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설과 뮤지컬로 만난 "광염 소나타" [문화전반]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글 입력 2017.07.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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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대학수업때 처음으로 김동인 소설을 접했다. 처음부터 그의 대표 소설 <감자>보다는 <광염 소나타>가 끌렸었다. 피아노와 관련된 얘기가 아닐까 하고 관심이 갔었는데 작품을 읽고나서 아 김동인이란 사람이 왜 유미주의, 탐미주의의 대표 소설가라고 하는 것인지 이 책 한권만으로도 이해가면서도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예술 지상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말들로 토론했던 그날들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대학 졸업 후 내 기억속에 사라져가던 그가 다시금 회자되기 시작했다.

  바로 뮤지컬 <광염 소나타>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작품성에 대해 아쉽다곤 하지만 배우들의 연주, 노래, 연기 이 세 박자가 고루 갖춰져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소설책이 가지는 한계를 넘어 눈 앞에서 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니 확실히 강렬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뮤지컬 <광염 소나타>의 인기는 앞으로 1주 더 남은 공연까지도 모두 매진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광염 소나타>가 던지는 질문인 도덕성 결핍은 잠시 내려 놓고, 이번에 내가 주목한 것은 백성수의 살인동기이다. 그리고 소설을 다시 한번 읽으며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1. 줄거리에 대해

  주인공 백성수는 음악가로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머니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담배가게에 서 도둑질을 하지만, 결국 붙잡혀 6개월 동안 감옥에 지내게 된다. 이후에 감옥에서 나왔지만 어머니는 죽은 뒤였고, 집도 잃게 된다. 우연히 그 담배가게를 지나던 백성수는 그 동안 품고 있던 분노로 불을 지르게 되고, 근처 예배당으로 숨다가 피아노를 보고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광염소나타의 출발이 된다.

 그때 음악비평가 K씨가 그 음악을 목도하고, 힘있고 야성으로 충일된 예술이라며 다시 연주해보라고 하지만 다시 그 음악을 연주했을 때 전 만큼의 그런 느낌있는 연주를 하지 못한다. 결국, 백성수는 예술을 위해 계속해서 살인, 방화 등의 범죄를 벌이게 된다.



2.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

1) 예술의 탄생

  예술을 위한 예술로 살인이 허용되는 시대라고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인간은 지금 예술 속에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술의 희생으로. 그러나 백성수는 예술을 예술 그대로, 미를 최고의 가치관으로 두고 있다. 마지막 K가 말한 대목은 작가 김동인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대목으로 소설의 의미를 한 마디로 함축시킨다. 성수에 의해 살해 당한 사람들은 예술을 위한 희생으로써, 그리고 예술은 한 사람의 생명을 대표하는 것으로써 새로 탄생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탄생의 과정보다 예술의 탄생에 초점을 맞춘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개, 변변치 않은 사람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적어도 우리 예술가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 음악비평가 K씨 -


  이 대목은 예술에 대한 김동인의 생각을 함축시켜놓고 있지만, 한가지 생각해볼만한 것은 방화나 살인의 대상자이다. 무분별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마땅히 죽여야 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즉 "변변치 않은 사람"으로 한정시켜놓고 있다는 점이다. K는 변변치 않은 사람을 죽였기에 살인은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변치 않은 놈들을 죽였기에 변변치 않은 범죄가 되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를 사형시키는 것이 더 큰 죄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흉악범들에 대한 우리가 가지는 분노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살인마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살인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흉악범에게 피해를 당한 가족이든 누구든, 보복을 위해 죽임을 택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 또한 어떤 이유에서라도 살인은 정당화받지 못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 법에서는 말이다.

  살인 이후 백성수의 음악은 말 그대로 "광염소나타"를 완성해 나아가지만 그 음악의 힘도 점차적으로 처음보다 약해져만 간다. 살인에 익숙해지면 결국 그 "새로움"이란 것이 익숙함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어디 예술 뿐이던가, 창조를 하고 창작하는 모든 일에 "새로움"이 없으면 그 자체로 예술은 죽어버린 일이 되버린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또 다시 익숙해질 운명을 타고난다. 얼마나 무서운 상상인가. 살인에 익숙해져서 처음만큼의 강한 소나타를 완성할 수 없다니, 그래서 더는 살인을 멈출 수도 없는 백성수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하는 걸까.

