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희로애락이 담긴 그의 술 사랑 이야기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글 입력 2017.07.2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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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에서부터 작가님의 깊은 술 사랑이 느껴진다. 제목이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이라니. 이제까지 낯선 곳에서 오는 설렘으로 인해 떠나는 사람은 봤어도, 술 하나로 전 세계를 누빈 사람은 니시카와 오사무 작가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술을 접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꽤 오랜 기간 술에 대한 짝사랑을 해왔음을 엿볼 수 있다.
    


*
각 나라별 술 마실 때 인사


아이슬란드·스웨덴·덴마크 : 스콜
아일랜드 : 슬론차
미국 : 치어스
이탈리아 : 살루테 (공식석상에서는 친친, 친한 사이에서는 사르테)
인도 : 무바라크
케냐 : 니뉴오
싱가포르 : 야므센
한국 : 건배
태국 : 챠이요
중국 : 북경은 간페이, 광동에서는 곤페이
독일·네덜란드 : 프로스트
일본 : 감빠이
하와이 : 비바비바, 오커레마루우마
필리핀 : 마부헤이
포르투갈·브라질 : 사우데
벨기에 : 상태와 프로스트
베트남 : 요우
멕시코 : 살루으
몽골의 게르 : 트루야가
프랑스 : 상테

(p10-11)



우선 그는 술을 마시기 전, 마실 때의 인사부터 곁들였다. 뭔가 작가와 함께 술 마시는 기분이 들게 한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안마당으로 나와 테이블 위에 글라스와 병을 올려놓고 날씨가 좋을 때에는 하루 종일 술잔만 기울였다. 어디에서 오는지는 모르지만 바람의 향기를 느끼고 가을에는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즐기며 글라스 안의 비노의 맛을 즐겼다."  (p100)



사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아빠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술로 속내를 털어놓는 일을 싫어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왜 굳이 술에 의존해서 털어놓는 것일까. 솔직히 조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인생을 안다면 조금은 아는 25살이 되니, 그 상황들이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당시는 몰랐던 아빠의 마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아, 아빠는 원래 술을 잘 마셨던 게 아니라, 거래처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려 잘 마시는 척을 하셨던 것이었구나. 그 동안 술잔에 담긴 고됨이 아닌, 자식의 미래를 위해 마신 거였구나.’하고 말이다.
 
내가 처음 술을 마셨던 순간이 대학생 때였다. 사실 마시고 싶진 않았지만, 즐거운 분위기 속에 나 혼자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또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돼 조금씩은 기울였던 것 같다. 술을 한 잔씩 마시면서 든 생각은 이 쓰디쓴 술을 아빠는 매일같이 마신다는 것에 대단함과 존경심을 느꼈던 듯하다. 언젠가 아빠께서 기분 좋을 때 마시는 술맛과 형식상 마시는 술맛은 사뭇 다르다고 했다. 그 당시는 ‘에이, 술맛이 다 쓰지. 뭐가 다르다는 거야.’라고 넘어갔지만, 요즘은 이 이야기가 절실히 와 닿는다. 사적으로 한 잔 기울일 때와 공적으로 기울일 때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랐다. 이처럼 그에게 술은 무르익은 분위기를 탐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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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병통조림 : 수르스트뢰밍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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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내리치는 모습 p44)

 

“생선이 썩어서 발효한 듯한 묘한 냄새가 풍긴다. 내용물은 청어의 머리, 몸통, 내장, 알 등을 썩힌 것이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젓갈을 더 삭힌 듯한 강렬한 맛. 게다가 엄청나게 짜고 맵다. 세균이 번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니, 강한 소금 때문에 세균이 번식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두 입을 먹었더니 모두 깜짝 놀라면서 잘 먹는다고 감탄을 한다. (중략) 나는 아콰비트를 한 모금 들이켜 입 안의 냄새를 제거했다. 이 통조림이 그 유명한 수르스트뢰밍이라고 한다.” (p40)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서 무엇인가를 바위에 지속적으로 내리치는 남자가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남자가 내리치는 것은 꽤 커다란 문어였다. 이미 죽었지만 아직 경직되지 않은 상태였다. 남자는 내가 다가가도 계속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문어를 소금으로 비벼대더니 다시 내려치기 시작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문어의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내리치지 않고 그대로 굽거나 데치면 육질이 단단해서 맛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여 차례를 거듭 내리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문어의 근육이 파괴되어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p44)
 
“생선에는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손님들은 정어리 숯불구이를 먹으면서 레드와인을 마시고 있다. 포르투갈의 짙은 레드와인이다. 이 레드와인이 구운 정어리와 잘 맞는 듯했다.” (p58)

