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파수꾼 > 사랑할 줄 몰라서 지키지 못했다 [시각예술]

비극적이었던 청춘을 그리다
글 입력 2017.06.3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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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꾼, 소중한 것을 지키려 경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10대 남학생들의 이야기 속에서 '기태'는 무엇을 그토록 지키려 했을까. '파수꾼'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 전체에 녹아있다. 소중한 것을 잃고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린 기태의 아버지가, 친구들로부터 기태의 이야기를 찾는 상황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사건을 조각조각내어 입체적으로 이루어진 시간구성은 관람객들이 기태의 아버지와 함께 기태의 죽음에 관한 사건들을 추리해가도록 만든다. 사건 전후의 과거와 현재의 반복되는 교차 속에서 전체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퍼즐처럼 끼워맞춰지고 결말부 그것들은 파노라마처럼 연상되어 인물들의 심리에 강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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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기태의 죽음 이후 서랍 속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바로 '희준', '동윤'과 함께 환히 웃고 있는 사진. 셋은 어딜가든 늘 함께하는 각별한 친구사이였다. 셋 중에서도 눈에 띄는 기태는 사실 학교에서 소위 '짱'이라고 불리는 존재였기에 주변엔 늘 사람이 가득했고 영화에서 때로는 그들을 부리는 모습도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곧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달랐던 기태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난다. 기태가 가진 부모님에 관한 일종의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무관심한 아버지 손에서 자란 그는 어느샌가부터 맹목적으로 관심을 좇았다. 주목받기를 무척 좋아했고 그 얼룩진 애정결핍은 폭력을 통해 친구들로부터 두려움과 복종의 시선을 받아내는 것으로써 충족되었다. 희준과 동윤은 그런 기태에게 어쩌면 유일한 '친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태의 아버지가 발견했던 정답던 사진과는 달리 기태의 죽음 이전에 희준은 전학을 갔고 동윤은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장례식조차 오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가 찾아간 희준은 기태와 친하게 지냈던 것이 거짓인 것처럼 무덤덤했고 냉랭했다. 대체 이 세 명의 아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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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의 불씨는 이성문제였다. 바로 희준이 좋아하던 아이가 기태를 좋아했기 때문. 그러나 이것은 불씨일 뿐 그 언제부턴가 불씨가 붙을 환경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성, 제 3자가 개입함으로써 희준은 기태와의 관계를 그리고 기태의 방식을 극단적일만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물론 기태는 희준과 동윤을 진심으로 생각했을테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보지 못한 그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었다. 자신의 진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고 기태의 그런 방식은 희준에게 동등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돌아선 희준에게 기태는 처음으로 먼저 다가서보지만 이미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고, 기태는 결국, 다른 아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희준에게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태의 치기어린 행동이었지만 기태를 둘러싼 집단 대 희준 개인으로서 희준은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한 정신적 고통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결국 희준은 전학을 선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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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태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후회는 분명 그의 속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을테지만 그것은 분노로 나타나 곧 동윤과의 관계마저 틀어지게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고통스러워하는 기태에게 동윤은 내뱉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혹여 충동적인 실수였다고 착각할까 굳이 그간의 모든 우정이 거짓이었음을 덧붙이는 동윤 앞에서 기태는 세상을 잃어버렸다. 친구 두 명이 세계의 전부였던 그에게 둘의 돌아선 뒷모습은 살아갈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는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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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참으로 불안정한 시기이다. 이 때에 또래집단은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기에, 특히나 인간관계는 더욱 불안정하기 십상이다. 영화 속에서 학교라는 공간 이외에 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기찻길은 바로 그들이 놓인 심리적 상황을 나타낸 것일테다. 기태도, 희준도, 동윤도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었고 명백히 치기어린 언행들을 하였지만, 누구도 그들을 섣불리 질책할 수는 없다. 모두가 의례처럼 겪는 그 시절의 성장통이 그들에게 조금 극단적으로 찾아온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들이 조금만 덜 서툴렀더라면, 그들이 조금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그래도 죽음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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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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