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세상에서 빛을 발견하다, 영화 '블랙'

블랙에서 시작하여 화이트로 끝맺는 영화.
글 입력 2017.07.05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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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 몸짓, 목소리, 숨결. 그 소중한 감각들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면. 빛으로부터 멀어지고, 저 깊은 어둠 속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면, 분명 그 육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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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의 세상은 온통 블랙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육체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숨결과 손끝으로 느껴지는 물체의 감각들일 뿐이고, 내가 누구인지 또 너는 누구인지, 느껴지는 것들의 모양새와 이름은 또 어떠한지 도대체 알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알파벳을 A,B,C,D,E 부터 배우지만, 그녀에게 알파벳이란 B,L,A,C,K 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준 존재가 있다. 바로 사하이 선생이다. 그가 미셸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단 하나의 단어는 “불가능”이다. 어둠이 필사적으로 그녀를 집어삼키려 할지라도, 항상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블랙에서 시작하여 화이트로 끝맺는 영화 ‘블랙’. 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낸 그들의 눈부신 기적을, 어둠으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온몸으로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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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살 때 청력과 시력을 모두 잃은 미셸. 그녀의 유년기는 혼란 그 자체였다. 항상 짐승과도 같이 본능적으로 행동했고, 어머니는 이를 안타깝게 여겼지만 그저 어쩔 줄 몰라 했고, 아버지는 미셸에게 방울을 매달고 짐승 취급을 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시키려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사하이 선생의 등장이다. 일평생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미셸을 우연히 알게 되어 찾아오지만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다. 그녀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단어의 의미를 지각할 수 없을뿐더러, 낯선 사람의 등장으로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water’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처음으로 ‘발화’라는 것에 성공한다. 이것은 바로 ‘미지(未知)’에서 ‘지(知)’로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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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과 구별되는, 인간다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깨우쳐 준 사하이 선생은 그녀가 스스로 두려움과 맞서고 불을 지펴 빛을 밝힐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렇게 그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으며 미셸로 하여금 세상의 만물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성공의 빛을 밝히기 위해 거듭되는 실패를 축하한답시고, 스승은 계속되는 미셸의 시험 낙제에도 축하한다며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춤을 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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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에게 빛을 주던 사하이가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하나 둘 씩 기억들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미셸과 반대로 자신의 빛을 잃어가게 된다.

 “인생은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 맛있게 먹어야지요.” 라는 사하이의 말처럼 인생에는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가 손에 쥔 아이스크림은 이미 녹아 있었다. 미셸이 아이스크림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느라고, 자신이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사하이 인생의 빛은 서서히 소멸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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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는 비록 곁을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그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쏟아 부었다. 그 덕에 미셸은 끝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하루하루 이겨나가며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을 빛으로 바꿔나간다. 그렇게 12년이 흐른 후, 미셸은 사십의 나이로 졸업가운을 입게 된다. 이제 ‘블랙’이란 그녀에게 어둠과 절망의 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취’이자 ‘지식’이고, ‘졸업가운’의 블랙이었다.

한편, 기억을 잃어 ‘지(知)’에서 ‘미지 未知’의 길을 걷게 된 사하이는 미셸의 간절한 기도 끝에 또 한 번 그들의 기적을 이룬다. 유년기 시절 짐승과도 같았던 미셸이 얻었던 그 깨달음처럼, 이번에는 사하이 선생 자신이 ‘water’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다시,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스승의 알파벳도 A,B,C,D,E가 아닌 B,L,A,C,K으로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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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슬프고, 감동을 자아낸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슬픔을 강요하는 영화라고 비판하기도 했고, 뻔한 전개와 스토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속의 어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의 세상은 듣거나 볼 수 있어도 들으려, 보려하지 않고 혹은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한다. 영화는 바로 이를 꼬집고 있다.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계속해서 ‘눈을 뜨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내면의 무지한 어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이 끊임없는 행복의 연속임을 보여준 두 사람. 이들은 우리에게 어둠이라는 두려움은 이겨내라고 있는 것이며 불가능의 벽 또한 깰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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