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감각05. 그 자리엔 항상 능소화가 있었다

글 입력 2017.06.0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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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엔 항상 능소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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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취하고 있는 곳 근처에 능소화가 폈다. 멀리서 봤을 때 붉은 색이 짙어 장미인가 싶었는데 서양 능소화였다. 꽃잎이 작고 몸통이 길쭉한 게 꽃송이가 크고 흐늘거리는 우리 품종보다 매력이 덜했다. 그래도 1년 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웠다. 담장에 복잡하게 엉킨 꽃 넝쿨과 눈을 맞추며 ‘너가 6월을 데리고 왔구나’ 되뇌었다. 벌써 올해의 절반 정도를 살아버렸다.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나타났다가 어떻게든 떠나버리는 것들. 소나기와 태양의 계절이 불쑥 들어섰다 천천히 사라지는 길목에서 능소화는 주홍빛으로 그 어떤 꽃보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피어있는 아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 꽃의 여왕으로 화려하고 강렬한 장미를 꼽을 때 내 시선은 미로 같은 골목을 더듬으며 담장 벽에 붙어사는 능소화로 향하곤 했다.

  꽃이라고 하면 그게 어떤 꽃이든 사족을 못 쓸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뭐냐 물었을 때 대개는 고민 없이 능소화라고 답한다. 오히려 말하고 난 후에 어리둥절해하며 고민하는 편이었다. 난 왜 그 아이를 좋아하는 거지? 좋아한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자신 있게 느껴질 정도라니. 뜨겁게 일렁이는 여름 거리를 휘적휘적 걷다 보면, 문득 길 한 구석이 환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자리엔 항상 능소화가 있었다. 멈춰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꽃. 그 자리에서 툭툭 나부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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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는 여러모로 애정이 가는 꽃이다. 담장이나 고목나무 기둥 같은 것 따위에 의지한 덩굴나무에서 이르면 6월, 보통은 7~8월에 걸쳐 꽃이 핀다. 여린 주홍빛이 인상적이다. 가지 끝에 드문드문 혹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능소화의 백미는 사실 꽃이 질 때에 확인할 수 있다. 능소화는 꽃잎이 시들고 상하고 난 후에 떨어지지 않는다. 시들기도 전에 온전한 꽃송이 째 툭툭 바닥에 떨어진다. 꽃송이가 땅바닥에서 꼿꼿한 자세와 활짝 핀 얼굴로 원래 자신이 있었던 가지 끝자락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벚꽃처럼 꽃잎 낱낱이 부서지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람처럼, 그냥 죽다니. 땅에서부터 썩다니. 이 기이한 꽃나무는 여름이 끝날 때까지 내내 그 자리에서 그렇게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그 아래는 누군가 일부러 꺾어 버려 놓은 것 같은 꽃송이와 바닥에 들러붙어 썩어가는 꽃송이가 함께 뒹군다.

  능소화를 알게 된 후로 여름이 되면 나는 반사적으로 골목 속에서 꽃을 찾게 된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를 동질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구가 태양을 반 바퀴 넘게 도는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가 한 계절을 살기 위해 기어코 붉게 피어났는데, 나라도 확인해주고 싶었다. 사람이라는 것도 역시 한 계절을 빌려 태어났고 오고가는 누군가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울고 웃는데, 그게 전부인데, 때론 그게 전부라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존재들인데. 꽃이라고 다를까. 어느 날 문득 뜨겁게 열어젖힌 타인의 시선이 찰나처럼 나에게로 와 닿을 때, 어떠한 장막도 없는 무구한 그 눈빛 속에서나 잠시 살다 가는 것이구나, 느낀다. 그게 전부라 힘이 빠지는데도 이상하게 충분하다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능소화가 시들지 못하고 떨어져버리는 것도 한참을 땅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도 그 여름날 생의 여운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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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를 좋아한다고, 한껏 티내고 다닌 후부터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제 능소화를 보면 해서 생각이 나’, ‘너 때문이 이 꽃이 좋아졌어’, ‘이 꽃 이름은 안 잊어버리겠다’, ‘해서꽃이다’ 얼마 전 아빠와 전화 통화를 했다. 밤 산책을 다니면서 구경했던 능소화 나무가 최근 베어졌다면서 엄마가 ‘저거 해서 꽃인데. 저거 보면 해서 생각났었는데.’하며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나를 꽃으로 여기는 이들. 그게 능소화라서 기분 나쁘지 않다. 내가 그 꽃을 기억하는 만큼 능소화 역시 나를 말하고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재밌기도 하다. 그러나 언젠가 내게 마당 넓은 집이 생긴다고 해도 능소화를 키울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매년 여름, 길에서 만나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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