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즘은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했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6.17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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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조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21세기를 정리해주는 단어가 등장했다. 아무리 아등바등 해봐도 벗어날 수 없는, 온 사방이 암흑이기에 빛 한줄기조차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가만히 체념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지옥을 우리는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 하나로 여태 지나온 모든 상황을 단정 지어버린 채, 외면하고 방관하며 지나쳐온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사회가 제시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두고 그 안에서 불평만 늘어놓는다. 틀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그저 좁은 막에 맞춰 자라기 위해 애를 쓰지만, 늘어가는 건 우울함과 괴로움, 고통과 좌절, 더 나아가 시작되는 무감각이었다.



요즘은 잘 사냐고 물었다 잘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요즘은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했다

송승언, 지엽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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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소와 예술이 모순을 이루는 장소 문래창작촌에 위치한 대안공간 이포에서 2017년 6월 2일부터 9일까지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 17회 졸업전시인 ⟪환상방황⟫展이 열렸다.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가 자리 잡은 전시장, 8개의 작품을 전시했다. 각자 보여주는 모습은 다르지만 건네는 말에는 한 가지의 공통된 질문이 들어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당신은 현재 ‘방황’하고 있는가? 당신에겐 어떤 고민이 있는가?” 전시장에 들어선 개인은 이 질문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처음엔 가볍게 던져진 듯한 질문들이 시간의 흐름 안에서 점차 무거워지고 마음 한 구석을 꾸욱-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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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숙, <10 years self-portrait>, 2010, 단채널 비디오, 00:02:13, 가변크기
그는 10년 동안 매일 잠에서 막 깬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속의 작가는 학생으로, 작가로, 아내로, 어머니로 존재하는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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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일시적 방문자>, 2015, 단채널 HD비디오, 00:10:48, 가변크기
공항에서 억류당한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통제하는 사회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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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Illusion of city-Map drawing series 1>, 2014, 라이트박스, 지도, 혼합재료, 95x76x15cm
그는 지도에 명시된 객관적인 도시의 흔적을 계속 중첩시켜 주관적으로 변형한다. 정확하게 길을 안내해야 할 지도는 그 기호가 삭제되고 불분명해져 이 지도를 보는 우리는 길을 잃은 듯 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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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연, <애드벌룬>, 장지에 아크릴릭, 150x210cm
작년, 정치적 사건을 "긴 그림자를 쫓았던 밤들이 있었다."라는 서정적, 함축적인 말로 압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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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작가의 관객참여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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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 <Swamp 늪>, 2016, 영상회화, 78개 회화 이미지, 00:08:18, 가변크기
여러 장의 회화를 가지고 영상을 만드는 그는 아무 이야기 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과 들판, 반딧불과 별 등을 등장시켜 관람객이 스스로 이 상황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환상방황(環狀彷徨, 링반데룽Ringwanderung)은 안개나 눈보라가 심한 숲과 들판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같은 장소에서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도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전시는 오늘날 한국에 사는 우리들이 마치 환상방황에 처한 것 같다는 인상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지난 4년간 힘든 현실을 견뎌야 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 우리를 휘감고 있는 이 자욱한 안개와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우리가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하루를 넘기기 위해 열심히 산 우리들의 매일매일이 쌓여 이 비극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발 아래만을 보며 계속 걸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환상방황 하듯이.

  환상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제자리에 서서 자신이 있는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지금 멈춰 서야 눈앞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직시할 수 있다.

  ⟪환상방황⟫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극심한 눈보라와 짙은 안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길 기대하면서.

-⟪환상방황⟫展 서문





문화리뷰단_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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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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