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예능] 평범한 한 끼 식사가 맺어주는 인연 < 한끼줍쇼 >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3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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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는 휘적휘적 거리를 걸어다니며 동네를 구경하고, 해가 지면 온갖 집의 벨을 눌러보며 ‘한 끼’를 부탁한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연예인들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며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도 같이 애를 태운다. JTBC의 <한끼줍쇼>의 모습이다. 연예인들을 불러다가 자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 이 프로그램이 시청률 5%를 넘기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다. 별다른 재미 요소도 없는 <한끼줍쇼>가 사랑받는 이유는 대체 뭘까?

 아마도 그것은 ‘이웃식구’라는 빛 바랜 단어에서 오는 향수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본디 농경 중심 국가였다. 국민의 대다수가 농사를 짓던 그 때, 인터넷을 통해 내 옆에 없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보지 않던 그 때, 우리는 이웃들과 항상 함께였다. 집 안에는 대가족이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고, 집 밖으로는 함께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있었다. 특정 기간에 다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업의 특수성 때문에 두레나 품앗이 등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뚝딱뚝딱 농사일을 해냈다. 이 집 저 집에서 돌아가며 따뜻한 새참을 가지고 와 나눠 먹었고, 고구마라도 찐다 하면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하나씩 집어 들고 다시 산과 들로 놀러 가던 사회였다. 이웃은 식구의 연장선이었고, 모두가 가족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사회 구조 개혁이라는 바람이 불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수확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없어지자 지리적으로 근접한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서울로의 인구 유입으로 집 한 채를 옹기종기 지어 군락을 이루며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다수가 단절된 시멘트 벽 안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벽엔 내부인 외의 접근을 금지하는 잠금 장치가 부착되었다. 이웃 간 소통의 단절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경쟁 사회의 도래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피로를 부추기며 각자의 문을 더 꽉 잠그도록 했다. 더 이상 이웃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방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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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끼줍쇼>는 이런 우리의 집에 겁도 없이 노크를 한다. 그 것도 밥 한 끼를 나눠 먹자며 말이다. 어떤 면에선 참으로 불편한 불청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는 같이 한 끼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MC들은 낯설지만 따뜻한 이의 집에 들어와 그들이 먹는 식사를 같이 나눈다. 밥과 정을 나누는 식구(食口)가 되는 것이다. 밥 한 끼가 타인을 식구로 바꾸는 이런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하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또 다른 이웃에 대한 기대와 관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이웃식구를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생활 방식은 바꼈지만, 정은 남아 있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초인종을 눌러보는 건 어떨까? 이웃식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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