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것들을 노래하다 [시각예술]

인생영화가 뭐예요? 에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글 입력 2017.03.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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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시가 나에게 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들어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라고 자신의 시, <시>에서 말한다.

영화에서 마리오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다. 비록 처음 의도가 여자를 많이 만나고 싶다는 순수하면서도 원초적인 것일지라도, 그는 서서히 ‘은유’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렇게 은유에 눈을 뜨던 마리오는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그녀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다가 그것은 시에 대한 욕심으로 확대된다. 결국 그에게 시는 사랑을 위한 수단을 넘어서 목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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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인생의 영화를 딱 하나만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늘 망설였다. 이 영화는 이래서 좋고, 저 영화는 저래서 좋은데 어떻게 하나만 고르란 말인지. 근데 일 포스티노를 두 번째로 극장에서 본 날, 이젠 인생의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마리오가 자전거 타는 장면에서 그 유명한 ost가 나오는데 이 장면이 영원했으면 싶게 행복했다. 특히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웃기는, 기분 좋은 위트가 곳곳에 등장하는데 그게 또 행복을 더해준다.

마리오 역을 맡은 마시모 트로이시의 연기가 굉장히 뛰어났는데, 영화 <집으로>를 볼 때의 그 어린 유승호의 자연스러움이 떠올랐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 역을 맡은 한석규도 일 포스티노의 마리오 같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배우는 참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찍고 12시간 만에 사망했는데, 평소 가지고 있던 심장질환 때문이었다. 나는 이 훌륭한 배우의 마지막 연기가 마리오인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정말 시골 우편배달부, 마리오 그 자체였다. 순박한 눈빛, 살짝 수줍은 듯한 미소, 그러나 시인 네루다에게 베아트리체에게 줄 시 하나 못 쓰면 어떻게 노벨 문학상을 받냐고 따지는 그 순수하게 당찬 모습이 극장에 모든 사람들의 입꼬리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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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영화에서는 왜 시인과 시여야 했을까? 원작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하자면 왜 그 소설에서도 시인, 시였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이나 산문이 아니고 콕 집어서 ‘시’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시가 주는 묘한 반추에 있다고 본다.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에게 문장을 선물했을 때, 그것이 산문이나 일기 혹은 소설이었다면 베아트리체가 그렇게 단시간에 반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단어의 배열이 시를 구성해 그 의미를 더욱 곱씹게 되고 잊혀 지지 않는 것이다.
‘당신의 미소는 나비의 날갯짓, 장미, 땅에서 움트는 새싹, 물줄기’ 베아트리체에게 처음 말 해준 것처럼 몇 가지 단어들로 이루어진 ‘시’만이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끌어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리오의 눈이 시로써 넓혀졌다. 예전에는 이 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베아트리체 루소” 라고 대답했던 그의 대답이 나중에는 “절벽에 부는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이라고 대답할 만큼 그의 시야는 넓혀졌고, 그것이 비로소 시가 될 수 있었다.

 우리 각각에게도 분명 언젠가 시가 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오글거린다, 부끄럽다.’는 말로 그 다가오는 시들을 내쫓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정현종의 방문객을 인용하여 말하고 싶다.
시가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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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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