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시적 따뜻함, 캐스커의 시선①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7.0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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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나서려 문을 열다 한 순간 흠칫 놀라 버렸어
바람은 어느새 차가워져 메마른 하늘을 보네
이렇게 걷다 우연으로 너를 마주칠 수 있을까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난 그냥 멈춰서겠지

 나에게는 사계절 내내 듣는 노래가 있다. 캐스커의 < 정전기 >다.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제 어디서든 차갑고 어두운 밤 거리로 나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보통은 계절에 노래가 어울려서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 노래는 조금 다른 경우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가까운 분위기이지만, 봄에 들어도 여름에 들어도 언제나 빠져들게 된다. 규칙적인 퍼커션 위로 느린 호흡의 베이스와 어쿠스틱 기타가 교차하며 반복적인 코드가 흐르고 보컬은 속삭이듯 노래하는, 단순해 보이는 조합이지만 단조로운 느낌은 전혀 없다. 곱씹을수록 마음에 와 닿는 가사 때문일까? 이 곡은 올해로 무려 10년째 듣고 있는데도 전혀 질리지 않고 항상 참을 수 없는 아련함을 선사한다.

 이 특별함은 아마 캐스커라는 그룹이 가진 특성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캐스커는 1998년 이준오의 1인 프로젝트로 결성되어 2집부터 보컬 융진이 참여한 이후 변화를 거쳐 지금은 2인조로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다. 내가 캐스커라는 그룹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이준오와 융진이 2인조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인데, 솔직히 그 전까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지금의 캐스커는 두 사람의 개성 있는 색깔을 하나의 앨범에 골고루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물을 보면 항상 환상의 콤비라는 생각이 든다. 이준오의 세련된 일렉트로닉 테크닉과 융진의 곡 해석력, 음색은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 속에 감춰진 따뜻함을 드러낸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보적이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그 감성이 참 뚜렷한 캐스커의 음악은 “심장을 가진 기계음악”이라고도 불린다. 오늘은 이 도시적인 따뜻함 위로 다양한 색깔을 입힌, 캐스커의 노래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캐스커의 음악들



1. 고양이와 나


넌 나 가는 줄도 모르고
또 다시 너 아픈 줄도 모르고
그렇게 손을 내게 건네줬어
내 기억만을 쫓아
널 돌아보지 못한 내게 넌

 융진이 정식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2집부터 보자면, < 고양이와 나 >는 2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고양이를 키워 보지는 않았지만, 곡을 들으면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느낄 법한 감정이 섬세한 언어로 전달되어 와 닿는다.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주가 됐던 1집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인데, 극단적으로 보면 “Kraftwerk”의 예처럼 가장 기계적일 수 있는 전자음으로 이처럼 따뜻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곡이 가진 전자음과 템포는 굉장히 아기자기한 느낌이라 사람 손으로 내는 소리들, 사랑스러워 하는 듯한 융진의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섞인다. 이 곡은 최근에 어쿠스틱 버전으로도 나왔는데 곡을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딱 그 앨범 커버에 있는 둥글둥글하고 폭신한 고양이 그림과 비슷하다. 



2. 모든 토요일


오늘은 어디로든 괜찮아 데려가 줘요
환하게 내려오는 햇살을 타고
묻어둔 서글픔이 돌아올 날 기다린대도
지금 난 이대로 행복해

 캐스커의 3집은 일렉트로니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탱고풍을 따르려는 시도가 드러나는 앨범인데, 타이틀인 < 나비 부인 >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기계적인 비트 소리가 리듬감 있는 베이스, 격정적인 아코디언 사운드와 어우러져 뜨거운 탱고의 한 부분으로 승화된다. < 모든 토요일 >은 그보다는 덜 무겁지만 가장 기계적이면서도 생기 넘치는 전자음 위로 여전히 공통된 호흡을 이어 간다. 융진의 말하는 듯한 고운 목소리가 돋보이는 곡이기도 하다. 가사를 곱씹어 보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어딘가 위태롭지만 노래를 듣는 순간만은 잊어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을 건네며, 특유의 도시적인 따뜻함을 보여준다.



3. 나의 하루 나의 밤


조심스럽게 마음으로 외치는 말
나에게로 와 기다리는 나에게로 와
소리 없이 오는 저 파도처럼

이 곡은 전자음이 눈에 띄게 많이 쓰이지는 않았지만, 오르락내리락 숨 쉬는 도시의 규칙적인 호흡을 표현한 듯한 신디 사운드가 어딘가 쓸쓸한, 도시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보컬은 융진이 아닌 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인데도, 역시 캐스커답게 자신의 색깔을 오히려 더 확연하게 드러낸다. ‘무표정한 사람들’, ‘조금씩 흘려지는 시간’ 등이 도시의 차가움을 연상시킨다면, 그 차가움 속에서 ‘너’를 그리는 나의 마음만은 유일하게 따뜻한 온도이다. 두 온도의 대비는 ‘심장을 가진 기계음악’이라는 캐스커의 감성처럼, 붕 뜨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 감싸 안으면서 부각된다.



4. 천 개의 태양


긴 햇빛 속에 있다 보면 잊혀질 줄 알았어요
눈이 멀진 몰랐어요
긴 겨울 속에 있다 보면 무뎌질 줄 알았어요
타버릴진 몰랐어요
부숴질진 몰랐어요

 캐스커의 음악은 특유의 따스함으로 마음을 감싸기도 하지만, 종종 부드러운 생선 살 속 숨겨진 가시가 목에 걸리듯 멘탈에 손상을 입힐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험은 가장 아프면서도 가장 위로가 되는 방식이라서 매력적이다. 캐스커는 특히 이런 류에 탁월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순위를 매기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 천 개의 태양 >을 1순위로 꼽고 싶다. 이 곡의 파괴력은 거의 감정을 자학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할 정도이다. 밝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밝아서 발 아래나 눈 앞을 볼 수 없는 세계에서, 그 곳에 있는 목적도 잊어버린 채로 느끼는 무력감은 간접적인 것임에도 머릿속을 지배한다. 깊은 내면의 허무를 건드리는 목소리, 속삭임, 심장박동이 멈추는 듯한 소리, 느린 현악기의 마찰음. 어느 하나 격한 것은 없지만 정작 마음은 격한 슬픔으로 뒤덮인다.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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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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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연
    • 와 캐스커..!! 저도 캐스커 좋아해요ㅠㅠ 저는 놓아줘 좋아합니다. 원래 캐스커 보컬 곡도 좋아하지만 조원선 아티스트 보컬이... 정말.. 몽환의 끝 캐스커의 느낌과 잘어울려요. 캐스커의 음악에 대해 분석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글 덕분에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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