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있는 베르디' 리카르도 무티의 올 베르디 콘서트

여유와 열정이 공존했던 무티의 지휘와 경기필하모닉의 환상적인 호흡
글 입력 2017.04.1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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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음악시간, 선생님께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3대 거장의 이름을 외우게 하셨다.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처음에는 그저 생소한 이름들이었지만, '여자의 마음',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윌리엄 텔 서곡' 등 길거리나 미디어에서 들었던 익숙한 곡들이 이 거장들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클래식을 잘 몰라 멀게만 느껴졌던 음악가들도 한 가지의 낯익은 곡만 있다면 왠지 한발짝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베르디의 곡 중 '여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 오페라 레퀴엠의 '진노의 날' 또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일 것이다. '여자의 마음'과 '축배의 노래'만 들어보더라도, 베르디의 음악에는 특유의 경쾌함과 밝은 에너지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Riccardo Muti direttore musicale della Chicago Symphony Orchestra.jpg

 
  무대에 리카르도 무티가 들어서는 순간, 세계적인 지휘자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무티의 공연을 접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이렇게 큰 클래식 공연을 가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인지 괜히 긴장되기 시작했다. 첫 곡은 오페라 멕베스 서곡. 처음 부분을 연주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무티와 경기필하모닉의 호흡이 무척 잘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등장만으로 나를 압도했던 무티가, 왜 '살아있는 베르디'로 불리우는지 깨달았다. 여유와 열정이 공존하는 듯한 지휘,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무티의 지휘는 그런 느낌이었다.

  서곡은 일반적으로 전체 오페라 줄거리를 한번에 보여주는 듯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나부코 서곡 역시 여러 개의 테마가 유기적으로 죽 이어져 긴장을 놓치지 않고 감상하게 한다. 활기차고 아름다운 선율과 플룻 소리의 부각은 마치 동화 속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주었다. 베르디가 이 작품을 만든 시기에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억압을 받고 있었다고 하는데, 베르디의 희망찬 선율이 국민들의 마음을 잘 달래주고 북돋아 주었을 것 같았다.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서곡도 오페라 전체의 아리아와 중창의 선율을 이어서 들려준다. 긴박한 부분이 흐르다가 부드러운 현악기의 선율이 펼쳐지기도 하고 빠른 템포의 웅장한 테마가 등장하기도 하면서 듣는 이가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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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조선일보 


  네 개의 아리아가 1부에 구성되어 있었다. 무티가 직접 발굴했다고 할 수 있는 소프라노 여지원이 멕베스 부인으로, 엘레나로, 엘비라로 변신하여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여지원은 각각의 역할에 몰입하여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곡 소화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멕베스 부인의 야망과 열정을 느끼기도 하였고, 엘비라의 사랑과 간절함도 찾아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엘레나의 아리아는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어려운 곡 같았는데, 소프라노 여지원은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어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했다.

  2부에서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3막 중 <사계>가 연달아 연주되었다. 겨울-봄-여름-가을로 쉼없이 빠르게 몰아치는 구성에 마지막까지 텐션을 잃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다. 첫번째 '겨울'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어둡고 쓸쓸한 겨울의 이미지가 아닌 다양하고 역동적인 멜로디가 펼쳐진다.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고개를 디미는 듯한 느낌으로 시작하는 '봄'은 부드러운 클라리넷의 음색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곡이었다. '여름'의 경우, 다른 곡에 비해 정적이었는데 오히려 그게 뜨거운 여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가을'을 마지막으로 2부가 끝났는데, <사계>가 발레 음악이기 때문인지, 발랄하고 무언가 생동하는 느낌이 곡마다 들어가 있었다. 무엇보다 관악기의 멜로디가 <사계>의 동화적 분위기와 활력을 극대화시켜준 듯 했다. 그리고 무티의 여유와 열정이 나에게 있어 <사계>를 더 매력적으로 들리게 해 주었던 것 같다.

 
Riccardo Muti con una direttrice d_orchestra durante l_Academy.jpg

 
  '올 베르디'여서 더 특별했다. 모두 베르디의 곡으로 꽉 채운 프로그램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베르디의 밝은 에너지로 온 몸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무티의 지휘로써 가능했던 것 같다.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나서 콘서트마스터와 악수하는 대신 볼을 쓰다듬는 등의 무티의 장난기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는데, 이러한 모습 또한 오케스트라와의 시너지를 더 끌어올리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공연 내내 열정을 담고 오케스트라와의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인 거장의 지휘 덕분에 이 날 밤이 매우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무티 포스터 최종.jpg
 


최예원.jpg
 

[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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