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 기록2 [문화전반]

글 입력 2017.03.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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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김수영 시인의 시제목을 인용했습니다.



 1. 날아라 병아리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설 때면 이상한 설렘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교문 앞을 가득 채운 솜사탕 기계나, 달고나, 갖가지 불량식품을 지나고 나면 끝에는 허름한 박스를 둔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앞에 있는 박스를 들여다보면 노랗고 조그마한 병아리들이 한데 엉켜 소리를 질렀다. 고작 8살이던 내게 개나리꽃만한 병아리는 너무 연약한 친구였다. 부모님이 과자 사먹으라며 준 오백 원을 할아버지에게 주고 나서, 나는 한참을 박스 앞에 앉아 고민했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해야 할 소중한 친구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마침내 내 손 위로 올라온 병아리는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나를 보며 울었다. 그때의 나는 그 울음이 나를 향한 반가움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울음은 생사(生死)를 함께한 친구들에게 건네는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박스 안에 놓여 앞으로도 한참을 울어야 할 수많은 친구들에게 안부를 건넨다는 건 어떤 느낌이었을까? 요즘도 가끔은 내 손에 놓인 병아리의 울음을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던 까만 눈동자는 고마움보단 원망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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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_다음 이미지


 “평생”이란 말을 했지만, 병아리는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혀를 차며 원래 병아리는 오래 살지 못한다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병아리가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본 것은 힘없이 축 쳐진 노란 몸이었다. 보송하던 털이 힘없이 흔들거렸다. 아침 밥을 거르고 집 뒤에 있는 산에 올라 병아리를 묻었다. 주먹만한 봉우리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애도를 경험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일은 훨씬 더 가슴 아프고 저미는 일이었다.

 학교에 가서도 애도는 멈추지 않았다. 자꾸만 눈물이 났고, 모든 것이 내 책임인 것만 같아 손이 떨렸다. 내가 더 잘해줬더라면, 내가 밥을 많이 줬더라면, 아니야. 그냥 차라리 내가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원초적인 생각에 근접할수록 고개가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떨어졌고 온 몸이 지진을 경험하듯 떨렸다.

 -괜찮아?

 내 애도를 보던 짝꿍이 상냥하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내 손이 목격한 죽음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삽시간에 아이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짝꿍은 병아리가 죽었노라 말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아이들은 금새 훌쩍거리며 나의 애도를 저마다의 양으로 가져갔다. 애도를 짊어진 작은 어깨들이 흔들리기도 하고 굳건히 버티기도 하며 나를 위로했다. 중력을 거스르던 애도의 무게는 가벼워졌고 우리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면서 애도를 마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슬픔을 공유한다는 것은 함께 슬퍼지는 것이 아닌 함께 기뻐질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 처음이었다.

 그 후에도 병아리를 한번 더 샀다. 하루쯤 키우다 닭을 키워본 적이 있는 친구에게 주었는데 친구는 내 병아리를 훌륭한 닭으로 성장시켜 내게 보여주었다. 꼬꼬- 꼬꼬- 우는 닭을 보며 작은 봉우리 안에 잠든 나의 첫 친구를 떠올렸다. 친구의 집을 나서며 잠시간 울었다.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닭이 됐어. 안 죽고 닭이 됐어! 창 밖으로 날아가는 새가 꼭 병아리 같았다. 노을 진 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나는 병아리가 나는 꿈을 꾸었고, 병아리의 키만큼 키가 큰 아침을 맞이했다.



 2. 1인칭과 3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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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_다음 이미지


  우리는 애도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애도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공감에 기초한다. 누군가 슬퍼할 때면 그 슬픔을 공감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공감에 기초한 애도는 어릴수록 잘 스며들고 클수록 섞이지 못한 채 머문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릴 땐 모든 공감을 1인칭 시점으로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3인칭 시점으로 공감한다는 것이다. 내 첫 병아리 친구가 죽었을 때, 아이들은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애도했다. 아이들에게 슬픔은 ‘남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었고 슬픔은 공유하는 것이 아닌 공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달랐다.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슬픔은 ‘나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이었고 공감하는 것이 아닌 공유하는 것이었다.

