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지극히 사회적인 이야기, 녹색이념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4.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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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대부분 자기 얘기를 하지 않아요. 누군가가 적어준 글과 가사,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을 대신 하죠). 그렇게 해서는 절대 자신의 깊은 마음을 꺼낼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힙합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hiphop LE와의 인터뷰 중(中)-
 



녹색이념.jpg
 

 구어체의 듣기 좋은 가사와 비트를 밀어내듯 트랙을 뱉어내는 그의 음악은 열 일곱 살의 나를 매료했다. 역으로 반 박자, 혹은 한 박자 빠른 ‘엇박’의 랩핑은 듣는 이의 귀에 아슬아슬한 스릴을 선사한다. 테이크원(Takeone)의 팬이 된 이유가 단순한 귀의 즐거움 때문은 아니다. 그는 가뭄에 콩 나듯 새로운 작업을 발표해 나와 같은 덕후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한참을 기다린 후 재생 버튼을 누르면, 뚜렷한 신념과 태도가 담긴 테이크원의 세계가 열렸다. 5년 전 <쇼미더머니 1>에 출연했을 당시엔 이러한 뚝심이 그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했다. 열정적으로, 때로는 가슴 속 환상을 가득 담아 힙합을 사랑하던 여고생의 눈에는 그의 모든 것이 멋있어 보였다. 훌륭한 음악성, 멋진 태도, 그리고 대형 방송사라는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자신감. 이상적인 뮤지션을 찾아 헤매이던 어린 소녀는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낡은 CD플레이어에 그의 믹스테잎을 재생했다.

 작업의 완성도 향상과 크론병 투병으로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을 목 빠지게 했던 그의 정규앨범이 2016년의 마지막 날,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이념》은 발매 한참 전부터 수많은 리스너와 힙합 저널의 조명을 받았다.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가수 명 표기가 바로 그것이다. 15트랙의 앨범 주인은 수 년간 불리우던 예명 테이크원이 아닌 ‘김태균’이었다. 그는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이 좋아하는 테이크원의 이미지와 본연의 김태균 사이의 간극을 느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이번 작업에서는 포장하지 않은 진짜 김태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태균.jpg
 

 ‘진짜 ○○○ 를 보여주겠다’. 종종 마주하는 표현이지만 ‘진짜’라는 단어 뒤에는 충분한 자기성찰에 수반되는 지겹게도 부끄러운 민 낯-나만 아는 찌질하고 볼품없는 내 모습-이 따라온다. 김태균의 가사는 상업적으로 도태한 음악가를 날카롭게 꼬집지만 이것에 적극적으로 맞서 대응하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사람이 그렇게 솔직하기도 어려울 텐데. 그의 가사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사람도 별 거 아닌 사람이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닥까지 추락한 자신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음악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심적인 요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적이기보다는 사적인, 나이브한 스토리는 인간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녹색이념》의 녹색은 돈을, 이념은 꿈을 상징한다. 돈을 좇는 꿈, 들으면 들을수록 아이러니한 말이다. 우리는 모두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지만 마음 속엔 돈과는 거리가 먼 이상적 삶이 꿈틀거린다. 두 가지를 한 번에 이루어 내는 극소수의 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돈과 타협하거나, 그것을 버리고 이념을 추구한다. 김태균은 초심을 잃은 채 상업적이고 질 낮은 트랙을 찍어내는 예술가를 비롯해 돈을 이유로 그에게 상처를 준 여러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조장하고 방관한 돈과 사회를 비판한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아닌 개인적이고 오랜 경험과 느낌은 그들을 향한 날카로운 화살이 된다. 발가벗은 김태균은 15개의 화살을 뽑아 녹색 과녁에 시위를 당긴다.


녹색이념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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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다. 그의 음악에는 ‘듣는 즐거움’이 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앨범의 전체 트랙에는 힙합 하면 떠오르는, 스웩 넘치는 영어 가사가 없다. 가독성 좋은 한글 가사에 글자의 발음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박히는 래핑은 마치 내레이션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깔끔한 벌스에 더해진 가스펠 사운드는 깊이감을 더한다. 그의 음악에는 (feat.○○○)와 같은 피쳐링 표기가 없는데, 이는 김태균이 곡을 함께 불러준 이들을 하나의 악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곡 안의 피쳐링 가수 비중이 적으며, 그들과 다른 악기들이 이루는 음악적 조화는 매우 훌륭하다.





무지와 질투 그리고 시대착오
역사적 반동세력들과 난 닮아있어
누군가의 눈에 누군가의 눈엔
나 또한 희망이겠지 지금 이 문화에 있어
이건 어쩌면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
타협보다 죽음을 선택한 그의 이념과
약간 닮아있어 난 단지 이 음악에 있어
여기서 질문 지금 누가 살아남아 있어
 
-김태균, <암전>中-





 김태균의 가사는 곡의 심플한 구성만큼이나 고독하고 처절하게 도전장을 내민다. 스스로를 역사적 반동 세력에 빗대어 투지를 나타낸다. 노래는 쓸쓸한 벌판에 홀로 우뚝 서 있는 것만 같아 외롭다. 타협하지 않는 외로움은 그의 음악과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를 더욱 굳건하게 한다. 그는 온전한 자신의 얘기를 함으로서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질감과 위로를 선사한다.  《녹색이념》은 진득하다. 김태균이 그린 것은 한 배우의 인생이다. 곡을 난잡하게 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 하나의 인생 서사극과 같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심오한 연극 한 편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하나하나의 곡이 아닌 앨범의 열 다섯 트랙을 모두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와 함께, 애써 외면해 온 가치와 마주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_hiphop LE
에디터 10기_신예린


[신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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