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심청이는 정말 기쁘게 인당수에 뛰어들었을까? - 심청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글 입력 2017.03.1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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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이강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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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은 우리나라 조선 후기에 탄생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로이자 한글 소설이며, 판소리 소설입니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20세기 초반까지 소설은 물론 판소리와 창극으로 널리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향유되지요. 하지만 요즘은 고전물을 현대물로 각색하며 원작의 내용을 뒤집는 파격적이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곤 합니다. 일단, <심청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황해도 황주 땅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봉사가 살았는데 늦게 딸을 낳아, 그 이름을 심청이라 하였다. 심청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동냥젖으로 자랐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극진한 효성으로 모시던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15살에 인당수 제물로 몸을 팔아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에 보낸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은 연꽃으로 다시 환생하여 왕후가 되었는데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맹인 잔치를 벌인다. 심학규는 우여곡절 끝에 맹인 잔치에 참석하여 딸을 만났는데 그 반가움에 눈을 뜬다."


어릴 적 <심청전>을 읽었을 때는 마냥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몸을 바친 효녀로만 배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이처럼 '효'가 <심청전>의 주제라는 견해는 가장 지배적인 설로 되어 왔으나, 이제는 이에 대한 수정과 재론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죽음'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단의 링크와 같이 오랜 역사 내내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양하게 표현해온 무용예술을 포함하여, 이번에 소개해드릴 연극에서도 '심청이의 죽음'은 꽤나 흥미롭고 생각해볼 만한 주제입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혹은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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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심청>은 광장시장 옆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하였습니다. 두산아트센터는 처음으로 가 보았는데요. 건물 내에서 작은 전시회도 열리고 여러 조형물이 있어서 둘러 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연극은 '비지정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미리 공연장에 와서 줄을 서는 것이 앞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작은 팁 입니다. 저 역시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하였기에 다행히 앞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요, 등장 인물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 공연인 만큼 조금 더 부지런히 오셔서 앞 좌석을 선점하시기를 매우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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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의 <심청>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심청이 아니라 '간난'이입니다. 간난은 희생 제물이 되기를 강력히 거부합니다. 심청이와 같은 깊은 효심은 커녕 노름에 오입질만 일삼다 '겉보리 스무 가마'에 자신을 팔아 넘긴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가득하지요. 공연 시작 첫 장면부터 제물이 되지 않겠다고 식음을 전폐한 채 드러누워 시위를 하는 간난의 모습을 보면 이와 같은 모습이 바로 '죽음' 그것도 원치 않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연극은 선주와 그의 세 아들들이 그녀로 하여금 '제물 되기'를 설득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간난과 선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인식에 이르게 되는 연출이 인상 깊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의 역할이 뚜렷하고 자신 만의 색상이 강하여서 어느 한 인물 조차도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대사 없이 보조적인 역할로 나타나는 하얀 옷의 배우 분 역시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섬세한 손 짓과 차분하고도 가벼운 발걸음은 그가 그냥 배우가 아닌 '정말 하늘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이 내려온다면 마치 이런 모습이 아닐까'는 상상을 하게끔 하였지요. 세 아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본심을 숨긴 채 온갖 방법으로 심청을 설득하고 형제 간에 서로를 견제하며 어떻게해서든 아버지로부터 인정 받고자 하는 모습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 하였습니다. 형제 간의 사이가 항상 하하호호 우애가 깊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니까요.

이러한 세 아들에 의한 세 번의 각기 다른 설득 방법, 그 과정에서 심청의 옷 갈아입기를 통해 간난은 마침내 스스로 제물이 되기로 합니다. 각 아들이 제시하는 설득은 '회유'와 '협박' 혹은 '희망'이었습니다. 세 차레의 옷 갈아입기 중, 마지막 간난의 '왕비 옷'으로 갈아입는 씬은 정말 천한 신분인 간난이 마치 여왕이 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낡은 옷에서 새 옷으로, 다시 왕비의 옷으로 세 벌의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간난의 의식은 점차 고차원적으로 성장하였고 마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이과 같이 간난이 죽음을 대하는 마음이 차차 바뀌어 갔습니다. 마침내 선주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팔아버린 아버지를 그리고 그런 자신을 사들인 선주를 용서하는 장면은 찔금 눈물이 나곤 하더군요.



심청이 아닌 박간난이 바라보는 죽음이란?



심청의 죽음과 선주 본인의 죽음을 동일시 하는 장면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아니, 인상 깊은 정도가 아니라 보는이로 하여금 그 생생한 연기력과 연출에 소름이 돋았지요. 간난에게 도망갈 길을 안내해주지만 간난은 '뜻 있는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거절의 순간부터 선주의 표정을 어두워지기만 하고, 이윽고 선주는 간난이 인당수에 빠져 죽는 순간에 함께 죽고 싶어하는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간난이 떠나자마자 사망하곤 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한 저승사자가 자신을 낭떨어지에 밀어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의연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채 말이지요. 만약 심청이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끝내 도망을 쳤다면 선주 역시 더 오래 살아남지 않았을까요?

선주는 많은 여자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게끔, 그리고 그들이 체념하고 제물이 된 상황을 받아들이게끔 작성한 '심청전'이라는 컨샙도 신선했습니다. 심청전을 읽기만 하였지, 이 내용의 작가까지 상상해 본 적은 없었으니 말입니다. 심청에게 선주라는 자의 존재가 이렇다시피 선주에게도 심청의 역할은 비중이 매우 큽니다. 선주는 간난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간난을 사랑하게 되고 수 많은 심청들의 죽음에 대해 비로소 깊이 생각 할 수 있게 되지요. 그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 빠지는 많은 심청이들의 마음을 선주도 조금이나마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며 우리나라 고전 소설을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본 이번 연극 <심청>에 대해 큰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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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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