  말그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예술가가 되버렸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그 무대는 함께 사는 세상 위해서 가능하기에, 결국 그 세상에 앞으로는 없다고 여길 그런 <소나타>를 내놓았지만 그는 평범하게는 살아갈 수 없었다. 결국 정신병원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작품을 세상에 내 놓은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K의 입장이라면 그들에게 예술은 삶보다도 더 큰 전부가 되는 것이다.


2) 우리를 억압해 온 것

필자가 유독 흥미롭게 본 대목은 다음과 같다.


"비상한 열정과 감격은 있어두 그것이 그대로 표현 안 된 것이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즉 성수의 어머니는 몹시 어진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성수의 교육을 몹시 힘을 들여서 착한 사람이 되도록, 이렇게 길렀습니다그려. 그 어진 교육 때문에 그가 하늘에서 타고난 광포성과 야성이 표면상에 나타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 타오르는 야성적 열정과 힘이 음보(音步)로 그려 놓으면 아주 힘없는, 말하자면 김빠진 술과 같이 되고 하는 것이 모두 그 때문이었습니다그려. 점잖고 어진 교훈이 그의 천분을 못 발휘하게 한 셈이지요."


  우리는 당연히 어리석은 사람보단 어지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냥 그것이 좋은 것이라 배워왔다.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가, 효자과 불효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 착한 사람이고 어떤 것이 나쁜 사람인가 그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만서도 대개의 선한 것은 착한 것이고 악한 것은 나쁨이라 일컬어지며 교육되어왔다. 그런데 그 마져도 작가 김동인은 K씨의 입장서 자신의 생각을 투철시킨다. 그 어진 교육이 바로 성수의 타고난 광포와 야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 한다. 그것이 성수의 내면에서 흐르던 모습을 세상에 내놓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우리도 그런 경우를 종종 만난다. 왠지 스스로를 막고 있는, 눈치보게 하는, 그리고 나는 하면 안될 것 같은, 해서는 안 될 무언가. 그렇다면 우리를 제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끔은  우리는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미쳤어 내가, 그때 진짜 미쳤나봐 왜 그랬지?"


  사실은 미친 것이 아니라 당연한 마음이었는지도.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일지 모른다. 우리는 마음을 언제나 제어하고 통제하고 산다. 사람은 언제나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기에. 그 와중에 우리를 유혹하는 다양한 소리들을 듣게 된다. 그 소리들과 타협하면서 우리의 진짜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자신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은 홀로 자란 것이 아니라 시대, 그리고 사상까지 모두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오늘의 '자신'이다. 우리의 정신 바탕에 깔려있는 유교사상이라고 말하면 좀 더 이해가 쉽다.

  K씨는 백성수가 그 만이 지닌 음악성을 표면상에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어머니로부터 착한 사람이 되도록 길러진 데에 있다고 보았다. 이 말은 곧 백성수가 태어나자마자 악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착한 사람으로 길러지기를 바라며, 성수의 본래 내재된 거칠고, 야생같은, 폭주하는 면모를 잊게끔 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것이, 그 사람 성수가, 감옥생활을 할 동안에 씻기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사람의 교양이라 하는 것은 온전히 씻지는 못하는 것이외다.

 
  즉 사람의 교양, 이성, 해서는 안되는 것, 나를 막고 있는 막 같은 존재들이, 그가 감옥생활을 하면서 분노로 들끓어졌지만 여전히 그는 양심과 부딪히며 존재한다.


