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선형의 시간 축 위에서 [문화 전반]

시간을 인식하는 법
글 입력 2017.04.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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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나 정말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특히 내 곁을 떠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때, 모든 순간이 그렇다.

“그 때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찰나의 행동이 일으켰을 나비효과를 생각하며, 모든 순간에 후회의 씨앗을 심는다. 매 순간의 조각들이 합쳐서 만들어 낸 비극이기에, 어느 조각을 바꿔 끼었어야 했는지조차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인정하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만, 가끔씩 어쩔 수 없이 후회와 미련이 들기도 한다. 이 때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미래를 바꾸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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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많은 영화의 주인공들이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프 온리>의 주인공 이안은 여자친구 사만다의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바꾸려 투쟁한다. 되돌아간 과거에서 운명과도 같이 닥쳐오는 그녀의 죽음을 막는 데 매번 실패하지만, 결국 자신의 죽음이라는 부작용을 무릅쓰고 사만다를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은 메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타임리프를 활용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생겨나는 다른 문제들에 현재를 충실히 살기로 결심한다.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과거를 바꾸려고 하지만, ‘운명’이나 ‘시간의 흐름’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이프 온리>의 이안은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굴복하지 않고 마침내 사만다를 살려내지만, 결국 누군가가 죽는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어바웃 타임>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바뀌어버리기 전의 ‘원래의 현실’이 존재하며, 팀은 이를 자신이 따를 운명이라 생각하고 능력을 접어둔 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현재를 만들어 간다.

두 영화를 보면 시간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결국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인간은 그 흐름을 어느 정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 시간은 일직선으로 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가 모여 현재가 되고, 현재가 모여 미래로 나아가며,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미래도 바뀌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리는 행위의 초점은 과거에 있다. 다른 한 편으로, “현재에 충실하자”는 이들의 깨달음은 인간 삶의 근본적인 중심이 현재에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이안은 현재에 충실해 본 뒤 미련 없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팀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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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습성은 영화 <컨택트>의 루이스에게서 더욱 심오한 형태로 발견된다. 루이스는 현재에서 미래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미래에서 본 것을 절대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설령 자기 딸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더라도. 자신이 보았던 미래의 행동을 현실에서 그대로 재연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함께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가 본 미래는 현재가 되고, 마침내 그녀의 능력은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를 보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는 그녀가 시간을 “linear”가 아닌“non-linear”로 인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선형이 아닌 비선형의 세계에서는 앞과 뒤의 구분이 없고, 어떤 분명한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바로 햅타포드의 언어와 일맥상통하는데, 그들의 언어에는 시제가 없으며, 글자의 앞 뒤조차 구분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언어와 달리 소리와 음성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 햅타포드와 접촉한 초반에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는 데 애를 먹었던 이유이다. 12개로 흩어진 우주선처럼, 나누어진 각 지역의 다양한 언어에 능통한 학자인 루이스는 이런 햅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대로, 그들의 언어를 배운 루이스는 시간구조 또한 그들의 방식대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제 1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변형되어 루이스에게 던져진다.

“당신의 딸이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도, 같은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루이스에게 현재는 과거이자 미래이고, 미래 또한 마찬가지로 현재이자 과거이다. 햅타포드의 언어와 시간 체계를 습득한 그녀가 분열될 뻔 했던 세계의 화합을 이루어내는 결말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다. 햅타포드가 인간에게 주고자 한 ‘무기’, 인간의 입장에서 ‘공격 도구’로 의심되었던 그것은 바로 언어와 시간에 대한 통찰이자 통합의 열쇠였다. 루이스가 아이의 이름을 시작과 끝이 같은 “Hannah”로 짓고, 죽음이라는 결말이 기다릴 것을 알면서도 시작부터 끝을 모두 기억하며 받아들였던 것의 의미이다.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햅타포드의 말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비선형 시간 체계에서는 이미 죽은 것이나, 죽어가고 있는 것이나, 앞으로 닥칠 죽음이나 모두 같은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4. 세 영화의 주인공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각각 다르지만, 한편에서는 비슷하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것,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 나아가 과거와 현재, 미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덧붙이자면,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인식하면 일직선의 인과관계는 없고 모든 찰나의 조각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과거가 현재이고, 현재가 미래이며, 미래가 과거일 수 있는 이유이다.

세 명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현실의 우리에게는 시간과 관련된 어떤 능력도 없고, 시간이 되돌아가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선형의 시간 위에 중심을 잡고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만들어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삼 인간이라는 존재의 잠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가 형성한 부족한 인식의 틀에 갇혀 사는 인간이지만, 오히려 틈이 있는 인간이기에 새로운 인식의 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가능성은 햅타포드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하필이면 지구로 온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그렇게 살고 있었고, 가까운 미래에 ‘무기’를 부여 받아, 시간의 축에서 중심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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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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