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족 드라마가 묻는 이 시대의 ‘결혼’ -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문화전반]
글 입력 2017.06.0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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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 :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동등한 예를 갖추어 마주 보고 하는 인사.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상견례라고 하면 흔히 마주보고 앉은 신랑 신부 댁, 서로를 향한 진심 반 겉치레 반의 칭찬 릴레이, 합의점을 찾기 위해 주고받는 결혼식 논의 등이 떠오른다. 어려서이기도 하지만 아직 나로서는 상상하기 거북할 만큼 격식 있어야 하는 자리. 내 자식을 맡겨야하는 사돈에게 처음 인사하는 자리가 바로 상견례다. 6월 4일 한 드라마에 등장한 상견례 장면은 이런 인식과 정반대에 위치한다.<아버지가 이상해 28화 방송화면 캡쳐>
이 상견례는 KBS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메인 커플로 등장하는 ‘차정환(류수영 분)’과 ‘변혜영(이유리 분)’의 결혼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부모들을 당황케 한 예비부부의 결혼 관련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스몰 웨딩 ② 예단과 혼수 ③ 혼인신고 ④ 결혼 후 부부의 거처. ④의 경우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 감정이 상해있는 사돈 자리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신랑의 엄마인 ‘오복녀(송옥숙)’가 건물주의 위치를 이용해 신부의 부모를 함부로 대한 과거가 있고, 그 상황에서 바른 소리를 해가며 사과를 받아낸 장본인이 신부인 혜영이었다. 신부의 집에서 무엇보다 결혼을 반대하던 이유가 시어머니였기 때문에 결혼 후 시집에 들어가 살겠다는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더욱이 인사를 와서 사위가 회사 근처에 전셋집을 얻어 나가살겠다고 약속을 한 상황이었기에 이는 사위의 신뢰도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런 개인적 상항을 제외하더라도 ①,②,③에 해당하는 문제는 분명 사회적으로도 논의해 볼 가치가 있다.스몰 웨딩을 주장하는 정환, 혜영의 말은 이렇다. 보여주기 식 결혼을 둘 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로 대체하고 싶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 가구를 구입하거나 부부끼리 여행을 한다거나 하는 식의 실용적인 부분에 쓰고 싶다는 이유다. 스몰 웨딩이 아니라 빅 웨딩을 하라는 복녀의 주장은 이렇다. 결혼식은 부부만의 결혼식이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녀를 잘 키워 결혼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축의금을 냈다는 말과 함께.
천문학적인 결혼식 비용으로 인해 결혼을 겁내하는 부부들이 많아지면서 2013년 무렵부터 ‘스몰웨딩’이 결혼 문화의 일종으로 각광받고 있다. 본래 적은 하객들과 부부의 취향에 맞게 꾸며진 결혼을 뜻하는 ‘스몰 럭셔리 웨딩’을 의미하지만, 근래에는 경제적 비용 절감을 우선으로 한 결혼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의 주 요소 세 가지 일명 ‘스-드-메’(스튜디오촬영-드레스-메이크업)를 본인들이 직접 준비하면서 추억도 담고 비용도 아낄 수 있을 거라고 흔히 상상하지만, 어설프게 준비한다면 업체에 맡기는 것만 못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듯하다. 드라마에서 제시하는 문제는 ‘스몰웨딩’의 현실적 성취보다는 결혼식을 생략한다는 방식 자체에 있다. “내가 지금까지 뿌린 축의금이 얼만데.......”라는 복녀의 말은 물론 저속하다. 말하는 방식은 물론 맘에 안들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 중에서 저런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기 자녀를 잘 키워 결혼시킨다는 것을 자랑하지 않으려는 부모가 아직은 많지 않은 세상이다.혼인 신고와 예단, 혼수 문제 역시 결혼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 격식과 의미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이냐는 점에서 ‘스몰웨딩’과 논리적 흐름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혜영과 정환은 결혼으로 인해 이미 한 번 이별했다가 다시 만난 사이다. 혜영은 결혼을 바라지 않았고, 정환은 그런 혜영의 미래에 자신이 없음을 아파했다. 혜영이 생각했을 때 결혼은 살아보지도 않은 상대와 제도적으로 얽매여야하는 비합리적 생활방식이었다. 인턴 생활을 거치며 회사가 어떤지 알아볼 수 있듯, 결혼도 인턴을 해볼 수 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의 결과가 혼인신고를 늦추는 것이었다. ‘두 사람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집안의 결합’이라는 결혼을 바라보는 한국의 통념과 이혼 후 위자료 등 법적, 제도적인 부차적인 문제들이 혼인신고와 더불어 존재한다. 문제들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예비부부의 상견례 자리는 엉망이 된다.
