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무박삼일

삼일, 두 중년의 꿈 같은 시간
글 입력 2017.04.0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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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삼일>

2017.03.03(금) - 04.30(일)
매주 금/토/일 공연
금 8시 / 토·일 4시 공연
장소 : 대학로 스튜디오 76




#날이 좋다, 갑작스레 흐려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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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 그러니까 대학로는 항상 사람이 참 많이도 붐빈다. 공연 티켓을 싸게 판다며 두툼한 종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 쌍으로 봄을 풍기는 사람. 혼자서 어딘가 바쁘게 가는 사람. 지하철 붐비는 사람 틈을 빠져나오니 살짝 기온이 낮은 게 따스한 봄을 질투한 잔바람이 남았나 싶다. 사실 연극 자체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중년'이라는 단어 때문일까. 공감 못 할 내용이면 어쩌나 싶은 우환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공연 시간은 4시, 이르게 1시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지도 앱을 보며 조금 안쪽에 위치한 공연장에 도착했다. 그 쯤 찬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공연 보기 전 비가 내리면 어쩐지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는 때가 많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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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바깥과 달리 지하의 공연장은 따뜻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표를 받고 나서 다시 팜플렛을 보아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쩌면 개인적인 머피의 법칙 같은 걸지도 모르지만. 기대를 한 공연이 생각보다 별로인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딱히 기대하지 않았던 공연이 가슴 깊이 남아있는 순간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럴까. 생각하는 사이 입장 시간이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대극장도 좋아하지만, 특히나 무박삼일의 소극장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고개를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깝게 있는 작은 무대와 적은 좌석들. 공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고 배우의 목소리 표정 하나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자그마한 곳을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나 또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면서도 '무명'에 가까운 것처럼. 내가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배우들이 적은 페이를 받고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있음을.

 공연 시간이 되어 시작을 하나 했더니 공연을 보러 간 날,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좌석표가 들어 있는 상자와 상품은 장뇌삼. 뒤적뒤적 뽑은 표의 주인의 품에 상품이 돌아갔다. 내심 바라기는 했지만 장뇌삼을 내가 가진다 한들 먹을 줄도 몰라서 차라리 안 된게 다행이다 스스로 위로하며 서서히 꺼지는 조명에 작은 소극장 안이 적막으로 물들었다.



#중년의 이야기, 어쩌면 나이는 문제가 아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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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머피의 법칙'은 틀리지 않았다. 무박삼일. '중년'의 이야기라고만은 할 수 없는 연극이었다. 초반부 어두워진 풍경 속 들려오는 바다의 드나드는 소리. 그 곳의 벤치에서 두 중년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둘 모두 가정을 가진 엄마와 아빠.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은 서서히 지워지고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변해간다. 각자 가진 꿈도 있었지만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 마음 속에 눌러 담아둔 꿈과 자신의 이름 마저 희미해져 가는 것이 괴로워 떠난 여행. 거기서 만난 둘의 이야기는 단순히 '중년'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고 싶다.

 남자는 기타를 칠 줄 알고, 여자는 음악을 좋아하고 하고 싶었으나 가난 때문에 하지 못했고 이후에는 사느라 시간이 없어, 엄마로서 희생하다보니 자신의 시간과 존재가 희미해져 결국 그 곳을 떠나 여행길을 오른 것. 그 둘은 같이 술을 마시고 꿈을 꾼다.

 꿈 속에서 여자는 자신이 그토록 연주하고 싶던 악기들이 있는 공간 속에서 남자에게 묻는다.

 "여기가 어딘가요."
 "꿈 속 이요."

 피아노로 다가가 환하게 웃는 여자를 보며 연주를 해보라고 권한다. 연주할 줄 모른다며 말하는 그녀에게 꿈 속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하며 연주가 시작된다. 노래 가사가, 슬퍼 이때부터 울먹이다 못해 눈물이 흘러내렸다. '중년'이라 하면 떠오르는 나의 친모가 떠올라서일까. 가정을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친부의 잔인한 폭력을 견뎌오며 이름이 아닌. 누구 엄마로 불려오며 살아온 친모의 20년이 노래 소리에 섞여 연극 속 인물들에게 동화되어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분명, 나의 엄마에게도 중년이 되어버린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을텐데. 이제는 다행히도 그 지독하고 괴로웠던 순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대체 어느 누가 그 긴 시간의 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상사병과 우울증은 같아요.


 한차례 꿈이 끝나고 둘은 카페에서 술을 기울인다. 여자에게 남자는 말한다. "상사병과 우울증은 같아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는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 여자는 화를 낸다. "나를 왜 환자 취급해요! 우울증 같은 거 아니라고요!" 여자는 운다. 오열을 한다. "당신이 나에 대해 무얼 알아." 소리 지르고 울던 그녀는 인정하고 만다. 나도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아예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만 주륵주륵 흘렸다. 그녀의 잃어버린 시간과 존재들. 그 속에 숨어있던 우울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부분을 보았기에 터져버린 건 아닐까.



#그 시대의 희생,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연극이 끝나고 배우님들과 포토타임이 있다고 했지만, 감정소모가 너무 심해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하늘은 맑아졌고 아직 덜 마른 눈물을 가리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현재 중년들이 이전에 희생해 온 시간들, 가난, 꿈 등등 을 음악에 너무나도 어우러지게 잘 표현했다. 음악극의 모든 장점을 제대로 살렸다. 그 때문에 배우들의 감정에 동화될 수 있었고 내가 울어버린 것 역시 그런 연극의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누군가로 꿈을, 시간을 희생하라는 강요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어도 아닌 척 해야 하는 이 시대. 누구나 힘들고, 그렇다고 함부로 아픔을 재어보려 해서는 안된다. 같은 일에도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힘들게 느끼는 사람이 존재하고, 아닌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도 누군가는 이런 희생에 아파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가장 중요함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무기력감에 짓눌려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

 무박삼일은 결코 중년만을 위한 연극이 아니다.

 삼일, 그 시간 속에 음악극이 있고 두 여행객의 이야기가 너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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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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