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필요한 건 그 뿐이에요”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6.0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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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도 원치 않아요
내 아들은 자기 뜻대로 살 거예요
멋진 가족이라면 그가 어느 장단에 춤출지
결정하지 않을 거예요 어느 쪽도 원치 않아요
내 아들은 자기 뜻대로 살거예요
이 아이를 한 남자로
키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건
세상이 아녜요
 
사랑 한 스푼
꿀 한 스푼
햇빛 한 줄기가
그의 무지개가 되고
모래 한 줌이
그의 성이자 그림을 그릴
크레용이 되겠죠
필요한 건 그 뿐이에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中 Ni l'un ni l'autre

 
내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던 날, 부모님은 내가 무엇을 잡길 원하셨을까.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그들의 소망만 기억날 뿐이다. 하지만 내가 탈 없이 자라길 바라는 그들의 마음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곤 한다. 마치 이상적인 삶은 딱 하나인양 말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어릴 적 부모님이 말하곤 하셨던, “어느 쪽도 원치 않아요”라는 말이 아닐까. 여기 ‘어린 우리‘와 ’어른이 된 우리‘를 위로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실뱅 쇼메 감독의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Attila Marcel, 2013)이다.
 
영화는 중간 중간 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이 때 폴의 시점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의 시점이 된다. 이는 어린 폴을 둘러싼 상황이 나의 일처럼 다가오는 효과를 주면서도 우릴 다시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는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처음도 이렇게 시작된다.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영화 특유의 영상미와 어울러져 폴은 (혹은 ‘우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길가를 돌아다닌다. 그 앞에 서있는 아빠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영화의 시작은 다소 기괴하게 다가올 수 있다. 뒷모습만 보이는 아빠는 어린 폴이 ‘아빠’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며 마치 그 말을 내뱉지 못 하게 하려는 듯 위협하는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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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폴은 ‘멈춘 시간 속’에 산다. 이모들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그는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못 한 어린아이를 연상시킨다. 항상 목 끝가지 채운 단추와 몸에 딱 떨어지는 양복차림은 무언가에 억압되어있는 듯한 그의 상황을 잘 나타낸다. 그를 옭아매는 것은 “귀족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모들의 억압과 엄마와는 달리 어릴 적 폴을(혹은 나를) 거부하는 ‘아빠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말을 하지 않는 폴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킨다. 자신에게 유일한 따뜻함을 안겨주었던 엄마의 품속에서 떠날 수 없는 폴은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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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딘가 수상하고, 심지어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영화 속 ‘어른’들이 하는 말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는 ‘특이한 어른’이다. 그녀가 하는 말 하나 하나는 엉뚱하고 어딘가 이상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현실을 꼬집는 말들이다.
 
화장실에도 쓰여 있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당신들은 미래에는 신경 안 쓰고 변소에나 신경을 써?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유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폴에게 동정을 느낀 그녀는 자신의 비밀정원으로 그를 초대한다.

너의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아, 바로 너의 머리야. 그 추억은 강가의 물고기처럼 머리 깊숙이 살고 있단다. 그 추억을 꺼내려면 건져낼 것과 이것만 있으면 돼! 그리고 이건 미끼 (차와 빵) 그래서 잘 봐서 이렇게 대어를 낚는 것처럼 볼 수 가 있다.
 
그렇게 폴은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욱 뚜렷이 할 수 있게 된다. 유일한 따뜻함이었던, 엄마에 대한 기억 속에서 사랑을 되찾고 아빠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치유해 가면서 그는 점차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마지막 반전을 통해 폴은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리게 되는데 이러한 내용을 통해 영화는 부성애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꼬집는다. 그(폴)가 아빠를 그렇게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엄마를 옹호하는 이모들의 말과 ‘아빠’, 즉 ‘남성’이라는 존재를 ‘강하고 무뚝뚝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사회적 편견 때문은 아닐까. 영화 속 폴은 영화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아직도 ‘따뜻함’이 필요한, 아직 다 자라지 못 한 어른들의 위한 영화인 것이다.
  
Vis ta vie
네 삶을 살아라

주변 사람들의 속삭임은 너를 위한 삶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삶일 뿐이다. 그러니 너는 어릴 적 부모님이 바랐던 것처럼 그저 건강하게 “네 삶을 살아라”, 필요한 건 그 뿐이다.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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