 “안타깝네. 하지만 내 일은 아니야.”
 “지겨운데, 이제 그만 좀 하지.”

 나의 슬픔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무겁다. 남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고 가볍다. 이 서늘한 등식은 우리의 시대를 점령한다. 우리는 쉽게 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의 감정에 대해 떠든다.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리낌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것인 사람들에겐 다르다. 나의 것을 지닌 사람들은 온 몸으로 슬픔을 느끼고 그것을 하루하루 뼈에 새기듯 깨닫는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에 대해.

 나는 그래서 왕좌에 앉은 그녀가 싫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게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들에겐 오직 “나의 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이를 공감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1인칭으로 접근한다. 분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3인칭은 그렇지 않다. 3인칭 입장에선 분노보단 해결방법을 모색한다. 그들에게 분노는 중요하지 않은 감정이다. 그보단 이 일을 서둘러 해결하고픈 감정이 더 크다. 그래, 그들의 감정은 귀찮음과 지루함이다. 세월호에 대해 떠올려 볼까? 1인칭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극도의 혼란스러움과 분노, 슬픔을 공감한다. 하지만 3인칭 입장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공감이나 동화(同花)는 감정적이고 불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감정을 공감하고 동화(同花)하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히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를 떠올리면 우리는 감정이 없고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상을 떠올리지 않는가?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고 불안전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1인칭 시점은 무척이나 중요한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니까 공감할 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3. 오늘의 시(詩)


 아침부터 날씨가 좋다.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릴 시를 고르다 평소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쓰고자 한다. 모두에게 기분 좋은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록을 마친다.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 김수영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 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學生)들의 웅장(雄壯)한
기념탑(紀念塔)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
그 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인
지긋지긋한 그 놈의 미소하는 사진을―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방방곡곡에 안 붙은 곳이 없는
그 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
동회(洞會)란 동회(洞會)에서 시청(市廳)이란 시청(市廳)에서
회사(會社)란 회사(會社)에서
××단체(團體)에서 ○○협회(協會)에서
하물며는 술집에서 음식점에서 양화점(洋靴店)에서
무역상에서 개솔린 스탠드에서
책방에서 학교에서 전국(全國)의
국민학교(國民學校)란 국민학교(國民學校)에서 유치원(幼稚園)에서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썩은 놈의 사진이었느니
아아 살인자(殺人者)의 사진이었느니
 
너도 나도 누나도 언니도 어머니도
철수도 용식이도 미스터 강도 류(柳)중사도
강중령도 그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편리해서 살기 위해서
빨갱이라고 할까보아 무서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신주처럼 모셔놓던 의젓한 얼굴의
그 놈의 속을 창자밑까지도 다 알고는 있었으나
타성같이 습관같이
그저그저 쉬쉬하면서
할 말도 다 못하고
기진맥진해서
그저그저 걸어만 두었던
흉악한 그 놈의 사진을
오늘은 서슴지않고 떼어놓아야 할 날이다
 
밑씻개로 하자
이번에는 우리가 의젓하게 그 놈의 사진을 밑씻개로 하자
허허 웃으면서 밑씻개로 하자
껄껄 웃으면서 구공탄을 피우는 불쏘시개라도 하자
강아지장에 깐 짚이 젖었거든
그 놈의 사진을 깔아주기로 하자……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인제는 상식(常識)으로 되었다
자유(自由)는 이제는 상식(常識)으로 되었다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붙들어갈 사람은 없다
 
군대(軍隊)란 군대(軍隊)에서 장학사(獎學士)의 집에서
관공리(官公吏)의 집에서 경찰(警察)의 집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찾은 나라의
군대(軍隊)의 위병실(衛兵室)에서
사단장실(師團長室)에서 정훈감실(政訓監室)에서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찾은 나라의 교육가(敎育家)들의 사무실(事務室)서
사․일구 후의 경찰서(警察署)에서 파출소에서
민중(民衆)의 벗인 파출소에서
협잡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
관공리(官公吏)의 집에서
역(驛)이란 역(驛)에서
아아 그놈의 사진을 떼어 없애야 한다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영숙아 기환아 천석아 준이야 만용아
프레지덴트 김 미스 리
정순이 박군 정식이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극악무도한 소름이 더덕더덕 끼치는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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