의 이미지도 덕후들의 선행을 통해 덩달아 긍정적으로 고취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덕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덕질 루틴에 신선한 변화를 주고 싶은 덕후가 있다면, ‘생산적 덕질’ 활동에 함께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덕질 라이프가 보다 뿌듯하고 풍요롭게 채워지는 것은 물론, 곧 수많은 덕후들로 인해 온 세상이 따뜻하고 행복해지리라.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청하 인스타그램)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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