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00일의 썸머-운명은 없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08 22: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탔다. 그런데 항상 아침 등교를 같이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항상 일정한 시간도 아니고, 같은 칸도 아닌데 말이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시간이 지나고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500일의 썸머>이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 왜 나는 그 사람과 매일 아침 마주치는 것일까? 정말 운명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500일의 썸머>는 마크 웹 감독의 작품으로 2009년도에 개봉하여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속 톰은 편지 문구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던 중, 회사에 비서로 온 썸머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톰이 썸머를 보고 첫 눈에 반한 후 500일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영화 초반에 드러나는 톰과 썸머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다. 이 둘의 가치관은 아주 다르다. 우선 톰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 인물이고 이와 반대로 썸머는 어릴 적 이혼하신 부모님때문에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찬 인물이다. 톰이 썸머에게 결정적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계기는 썸머가 자신(톰)이 좋아하는 가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운명적 사랑을 믿는 그에게는 나와 취향마저 비슷한 그녀가, 그리고 갑작스럽게 자신의 회사로 들어온 그녀가 마치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너무나 달랐고, 그들의 500일은 순탄하지 않았다.


1.jpg
   
 
이 영화 자체가 남자 주인공인 톰의 시점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영화 속 등장하는 썸머는 소위 ‘나쁜 여자’로 비춰진다. 위의 사진 속 장면에서 썸머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톰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자기가 처음이야”라는 말을 한다. 이 말에 톰은 마치 자신이 썸머의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썸머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남에겐 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톰)에게만 했다는 사실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 톰에게 그녀(썸머)를 다른 여자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 아쉽게도 썸머는 톰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그녀는 어릴 적 이혼하셨던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고, 회피적 성향의 행동을 보인다. 사실 썸머가 톰을 정말로 왜 사랑할 수 없었는 지는 영화 후반에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시간이 지나고,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려는 톰에게 썸머는 약간은 거부감을 느꼈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진 후 피폐한 삶을 사는 톰과는 달리 썸머는 결혼 상대를 만나, 그렇게도 불신했던 결혼을 하게 된다.


 오직 톰의 시점에서만 보면, 썸머는 완전 제멋대로의 나쁜 여자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들을 톰이 아닌 썸머의 시각으로 보면, 그 상황은 달라진다. 그가 썸머에게 그리 좋은 남자가 아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운명적 사랑을 너무 믿었던 나머지 그녀의 ‘진짜’ 취향을 같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png
 
 
레코드 가게에서 비틀즈 멤버 중 링고스타를 가장 좋아한다는 썸머의 말에 톰은 관심을 주기 보다는,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웃기다는 식의 말을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의 취향에만 그녀가 관심을 함께 주기를 바랐고 진정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썸머가 ‘이혼한 부모님’이라는 상처를 자신(톰)에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회피적 성향을 보이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 하고 자신의 사랑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위한 사랑만을 했던 것이다. 이 둘이 헤어진 후에 썸머는 결혼을 하게 되고, 둘은 우연히 톰이 좋아하던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3.jpg
  
 
썸머는 누군가의 여자친구는 싫다면서 지금은 유부녀가 되었냐는 톰의 말에 이런 말들을 한다. 자신(썸머)이 만약 남편을 ‘우연히’ 만난 식당에 일분이라도 늦게 갔다면 그리고 식당에 가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갔다면,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톰과 만날 때는 믿지 않았던 운명을 믿게 된 것이다.
 

썸머 / 그냥, 어느 날 아침에 일어 났다가 알았어.
자기랑 있을 때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걸...


결국 그녀는 톰을 ‘운명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썸머가 톰을 거부했던 이유는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상처로 사랑을 믿지 않았던 것 때문이 아닌, 그저 톰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톰은 자신이 다니던 편지 문구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본래 자신이 원했던 건축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닌다.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던 중에 톰은 똑같이 면접을 보러 온 여자를 만나게 된다.


4.jpg
   

여자는 톰에게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톰은 그 말에 아니라고 답하지만, 알고보니 둘은 가장 좋아하고 자주가는 장소가 똑같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주가는 장소가 겹치는 데도 자신(톰)은 왜 당신(여자)을 보지 못 했는 지에 대한 말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 / 당신이 주위를 보지 않았나 보죠


그렇게 대화를 하던 중 면접을 보러 자리에서 일어난 톰은 갑자기 자신이 알지 못 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연, 항상 일어나는 그것이다.
톰은 마침내 기적 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명 같은 건 없다.
필연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없다.
그는 알았다. 지금 그것을 확신했다.


이제야 운명 같은 건 없으며, 운명이 결국에는 수 많은 우연 중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톰은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데이트 신청을 하고 이름을 물어본다.


어톰(Autumn) / 어톰이에요


그(톰)에게 강렬하고 더웠던 썸머(Summer)는 가고 모든 것이 무르익고 더욱 성숙해지는 어톰(Autumn)이 온 것이다. 영화 속, “우연은 우주의 이치다”라는 말이 나온다. 결국 우리들이 믿는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사랑은 없는 것이다. 계속 반복되는 우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운명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없이 갑자기 다가와 갑자기 이루어지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혹시 당신은 운명을 기다리며
계속 반복되고 있는 우연을
그냥 넘기고 있진 않나요?
   
 
캡처.PNG


[이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