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프레데릭』과 동화 『개미와 베짱이』의 윤리학

글 입력 2017.06.20 15: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대중매체를 통해 문화가 소비된다. 돈은 이 소비 행위의 매끄러운 윤활제다. 몇몇 사람은 이 상황을 보고 혀를 끌끌 찬다. “문화가 그래서는 안 될 텐데, 너무 천박해졌어. 마치 18세기 프랑스 그림처럼, 돼지들이 탐욕하는 대상이 되었지.”
그러나 과연 그런가한 동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그 동화 이름은 프레드릭』(한국 이름 잠잠이)이다. 

프레데릭 표지.jpg
『프레드릭』(레오 니오니, 시공주니어), ⓒ 시공주니어

동화 『개미와 베짱이』는 직업 윤리에 대해 논한다. 여름에 놀고 먹으며 기타나 튕기는 자들은 겨울에 가장 먼저 죽을 것이며, 착하며 성실하게 일한 자들에게 자비를 빌며 살게 될 것이라는 저주가 예술가들에게 내려진다. 이후 예술가는 저주받는다.
저주받은 예술가.jpg
저주받은 예술가들ⓒ 영화 '모딜리아니'

실제로 많은 이름 없는 예술가들은 그렇게 죽는다. 사회, 친구, 가족들, 그 아무한테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게으른 놈이라고 손가락질 당한다. 이들은 이해 받지 못하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광인과 처지가 비슷하다. 마음 속에 아름다운 의미를 품고 있는 자가 무의미로 인정되는 것은 모든 것들에게 환전을 요구하는 이 세상에서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동화 『프레데릭』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동화 『개미 베짱이』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 주인공은 벌레가 아니라, 쥐들이다. 땅에 떨어진 음식들을 주우며 열심히 일을 하는 다른 쥐들과 달리, 프레데릭은 가만히 앉아 빈둥거린다. 보다 못한 쥐들이 뭘 하고 있는 거냐며 물으면, 프레데릭은 햇살과 색깔, 그리고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쥐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묻는다.

프레데릭 물음과 대답.jpg
ⓒ 시공주니어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들쥐들이 물었습니다.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이 대답했습니다. 
 
겨울이 된다. 쥐들은 1년 내내 모은 양식들을 동굴 속에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주제들은 바보 같은 늑대어리석은 고양이이다. 늑대와 고양이는 둘 다 쥐들의 포식자들이며, 쥐로 태어났다면 한 번쯤은 벌벌 떨며 목숨을 겨우 부지해보거나, 또는 그렇게 부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텐데, 쥐들은 한 데 모여 이런 공포의 대상을 바보같다거나 어리석다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늑대와 고양이에 의해 1년 동안 고생한 일들은 모두 지나간 일들이며, 이제는 동굴 속이라 그들에게 쫓길 일도 없고, 배는 부를 만큼 부르기 때문이다. , 현재 상황에서 자기만족으로부터 나오는 거만함으로 이루어진 담화인 것이다. 이는 즐겁지만 공허하다. 왜냐하면 자기만족이 사라지는 순간 그 거만함도 함께 사라지고 오롯이 불완전한 나 자신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쥐들 냠냠.jpg
 ⓒ 시공주니어
처음엔 먹이가 넉넉했습니다.
들쥐들은 바보 같은 늑대와 어리석은 고양이 얘기를 하며 지냈습니다.
들쥐들은 행복했지요.

자기 만족의 기쁨이 컸던 만큼,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공허함도 커진다. 지금까지 자신을 기쁘게 해 주었던 것은 조건부 기쁨이다. 그렇다면 본질적 행복도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내가 가진 것, 사유한 것 이외의 것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 열매며 곡식 낟알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짚도 다 떨어져 버리고 옥수수 역시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 버렸지요.
돌담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었습니다.
들쥐들은 아무도 재잘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쥐들은 자신들과 다른 것을 모으던 프레데릭이 생각난다. 그래서 프레데릭이 모으던 양식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한다. 프레데릭은 마치 마법처럼, 자신이 본 햇빛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쥐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자연이 준 수많은 색깔을 들려줌으로써 잿빛 겨울로 지친 쥐들을 위로한다. 흥미로운 것은 프레데릭이 모은 이야기이다.

쥐들 속닥.jpg
 

눈송이는 누가 뿌릴까얼음은 누가 녹일까?
궂은 날씨는 누가 가져올까맑은 날씨는 누가 가져올까?
유월의 네잎 클로버는 누가 피워내는 걸까?
날을 저물게 하는 건 누구일까달빛을 밝히는 건 누구일까?
 

하늘에 사는 들쥐 네 마리
너희들과 나 같은 들쥐 네 마리
봄쥐는 소나기를 몰고 온다네
여름쥐는 온갖 꽃에 색칠을 하지
가을쥐는 열매와 밀을 가져온다네
겨울쥐는 오들오들 작은 몸을 웅크리지
 
계절이 넷이니 얼마나 좋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사계절„

 
프레데릭은 세상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대답을 한다. ‘사계절이 있는 세상불완전한 나에게 기쁨과 슬픔을 주는데, 그 이유가 자신과 같은 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계절이 있는 세상은 쥐들의 삶이 끝날 때까지 소멸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불완전한 나의 삶과 함께할 것이고, 삶 속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주기 충분하다. 프레데릭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과학과 철학이 태동하기 전의 원시 신앙 속 신화 같기도 하다.
 
 이 점에서 동화 『프레데릭』은 동화 『개미와 베짱이』와는 확연히 다른 윤리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동화처럼, 세상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자.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가 어떻게 윤리적으로 제시되어 왔는 지를 살펴보자.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물질적 가치를 태만히 하는 자들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윤리적 결론으로 일종의 정신적 가치, 또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했다. 이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자들에게 돈을 벌어올 것을 요구한다. 이들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빵이 없으면 굶어 죽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적 가치를 물질적 가치로 편입한다. 현대 사회에서 베짱이가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수가 되어 음원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돈으로 교환된다. 이는 최악을 대비한 윤리학이다.

『프레데릭』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가치는 조건부적인 물질적 가치가 충족시켜줄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추구하는 것은 윤리적이다' 라는 윤리학을 제시한다. 비록 돈으로 교환되더라도, 문화는 아직도 그 마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프레데릭이 현대 사회에서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연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프레데릭이 쥐들에게 준 감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최선을 향한 윤리학이다.


돈으로 많은 것이 교환되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중세 시대의 길드가 귀족이 부여하는 명예를 따라 예술가로 변모하여 정신적 가치를 발전시켰듯, 자본주의 시장에 뛰어든 예술가도 다르지 않다. 최악을 대비한 윤리학과 최선을 향한 윤리학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성채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