3) 살인 동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광염소나타가 흐르는 듯하다. 분노가 들끓어 쉽게 살인을 하고, 시체토막에 유기에, 살인마들은 분노와 보복으로 또 다시 살인을 택한다. 그들의 마음에 이는 "성난 파도"를 잠재우지 못하고 계속 철썩 쳐대는 파도처럼 이어진다. 성수의 성향이 어떻듯 그는 살인자로 태어난 것이 아닌, 그가 살인을 하게 된계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저는 우연히 그 집 제가 전에 돈 오십여전을 훔친 집 앞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깊은 밤 사면은 고요한 데 그 집 앞에서 잘 곳을 구하느라고 헤매던 저는 문득 마음속에 무서운 복수의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이 집만 아니었더면, 이 집 주인이 조금만 인정이라는 것을 알았더면, 저는 그 불쌍한 제 어머니로서 길에까지 기어나와서 세상을 떠나게 하지는 않았겠습니다. 분묘가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하여 꽃 한 번 갖다가 꽂아보지 못한 이러한 불효도 이 집 때문이외다. 이러한 생각에 참지를 못하여, 그 집 앞에 가려 있는 볏짚에다가 불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서 불이 지븡로 옮아 가는 것을 다 본 뒤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나서 달아났습니다.


  백성수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의사를 만나야했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마침 지나가던 담배가게에 돈이 있었고 그걸 훔쳐야만 했다. 백성수가 심이 없는 인물도 결코 아니다. 그는 이미 어진 교육을 받고 착한 사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집 주인이 조금만 "인정"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이라는 대목은 조금만 내 심정을 헤아려줬다면, 조금만 아량을 베풀었더라면 나는 살인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코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소 라고,
 
  그 담배 가게 아저씨가 성수의 행동을 눈 감아 줬더라면 그리하여 6개월의 감옥행도 없었더라면 동시에 그런 소나타를 세상에 내놓을 수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절실하게 깨달은 백성수는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을 것이고, 혹은 그 아저씨가 돈을 빌려줘서 병을 치유했을 지도 모른다. 혹여 아니더라도 적어도 아픈 어머니가 아들을 찾다가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그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백성수의 엄마가 병을 치료했더라면 성수는 자식된 도리를 다 했음에 적어도 어머니께 미안함을 덜 수 있었을 것이고 아직은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과 고마움으로 아름다운 소나타가 탄생되었을 지 도 모를 일이다.

  즉 처음부터 예술을 위한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감옥행 이후 엄마의 죽음 등 이러한 분노의 응어리가 표출된 것 이다. 결국 백성수는 예술을 위한 예술로 살인을 벌이지만, 처음부터 살인을 하게 된 동기는 "분노와 복수"에 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예술을 위한 예술로 살인을 시작한 것이 아니며, 그가 살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살인을 예술을 위한 범죄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도 함께 얻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수와 비슷한 사례의 일들이 너무나도 세상에 많이 있다. 얼마 전 집행유예 기간 중 배고픔을 못 이겨 라면과 요구르트를 훔친 30대에게 법원은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캔 음료와 라면을 훔친 것이었다. 이것이 성수와 어떻게 다르겠는가. 결국 사람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라는 초점이 아닌 이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는 죄목에 초점을 맞추어서만 판결이 난 셈이다.

  그 주인이 조금만 "인정"이라는 걸 베풀었더라면, 우리 나라가 조금만 "아량"을 베풀었더라면 그 사람은 어쩌면 8개월이란 형벌에 살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희망으로 더 열심히 살았을 수도 있다. 물론 반대 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혹여 그 사람이 받을 충격과 상처가 어디로 어떻게 표출 될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흉악범이나, 그 변변찮은 사람개에게 정 많던 우리 법사회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광염소나타 전의 가난했던 성수와 저 배고픈 30대에겐 이렇게 정 없이 구는 걸까,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 못 된 것이 아닌가. 사회에서 우리는 도움을 받고 건네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건만, 이토록 피와 눈물도 없는 사회일 수 있을까. 결국 현실과 조금도 떨어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과 그리고 생각의 여지를 주고 있다는 점이 바로 김동인 소설의 힘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3. 뮤지컬 <광염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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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광염 소나타>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정말 재밌게 본 하나의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연기, 노래, 연주는 정말 말할 것도 없었다. 넘버들마다의 고통과 생각들이 잘 느껴져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쉽게 다가갔을 것이다. 비록 작품성이 떨어진다하더라도, 잊혀진 그리고 문학인 외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도 각색이 지닌 최고의 장점일 것이다.

