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문학]

황정은, 아무도 아닌
글 입력 2017.04.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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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문학]
황정은, 아무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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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과제를 하느라 늦게까지 깨어있던 날이었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뭐라뭐라 글을 적고 있는 내 등 뒤로는 자고 있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가끔 잠꼬대를 하긴 했지만 그 말들은 여느 잠꼬대가 그러하듯 터무니없는 말이거나 맥락 없는 말이어서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게 보통이었다. 그저 다음 날 우스갯소리로 ‘언니 어제 잠꼬대 하더라, 무슨 꿈을 꾼 거야?’ 정도의 에피소드? 그런데 그날 밤 언니의 잠꼬대는 자기 이름을 부르며 작은 손으로 스스로를 토닥이더니 ‘잘했어, 잘했어, 잘하고 있어.’라고 하는 거다. 그 목소리나 그 날의 어두움과 빛의 섞임의 정도, 잠든 언니의 얼굴. 그런 것들을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 곱씹곤 한다. 수많은 생각들, 수많은 말들이 떠오르면서.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는 사람, 그 잠꼬대는 생각지도 못한 부채감을 주더라.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처지에 처한 채 난처함을 숨겨야 했을까. 어떤 책임이 무거웠을까. 어떤 위로가 필요했을까. 나는, 나는 그 때, 어쩌면 그 이후 혹은 그 전에. 혹시 그 날, 그 다음 날. 아니면 지금. 어떤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을까. 어떤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해버린 것일까. 만약 그 때 그렇게 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이 쏟아지고 또 쏟아지면 결국은 잠식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작고 가벼운 몸 하나가 남는 거였다. 그런 높이와 무게 앞에 보잘 것 없이 죄스러운 나만 덩그라니 남는 거였다.
 
이런 경우, 이런 경험, 이런 감정의 상태에 빠진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저 마다의 때를 지나왔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이 부채감에 잠식되는 사람이다.
 
분명 그 때는 하고 싶은 말, 해야만 하는 말, 나를 변호할 말들이 쏟아졌는데 어째선지 돌아본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황정은 『아무도 아닌』, 「상류엔 맹금류」에서
 
      
‘어쩔 수 없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그 자체로 더 아프고 더 무거운’ 이런 감정을 난 부채감이라고 해버리고 말지만, 부.채.감 세 글자가 아니라 온통 읽어 버리고 그만큼 온통 쌓여있도록 쓴 글들이 황정은 작가의 글이다. 어느 순간 그녀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나가던 순간 그녀가 단편소설로 옮겨 놓은 것이 한 순간 찰나에서 영원 사이를 오가는 그런 감정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찰나인줄 알고 무시한 순간 영원이 되어버리거나 그 반대이거나 그 둘을 제 멋대로 오가거나. 어쨌든 결국은 그런 상태.

‘아무도 아닌’을 자꾸 ‘아무 것도 아닌’으로 읽어버리는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한 편 씩 황정은의 글을 읽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한 편 씩 읽어온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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