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 데스트랩(Death Trap) > [공연예술]

미래를 향한 불안에 대하여
글 입력 2017.07.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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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 스릴러답게, 구석구석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보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나는 코미디 스릴러 장르를 처음 본다. 그래서인지 조금 당혹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이 극은 죽음을 희화화하지도 않았으며, 살인을 짜릿하고 재미있는 것처럼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극을 볼 때 코미디와 스릴러 중 어느 쪽에 치중해서 감상해야 할 지 헷갈렸다. 연극을 볼 땐 아무 생각 없이 배우들이 시키는 대로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줄거리를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재밌는 부분은 터무니없이 재밌었고, 깜짝 놀라야 할 부분에서는 정말 예측도 하지 못한 채 매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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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와 음향이 기가 막혔다.

 특히, 연극에서 느껴지는 흥취의 반 이상을 사운드트랙이 책임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과 배우들의 블로킹에 음악이 딱딱 들어맞는다. 더구나, 시드니 브륄 역을 맡은 강성진 배우와 심령술사 헬가 텐 도프 역을 맡은 한세라 배우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그들은 2시간 내내 사람을 한시도 지겹게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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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요소가 중요한 극이라, 줄거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우므로 공개된 시놉시스를 올리는 것으로 갈음하겠다.



연극내용에 대한 감상과 아쉬운 점


 어릴 적에 접한 그리스 신화에서 우리가 흔히 보았던 것처럼, 모든 일은 예언자(이 극에서는 심령술사)의 예언대로 행해진다. 역시나, 예언자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주인공들이 결국에는 예언에 따라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구조. '살인'과 그에 따른 '죽음'이 이 극의 가장 큰 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살인이 계속해서 시도되고, 실제로 일어나므로 사실상 유쾌한 결말의 극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살인자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불안과 공포, 혹은 출세에 대한 욕심이 살인을 저지르게끔 만든다.​살인은 잘못된 일이고, 이를 저지르고 나면 자기자신 역시 남은 평생 죗값을 치르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타인이 자신을 망가뜨리고 말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 누구보다도 출세하고 싶은 욕망과 같은 것들 때문에 죄를 저질러버리고 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검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극에 나오는 다섯 명의 인물 모두 조만간 일어날 미래의 일들을 짐작해본다. 누군가는 남의 일임에도 자신의 영적 능력을 통해 용감하게 미래의 일들을 직접 전하고, 누군가는 한없이 불안에 떨면서도 도덕적으로 삶을 살아나가고자 하며, 누군가는 보장되지 않은 성공을 위해 이성을 잃고 만다.
 
 우리는 확실치 않은 것에 대해, 그러나 분명히 닥칠 일들에 대해 한없이 약하다. 설령 모든 일이 정확히 예언되었다 할지라도 어디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우리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다.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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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이시여! 과거를 자랑하지 마옵소서!"

시드니 브릴에게 세익스피어를
인용하는 클리포드 앤더슨.


 앞날에 대한 불안 앞에선 돈도, 명예도, 심지어는 사랑도 무기력해질 뿐이다. 이 불안은 과거에 잘나갔던 나이든 극작가와 젊은 야망가로 하여금 현재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들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며, 평생 간직해온 도덕을 앗아간다.

 굳이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유머의 요소와 스릴러의 요소가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나하는 점이다. 이것은 지극히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전체적인 서사는 굉장히 비극적인 형태이면서도 코미디적인 측면을 사이사이에 억지로 우겨넣은 것 같다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다. 물론 이 느낌은 '코미디면 코미디고, 스릴러면 스릴러일 것이지' 하며 하나의 정체성만을 요구하는 보수적인 관점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장난을 치면서 웃음을 자아대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심각하고 진지한 장면으로 돌변하는 것은 어색해보였다. 관객을 깜짝 놀래키기 위한 방법이라기엔, 그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장면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코믹하기엔 불안과 살인을 다루는 스릴러 장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는지도 모른다.

 데스트랩은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웃고, 깜짝 놀라고, 소름끼쳐하면서 볼 수 있는 연극이다. 하지만 극작가가 이 극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역시 앞날에 대한 불안이 지닌 파괴적인 힘을 다루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연극적 장치들과 미리 알아채기 힘든 반전으로 인한 극적 재미가 보장되는 극으로써 데스트랩이 지닌 가치는 충분하다. 한여름 대학로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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