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준시인의 신작 산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문학]

박준시인의 답서를 받다
글 입력 2017.07.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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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박준시인의 첫번째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 겠지만'(2017)이 나왔다. 그의 첫번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2012) 이후 5년의 공백기를 매꾸는 산문집이다.




들어가기 - 주전자 막걸리집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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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박준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필자가 대학교를 다닐 때 그가 특강을 온적이 있다. 특강에서 그는 자신의 시집을 애써 설명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막걸리 주전자’ 였다. 시인이 막걸리집을 갔는데, 그 집은 막걸리한통을 비울때마다 반찬이 새로 바뀐다는 이야기였다. 막걸리 주전자 한통을 비우면 그다음 찬에 떡갈비가 나오고, 두 번째 주전자 한통을 비우면 조기가 구워나오고, 세 번째 주전가를 비우면 막걸리집 이모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꼭 그 이모를 보기위해 기필코 세 번째 막걸리주전자를 비운다는 시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필자는 이 짧은 이야기가 시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잠이좋다

잠이좋다. 사람으로 태어나 마주했던 고민과 두려움과 아픔 같은 것들을 나는 대부분 잠을 통해 해결했다. 헤어짐의 아픔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끙끙 앓던 신열 같은 것들도 잠을 자고 나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꿈을 부른다. 부른다고 해서 딱히 특별한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잠이 들 때까지 한 가지 생각을 계속 떠올리는 것이다. 요즘 꿈에는 당신이 자주 보인다. 꿈의 장면의 매번 흑백이고 당신은 말없이 돌아앉아 있거단 먼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운이 좋을 날에는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동안 모아놓은 궁금한 일들을 이것저것 묻기에 바쁘다. ‘살 만해? 아니 죽을만해?’ ‘필요한 것은 없어?’ ‘지난번에 같이 왔던 사람은 누구야?’어느 날은 오랜만에 나타난 당신이 하도 반가워서 꿈속 당신에게 내 볼을 꼬집어달라고 부탁한적이 있었다. 당신이 웃으며 내 볼을 손으로 세게 꼬집었다. 하지만 어쩐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그제야 나는 꿈속에서 지금이 꿈인 것을 깨닫고 엉엉 울었다. 그런 나를 당신은 말없이 안아주었다. 힘껏 눈물을 흘리고 깨어났을 때에는 아침빛이 나의 몸 위로 내리고 있었다. 당신처럼 희고 마른 빛이었다. -35p


박준의 산문집의 잠이좋다 전문이다. 찬찬히 그리고 조심스럽고 담백하게 풀어낸 산문집이다. 모든 없어지는 것, 사라지는 것, 이별하는 것을 대하는 법에 대하여 말한다. ‘살 만해? 아니 죽을만해?’ ‘필요한 것은 없어?’ ‘지난번에 같이 왔던 사람은 누구야? 간결한 문장에서 세상에 없는 자와 대화하는 시인의 담담하고 담백한 어투와 태도가 보인다.

찬란해서 쓸쓸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서 찬란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지고, 태어난 순간부터 이별을 준비를 하기에 삶은 쓸쓸하다.




박준의 답서를 받다

답서

내일 아침빛이 들면
나에게 있어 가장 연한 것들을
당신에게 내어보일 것입니다

한참 보고 나서
잘 접어두었다가도

자꾸만 다시 펴보게 되는
마음이 여럿이 있었으면 합니다 –83p


박준시인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은 ‘문장’에 있다. 촘촘하게 짜여진 문장이 독자에게 우뚝우뚝 다가온다. ‘나에게 있어 가장 연한 것들’ ‘당신에게 내어 보일 것’ ‘자꾸만 다시 펴보게 되는’ 문장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연한 것, 그것들은 아주 말랑말랑하고 간질간질하며 여린 것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과 행복했던 기억과 추억이 될 수 있다. 여린 것들을 서슴없이 당신에게 내어준다는 시인의 모습이 간질거린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자꾸 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으면 좋겠다는 화자의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렇다. 가장 연한 것을 타인에게 서슴없이 전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박준시인의 답서에 자기고백이 담겨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의 연한 것들은 약점이 될 수 있다. 연하기에 상처를 받기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묵묵히 답서를 써나간다.

박준 시인의 산문 ‘울음’에서도 그의 시선을 볼 수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연한것들은 껍질을 벗은 알맹이다. 알맹이는 본질이다. 본질은 원초적이다. 배가고픈 것, 울음이 나는 것, 행복한 것들은 다 원초적인 감정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빠르게 터득하고 나타낸다.




마치며...

시를 짓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이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이 숱한 사라짐의 기록이 내가 쓰는 작품 속으로 곧잘 들어오기 때문이다. - 죽음과 유서 中 -181



박준시인의 산문을 다 읽고나면, 코끝이 찡하다. 가난했기에, 이별을 준비해보았기에, 이별을 해봤기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에 우리는 너무 연약한 존재라 말하고 싶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지만


울어요 우리(최종).JPG


같이 울면 덜 창피하다고 말하는 시인처럼, 모든 없어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과 이별하는 것에 있어 엉엉 울며 잘가라 손을 흔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양희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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