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가현이들 > 알바생도 '노동자'다 in 2017 인디다큐페스티발 [시각예술]

우리는 모두 가현이가 되어야 합니다.
글 입력 2017.03.2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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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포세대, 지금의 2030세대에게 흔히 붙는 수식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 그리고 나아가 내집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N포세대가 포기하는 것들이다. 때로는 N포세대와 더불어 니트족이라는 말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 무직자를 일컫는다. 청년실업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늘 공존한다. 분명 사회적으로 우리는 모든 기회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치열한 경쟁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런 청년세대에게 기성세대는 '노력'의 잣대를 들이밀기도 하는 것이다. '너희가 노력을 안하기 때문이지.', '우리 땐 그런 거 다 참고 살았어.' 잔인하디 잔인한 말이다.

  학점, 스펙, 취업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지만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위해 우리는 '알바생'이 된다. 최저임금은 조금씩 올라 6500원에 다다르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서야 한 시간을 꼬박 일해야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사회는 노동을 귀중히 여기는데 매우 서툴다. 아마도 이념투쟁의 역사 때문이리라. 하지만 색채논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날은 더이상 이념의 시대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그동안 이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인본주의적 가치이다.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우리의 노동은 매우 귀중하다는 것을 모든 노동자들은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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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현이들> 속 가현이들은 바로 노동이 귀중한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이다. 최저시급 만원, 멀디 먼 이야기로 들리는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하 '알바노조')이 처음으로 외쳤던, 그리고 지금까지 외치고 있는 구호다. 이들이 처음 이것을 외칠 때만 해도 세상은 그들에게 냉소적일 뿐이었다. 최저시급이 5000원도 채 안되던 4년 전, 미친 소리 한다며 그들을 힐난하던 행인들 속에서도 그들은 꿋꿋히 외쳤다. 다행히 4년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이제 많은 시민단체들과 정당,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최저시급 만원'을 이야기한다. 당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어젠다가 이렇게 현실 속에서 공론화되기까지 그들의 외로웠던 투쟁이 있었다. 하나의 이야기로 가득찬 이 영화가 이렇게 굵직한 영화제에 소개된 것 역시 그들이 일구어낸 시대적 요구 덕분이리라.

  처음 이들이 알바노조를 설립하게 된 건 "알바들이 떼인 돈을 찾고 부당함을 제기하려면 일을 그만두거나 개인적으로 노동청에 신고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고용주와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합의할 수 있고 필요하면 단체행동을 벌일 수 있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의해서 였다. 그렇다. 알바생도 분명히 노동자이지만, 그들에게는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중 어떤 권리도 보장되지 않았다. 내일 당장 나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아도, 손님이 없으니 집에 가라는 통보를 받아도, 쉴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8시간을 내리 서있어야 해도, 알바생은 '을'일 뿐이었다. 가현이들은 일명 '꺾기'를 일삼는 맥도날드에 단체로서 대항했고 노조 가입을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하고서도 법적으로 대응했다. 비록 이 맥도날드라는 대기업이 4년째 단체협상을 거부하여 여전히 그들은 싸우고 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많은 알바노동자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알바노동자가 뭉치면 '갑'이 될 수 는 없어도 더이상 '을'이 아닐 수는 있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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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현이들> 속 세 가현이들.

 
  이 영화의 제목이 <가현이들>인 이유는 감독을 비롯하여 알바노조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이들이 공교롭게도 '이가현'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정말 우연히 새로운 가현이가 그들 앞에 나타나 새로운 노동조합원이 되었다. 이 네 번째 가현이가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른다. 가현이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고,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 것. 함께 투쟁하지 못해도 투쟁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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