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만을 위한 타임리프, '너와 100번째 사랑' [시각예술]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 입력 2017.05.3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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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우리는 ‘운명론자’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일은 미리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는 그들의 믿음처럼 정말 개인에게는 타고난 운명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영화는 영화다’라는 말처럼 서로 몸이 바뀌거나 시간을 돌릴 수 있는 타임리프와 같은 비현실적인 일들이 극 안에서는 비일비재한데, 여기다 <너와 100번째 사랑>은 ‘운명’이라는 묘한 주제를 덧붙인다. 일본 영화 특유의 뻔한 감수성이 묻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코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리쿠 역의 사카구치 켄타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생겼기 때문일까.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켄타로의 훤칠한 얼굴은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해로울 정도로, 그만큼 필요 이상으로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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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남사친’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그렇듯 이 영화도 결국 두 주인공 아오이와 리쿠는 친구에서 연인관계로 귀결된다. 같은 마음을 안고서도 많은 길을 돌아온 만큼 지난 날로 시간을 되돌려서 후회없이 사랑하고 아낌없는 행복을 누리지만, 시간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애석하게도 ‘운명’이었다. 친구였던 둘이 갑자기 손을 잡고 나타나 친구들을 놀라게 만들고, 둘이서 자전거 경주도 하고, 밤바다에서 누워 하늘을 보는 일상적인 행복으로 추억을 한 페이지씩 기록해나가지만,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어떻게든 발생하고 마는 아오이의 죽음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갈등의 소재가 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인생 레코드가 불운한 운명까지 바꿔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늘 시간에 집착하고 불안해하는 리코의 모습에서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눈치 채고, 몇 번을 돌아가더라도 결국 죽음으로 귀속되는 자신의 운명이 단순히 타임리프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리코는 아오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레코드판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자고 이야기하지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레코드판을 땅에 던져버린다. 리쿠는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녀를 꼭 살리기 위해 리쿠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렸으며, 얼마나 많은 죽음을 봤어야만 했을까. 산산조각이 난 것은 비단 레코드판뿐만 아니라 온갖 희망으로 이어져야 했을 그녀의 긴 인생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던 삼촌의 조언을 듣게 된 리쿠는 마음을 돌려 얼마 남지 않은 그녀와의 시간을 더 뜻깊게 보내기로 결심하고, 수없이 반복했던 마지막 공연을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들어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 이상 그들에게 다가올 결말이 어떤 모습을 띠는지 알기에 리쿠와 아오이가 같이 부르는 노랫말은 더 아프게만 들렸다.
 
 
너의 존재만으로도
흔해빠진 날들도
1분 1초 모든 게 사랑스러워져
지금 이 순간 시간이 멈춘다면
날 꼭 안아줘 놓지 말아줘
 
-
 
하늘이 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
설령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돌아오는 계절
푸른 바다 곁에서
너와 보낸 나날을 잊지 않아
몇 번이고 더듬었던 시간
둘이서 되감았던 레코드
너를 지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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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간을 자유자재로 돌릴 수 있는 리쿠에게 매일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밴드부 연습을 하고, 기타를 배우고, 하물며 공연 중 실수를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생을 음악처럼 몇 번이고 돌릴 수 있게 만들어줬던 레코드판이 망가지고, 시간을 돌려야만 했던 유일한 이유였던 그녀가 죽은 후 남겨진 단 한번뿐인 리쿠의 나날을 기대하고 상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시간을 주제로 했던 영화 <어바웃 타임>과 마찬가지로 삶을 당연시 여기고 소중한 것을 금방 망각하고 마는 우리에게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이 영화가 주고자 했던 메시지였을 것이다.
 
타임리프를 주제로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뻔한 내용인데다 오글거리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풋풋한 내용과 고교 밴드부가 만든 노래치고는 많이 고퀄리티였던 OST 덕분에 괜찮게 봤던 영화였다. 특히 싱어송라이터 출신 ‘미와’가 아오이 역을 위해 직접 작사한 노랫말과 예쁜 목소리가 영화의 싱그러움을 한층 높여줄 수 있었다. 오글거림과 풋풋한 느낌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 <너와 100번째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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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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