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돌이킬 수 없다면 끝까지 간다, 영화 '달콤한 인생' [시각예술]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 입력 2017.06.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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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은 달달함은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씁쓸하기만 했던 영화였다. 물론 서로를 향해 수없이 총구를 겨누고, 칼을 내밀고, 숨을 내쉴 때마다 움푹움푹 나오는 피도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보다도 영화를 이끌어가는 ‘선우’라는 캐릭터의 삶이 너무나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힘들게 살아온 삶이 무색할 정도로 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과 이루지 못할 꿈을 이야기하던 선우의 마지막이, 그리고 첼로를 연주하는 희수를 보며 웃어보이던 그의 얼굴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멈춰있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 선우가 희미하게라도 웃어보였던 적은 희수의 첼로 연주를 들을 때 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단 몇 초의 웃음과 평온을 위해서 120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싸워나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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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검은 조직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조직의 우두머리인 강사장은 후임 선우에게 ‘출장을 가있는 동안 자신의 애인 희수를 감시하라’는 부탁을 한다.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가 스스로 머쓱해하며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자신의 냉철함을 닮아있는 선우에 대한 애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 될 것이다.

언제나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것처럼, 강사장이 눈치 챈 대로 희수는 다른 또래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었고 선우의 눈을 피해서 만나고자 하지만 결국 발각되고 만다. 늘 그랬듯 지시받은 대로 바로 강사장에게 전화를 걸려던 그는 희수가 자꾸만 눈에 밟히고, 결국 없는 일로 할 테니 헤어지라는 말과 함께 둘을 놓아준다. 늘 차갑고 빠른 일처리로 신뢰를 받던 그로써는 처음으로 보스의 말을 일부러 어긴 것이다.

하지만 강사장은 선우가 자신이 맡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후임들을 시켜 선우를 테스트하듯 땅에 그대로 묻어버린다. 그리고 이내 가까스로 탈출한 선우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다시 주지만 선우는 분노와 배신감에 사로잡혀 차를 타고 달아나고, 복수를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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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

조폭이라는 집단의 특성 상 선우에게는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은 집단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고자 하는 성향이 드러난다. 희수가 선우를 ‘무서운 사람’이나 ‘해결사’라고 이야기할 때 그는 ‘자신은 호텔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며, 백사장에게는 ‘우리가 양아치냐’며 ‘아랫사람들 데리고 그러지 말라’는 직언을 날린다. 선우가 위기에 처했을 때 문실장이 말했듯 선우도 누군가에겐 위협이 되고 고통을 줬을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대사를 들을 때 자신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는 선우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또 하나 주의 깊게 봐야할 인물은 강사장의 젊은 애인 ‘희수’라는 캐릭터였다. 강사장은 이미 처도 있지만, 그럼에도 희수를 사랑했고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 선우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무섭고 차가운 강사장의 마음을 얻을 만큼 희수라는 캐릭터는 예뻤고 분명한 매력이 있었으며, 소극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왠지 톡 쏘는 느낌이어서 살갑거나 착한 것과도 거리가 있었고, 선우가 자신을 감시하러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내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부르고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사장과 선우의 갈등을 유발하는 촉매제와 같은 역할이 되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를 묵인해줌으로써 선우는 조직에서 미움을 사게 되고, 이러한 일들이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비중이 많지는 않았지만, 주인공 선우의 위기를 초래하고 치명적인 위기를 맞게 했다는 점에서 희수는 팜므파탈 캐릭터라고 일컫을 수 있을 것이다.

선우가 조직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하고, 보스에게 복수라는 칼을 먼저 건넨 이상 이 영화는 조직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만 끝나는 비극적인 결말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사건이 다 끝난 후 혼자 스카이라운지에서 복싱을 연습하는 선우의 모습이 나타나 열린 결말의 성격도 띠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모든 것이 선우의 상상이었다는 허무한 결말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비극적 결말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감정을 쌓아뒀다가 폭발시키는 냉정한 선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절제된 대사와 행동, 장면을 극대화시킨 음악이 더 큰 긴장을 이끌어냈고,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여운 있는 내레이션의 덕분인지 12년 전에 개봉한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촌스러움보다는 오히려 세련됨에 가까웠다.
 
함께 봤던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찌르고 튀기는 장면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을 만큼, 또 내레이션과 더불어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것이 결투씬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느와르라는 장르에 걸맞게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씬이 다른 사람과의 갈등 장면이었다. 백사장네 사람들과의 갈등, 희수의 남자친구와의 갈등, 문실장과의 은근한 갈등, 백사장과의 갈등, 강사장과의 직접적인 갈등, 호텔이 쑥대밭이 될 정도로 조직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갈등… ‘7년 동안 개처럼 일해 온’ 자신을 한 순간에 내치고 죽이려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복수를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선우는 모든 사람이 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갈등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와도 같다. 목숨을 내걸고 지켜줬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희수도 그를 탐탁지 않아했을 뿐더러 120분의 러닝 타임 내내 마음 편하게 웃어보이던 장면도 단 몇 초뿐이었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민기 역의 진구 캐릭터 하나밖에 없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선우라는 강한 캐릭터에 또 한 번 연민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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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고 끝을 마무리하는 선우의 내레이션은 내게 대사보다도 더한 묵직함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몇 번의 총과 칼을 맞아도 불사조처럼 살아나는 그의 모습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었다며 울었다는 제자의 이야기를 하며 죽어가던 그의 모습은 ‘선우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희수와 함께 하는 모습을 꿈꾸었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바람이 나뭇가지에 흔들리듯, 그녀의 첼로 연주를 들으면서 선우의 마음도 움직였을 것이고 그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물론 조직의 한 사람으로써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많이 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외로운 선우라는 존재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었던 것 같다. 불가능한 것은 알더라도 희수와 함께하는 선우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되었고, 그가 죽을 때는 여운이 훨씬 덜 할 것을 알더라도 ‘그가 살고 희수와의 관계가 열린 결말로 끝났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되었더랬다.
 
평소 느와르나 잔인한 영화는 주변에서 흔히 ‘스토리가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고 그러한 장르의 작품들을 선호하지 않는 나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과제를 위해서) 이번 영화를 보며 느와르 영화는 이 장르만이 주는 무거운 울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흔히 잔인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쉬운 갱스터나 느와르가 은은한 교훈과 여운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 영화 한 편을 볼 때에도 겉모습이나 표면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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