“토막이 난 낙지의 다리들이 접시 위에서 정신없이 꿈틀거린다.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낙지가 아니다. 다리의 굵기는 우동 가락 정도. 젓가락으로 집었더니 플라스틱 접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요령을 구사해서 떼어내어 입에 넣었다. 그러자 빨판이 즉시 뺨 안쪽에 달라붙는다. 이가 닿을 수 있도록 뺨을 일그러뜨려 힘주어 씹는다. 이번에는 잇몸에 달라붙는다. 입술로 밀어내어 씹는다. 씹을 때의 촉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쾌하다. 이번에는 소금장에 찍어 먹었다. 참기름에 소금을 넣었을 뿐이지만 참기름의 향 때문인지 고소한 맛과 소금의 짠맛이 어우러지면서 낙지와 궁합이 잘 맞는다.” (p176)
 


예전에 교수님께서 여행을 떠나면, 무조건 그 나라의 음식과 술을 맛보라는 이야길하셨다. 그 나라만의 고유의 음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맛을 보기 위해 떠나는 재미도 있다고 했다. 니시카와 오사무 작가님은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정신이 돋보였다. 대다수가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처음 먹어보는 음식은 꺼려하기 마련인데, 그런 호기심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았다. 꼭 먹어보고야 마는 끈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 맛을 제대로 독자들에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장들을 하나 하나 읽으면서 나 또한 동일시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표현들이 강렬하고, 좋았다. 섬세하고도, 차분하게 음미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질 정도였다.



“그리스의 산은 별로 정취가 없다. 메마른 땅이 그대로 드러나서 온통 갈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는 산불이 며칠 동안 이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만큼 메말라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육지를 감싸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바다는 푸른색으로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섬 미코노스가 있다.” (p43)

“저녁, 경주라도 하듯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는 좁은 도로에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을 구경 삼아 바라보면서 나는 아페리티프를 마시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도로 한가운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있어도 자동차 운전자는 그 사람들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비켜간다는 점이다. 보행자에게 우선권이 있는 듯하다. 인도에서 소가 도로에 누워 있는 경우에 자동차가 피해가는 것과 비슷하다.” (p70)
 


그의 책에 술과 안주만 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보았던 경관들도 담아져 있다.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휘귀한 풍경들을 문장으로 옮겨 놓았다. 이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독자들로 하여금 당장 여행을 떠나라고 권유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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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4)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지만 비노를 즐기는 데 쓸데없는 지식 따위는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을 습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는 하지만 사실은 혀나 몸이 기억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p104)

비노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최고의 비노를 마셔보고 비노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많이 마셔보는 것이다. 비노를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보다 몸으로 깨우치는 것이다.”  (p104)
 


자신이 뭔가를 잘 알고 싶다면, 그 무엇에 대해 깊이 집착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왜 이럴까부터 시작해서 계속 호기심을 갖고 끝까지 분석하려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습관이 없다면 절대로 그것을 잘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니시카와 오사무 작가님이 지금까지 술에 대해 진정으로 잘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맛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과정을 거쳤는가에 대한 예리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이 책은 술맛이 좋다는 그런 내용이 아닌, 이 술맛은 어떠한 인생이 담겨 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러한 맛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그의 끊임없는 추리력이 한몫했으리라 생각된다. 지속적으로 술과 그에 어울리는 안주에 대한 탐구력이 그를 전문가로 만들게 한 힘이 엿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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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4)



“나는 이제 당시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었다. (중략) 항아리에 들어 있는 성게알젓, 식초에 절인 정어리, 파 무침, 미꾸라지, 민물 게, 작은 은어를 2밀리미터 정도로 두껍게 통째로 썰어서 여뀌식초나 매실식초를 뿌려 먹는 은어회, 은어 소금구이, 은어 된장찜, 오징어젓갈, 그리고 집 아래의 강에서 잡은 새우 소금구이, 말린 문절망둑 등이 아버지가 좋아하는 술안주로, 아버지는 술을 드실 때마다 이런 음식들을 안주로 자주 이용했다. 나도 우루카, 오징어젓갈, 성게알젓, 스지코 등을 몰래 훔쳐 먹어보았지만 아이의 입에는 도저히 맛이 있다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 음식들의 진정한 맛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니혼슈와 함께 그 맛을 음미해 보고 싶어진다.”  (p164)

  

나는 아직 아빠보다 나이가 많이 들진 않았지만, 요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 듯하다. 어린시절에는 아빠께서 좋아하던 것들을 간혹 이해 못 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야 아빠께서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럴 때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아, 아빠가 이런 맛 때문에 좋아하셨던 거구나.'하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도 비로소 다양한 맛에 눈을 뜬 '어른'이 되었구나하고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의 절반은 술에 관한 이야기로 이끌어 나가고 있지만, 읽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뭉클함이 있다. 아빠께서 술을 좋아하시게 된 이유와 작가님이 좋아하는 이유가 유사할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니시카와 오사무의 술에 대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우리 가족의 이야기에 회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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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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