  내용으로 얘기하자면, 뮤지컬도 비슷한 구도이긴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분노 아닌 밤중의 우연한 사고로 빚어낸 사고사로 해석했다는 부분이 존재한다. 어쩌면 뮤지컬이 오히려 소설 내내 K가 말하는 우연한 그 기회가 왔다는 것에 더 부합하지 않나 싶다. 소설은 K씨가 전반적으로 말하던 "기회"를 담배가게에 보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후에야 소나타를 만든 것이라면 뮤지컬은 우연한 사고를 통한 기회에서 소나타가 탄생했다. 분노가 만든 살인과 실수가 만든 살인은 엄연히 다르기에, 오히려 뮤지컬은 K의 인성과 인격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소설 "광염소나타와" 뮤지컬 "광염소나타"

  성수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천분이 있었다. 그러나 늘 이상한 건 그 넘칠 듯한 열정이 음보만 그려놓으면 아무 긴장도 없는 싱그러운 음계가 되어 버린다고 했다는 점이다. 성수가 그 "기회"란 걸 만나 자신의 감옥행, 어머니의 죽음으로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에 결국 터져버린 살인. 어쩌면 예고된 살인일지도 모를 정도로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설득이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의 어머니가 담배가게의 훔친 돈으로 살아났더라면 그래서 고마움을 갚고자 담배가게에 찾아갔고, 담배가게 아저씨가 너그럽게 이해해줬더라면, 예배당에 들어갔을 때 그의 음악은 또 다른 열정으로 표출될 수 없었을까? 여전히 김빠진 술과 같은 힘없는 음보가 되었을까.

  폭발적인 살인의 광기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성수의 음악이 이전보다는 나아졌으리라 믿고 싶다. 사람을 어떻게 항상 선과 악으로 나누어서 광염의 소나타와 열정의 소나타로 나눌 수 있겠는가. 성수의 음보가 광염소나타 이전에 아주 힘 없는 것이 된 것이 어찌 어머니의 점잖고 어진 교훈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어찌됐든 그 야성적 광포적 캐미라는 것을 즐긴 이후 폭발한 광염 소나타, 만약 그가 말한 '인정' 이 있었더라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광염소나타일 것이다. 이는 어쩌면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은 아닐까. 어떤 범죄 사건 하나가 일어났을 때에도 그 초기의 계기와 범행동기들은 언제나 중요한 쟁점이 되니까 말이다.

  그동안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김동인의 작품을 가지고 말을 하고 있기에 굳이 나까지 거기에 대한 답을 던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 첫번째 살인을 막을 수 있었던 계기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동인의 소설 <광염소나타>는 뭔가 희망을 보여주지만, 뮤지컬 <광염소나타>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보복도 복수도 아니었기에, 우연한 사고였기에 어쩌면 그 사고는 막을 수 없었다는 것, 그렇다하더라도 무책임한 그의 모습은 결국 도덕성과 결부지어서, 그 인물에게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 결국 뮤지컬 <광염소나타>에서는 그렇게 성수를 가로막던 착한 교양과 도덕성이 그리고 어머니의 어진 교육이 이 순간에는 빛을 발해야했었다.

  <광염소나타>의 인기 그 그 이면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그리고 고뇌했던 많은 예술가들의 어느 정도 공감하는 애환이 있었을 것이며, 도덕성이나 인성에 대한 문제가 거듭 거론되고 있는 요즘 세상에 '도덕'이라는 책임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중요한 작품이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예술이 삶 자체라 하더라도 삶보다 사람이 중요하니까,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결코 예술이 사람보다 위대할 수 없기에, 그 예술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기에 백성수가 살아있다면, <광염소나타> 가 아무리 위대해도 당신의 손에 죽은 사람들이 먼저라고. 설령 변변찮은 사람일지라도...사람의 욕심, 그리고 새로움을 갈구 하는 욕망, 그 성공...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광염소나타>의 인기와 더불어 김동인의 다른 작품들도 이번 기회에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또 100년 뒤 어느날, 지금과는 다른 시대에 백성수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책 인용>
김동인, [광염 소나타] 한국문학전집239:태평행, 도디드, 2016, 부분인용

<사진 출처>
인터파크 뮤지컬 광염소나타 티켓 페이지


[김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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