엉망이 된 상견례 자리 이후, 정환, 혜영 커플의 모습이다. 둘은 이미 각자의 집에서 더 이상 결혼을 설득할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부모의 반대로 인해 좌절한 모습이 아니라, 반대한다면 굳이 결혼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비혼 커플의 모습이다. 미혼은 ‘아직 결혼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로 언젠가의 결혼한 상태를 상정하고 내리는 정의다. 비혼은 자발적인 의지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인구는 점차 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각종 블로그에서 결혼에 대한 언급은 꾸준히 줄고 있지만 3년 사이 비혼에 대한 언급은 1만 건 이상 늘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6년 혼인 건수는 28만 1600건으로 2012년부터 5년 동안 꾸준히 줄어 최저치를 기록했다.경제적 비용이나, 육아, 결혼 이후의 인간관계로 인해 빚어질 스트레스 등 많은 이유로 비혼 인구가 점차 늘고 있는 시대에 그럼 ‘우리는 비혼을 추구하니 간섭하지 말아라’하는 식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가? 상견례 자리가 엉망이 된 것은 분명 복녀의 무례한 태도가 컸다. 하지만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 혼인 신고를 늦게 하겠다, 시댁에 들어가 살겠다와 같이 아직 부모 세대로서는 한 가지만 듣더라도 생각을 해봐야할 여러 사항들에 대해 미리 얘기하지 않고 상견례를 추진한 정환과 혜영에게도 책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성인 자식 인생에는 부모의 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립적 성격이 강한 두 사람이지만 분명 둘은 아직은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더 많음을 인지하고 있는 지성인들이다. 논란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상견례를 추진하여, (안 그래도 개인적인 감정이 상해있는) 부모들로 하여금 합의점을 잃게 만든 것은 그들의 과실이다. 혼인은 물론 두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결혼할 때도 무엇보다 나와 상대방을 생각할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인정해달라고, 존중해달라고 하는 것 역시 나의 몫 아닌가?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엄마에게 만약 내가 스몰웨딩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흔쾌히 ‘네 맘대로 해~ 좋아.’라고 말했다. 나처럼 쉽던, 드라마에서처럼 어렵던, 본인이 택한 삶의 방식이라면 그 삶의 방식을 존중받는 것 역시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KBS의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는 막장 상견례에 힘입어 6월 4일 3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비혼을 택한 정환, 혜영이 가족드라마의 특성상 결혼을 하게 될 지, 본인들의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가 비혼의 삶을 유지할 지 앞으로가 기대된다.[김마루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마루씨는 주로 젊은 부부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지나치게 진보적인 요구를 하는 점을 지적하셨는데 저는 그럼 기성세대가 이를 받아들일 태도는 되어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설득이 그들의 몫이긴 하지만 세대 갈등을 이미 겪어보았고 매체가 발달한 시대에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충분히 접해봤을 것임에도 관습을 고집하는게 옳은가 하는 문제도 다루었으면 결혼에 대한 더욱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비혼에 관해서도, 저는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정환, 혜영 커플이 상견례 이후 진정한 '비혼주의'를 주장한 것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흐름 상 상견례가 실패로 끝난 것에 대해 홧김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 같은데, 실제로 우리나라나 외국에서 비혼주의를 고수하고 계신 분들은 오랜 세월 동안 결혼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환 혜영 커플의 비혼과는 결이 다르고, 단순히 결혼 거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의문을 남기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루님의 글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통해 결혼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의 물꼬를 튼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