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을을 사랑했던 그가 바라본 겨울-모리스 드 블라맹크전

글 입력 2017.06.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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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어선의 귀환>


과감하고도 순도 높은 색들로 강하게 문질러진 화폭을 좋아하던 나는 급진적인 야수파의 대가 블라맹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내가 처음 접했던 그의 작품은 어슴푸레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흰 바다거품과 새카만 바닷물이 넘실대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위의 배 한 척은 그가 강렬하고도 위험한 매력을 즐긴다고, 캔버스 위에 언제까지고 강렬한 그림을 담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 블라맹크전에서는 그런 과격하고도 휘몰아치는 화풍과는 전혀 다른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회장의 대부분의 그림은 목가적인 마을 풍경과 정물, 그리고 석판화였다. 프리뷰를 쓰면서 상상했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에 어리둥절했지만 내가 모르는 그의 작품을, 화폭에 담고자했던 그가 사랑했던 그것을 찾기 위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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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내가 본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은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마을, 겨울, 하늘. 그리고 모든 키워드에는 ‘고즈넉함’이라는 상당히 유하고도 순박한 그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블라맹크는 주로 자신이 살던 마을을 그려냈다. 마을 어귀의 숲과 나무들, 마을 강변에서 바라본 집들, 마을을 산책하면서 만나던 마을 사람들과 골목들...‘마을’이라는 자신이 사는 그 공간을 굉장히 관심 있고 사려 깊게 바라보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림을 보다보면 그가 자신이 살던 집, 그리고 그 집이 있는 마을에서 얼마나 안정감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안정감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굉장히 많은 양의 그림 점 수도 그 이유에 한 몫하고 있지만 화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을 사람 하나 허투루 놓치지 않고 그려낸 그의 정성이 돋보인다. 자극적이지 않은 색으로 조용하고 따뜻한 향기를 풍기는 유럽의 작은 마을은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도 그가 가졌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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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블라맹크의 작품에는 유독 겨울이 많다. 특히 그는 눈 쌓인 집들과 눈이 살짝 녹아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길을 좋아한 것 같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비슷한 풍경과 분위기의 눈길이 작품에서 굉장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가 매일 보고 매일 만나는 똑같은 눈길이라 할지라도, 그가 매 순간 눈길에 느꼈던 특별한 감정을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눈 내리는 겨울은 블라맹크에게 소중한 계절이 아니었나 싶다. 소복한 지붕 위의 눈들과 흙냄새와 뒤엉켜 질척한 눈길을 피해 걷는 몇 안 되는 사람들. 그의 작품에는 이렇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런 겨울이 몇 장이고 반복해서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겨울에 알맞은 짙은 푸른빛과 옥빛을 섞어놓은 듯 한 무거운 하늘. 보기만 해도 어둑하고 찬 기운이 가득한 겨울이, 이렇게나 가깝게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보다 이 겨울을 그린 그림이 많아 전시를 관람하며, ‘그렇게나 겨울이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마을이 고즈넉한 침묵 속에 잠겨있는 모습을, 그 고요함과 냉기로 가득찬 곳에 여전히 자신이 존재하는 사실이 감명 깊었는지도 모른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은 자유분방하고 거칠 것 없던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을, 그리고 그가 어떻게 그것은 바라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였다. 누구라도 그림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무엇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정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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