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오늘도 바다는 잠잠하다. 그렇게 보인다.

글 입력 2017.03.0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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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정끝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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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 파도, 곳곳에 솟아오른 암초, 속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바다의 얼굴. 그 모든 것이 두렵다 할지라도 바다를 떠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제 몸에 아무리 상처를 내도 배는 운명이 시키는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수많은 흉터들을 보지 못한다. 땅에 못이 박힌 우리의 눈에 배는 닻 하나만으로도 바람을 타고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사이를 유유히 가르는 자유 그 자체일 뿐이다. 매일을 동이 트면 바다로 떠밀려 나갔다가 노을이 지면 뭍으로 떠밀려오는 사이 쓸리고 찢어지고 벗겨진 배의 몸뚱이를 우리는 모른다. 닻을 벗고 온전히 내놓은, 곪아가는 상처들로 가득한 나체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또 다른 배 뿐이다. 어떤 배의 손이 다른 어떤 배에 닿을 때 그로써 서늘한 바닷바람마저 뜨끈해진다. 어쩌면 그 손이 약손이어서 환부가 조금이나마 빨리 아물 것이라 믿고 싶어진다. 순간, 바다는 잠잠하다.




 바다는 두려움의 공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도 끝이 아닌 망망대해 앞에 서면 숨이 탁 트이기도 하지만 한편 시커먼 바닷물이 밀려와 나를 흔적도 없이 잠식시킬 것만 같다.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그 침묵으로 온 세상을 삼켜버린다는 점에서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과도 같다.

 나 역시 그렇다. 배처럼 나는 세상에게 끌려 나왔다가, 세상 밖으로 내쳐졌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세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를 떠난 배는 어떤 효용 가치도 잃는 것처럼.

 때문에 상처는 어떤 의미에서 살아있다는 증거다. 물론 고통스럽고 괴롭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기 싫은 흉을 남기기도 하지만 세상은 원래 난폭한 바다와 같고, 인간은 배와 같으니 상처는 필연이며, 생의 선명한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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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디스트가 아니라면 누군들 아픔을 즐길 수 있을까. 다만 스스로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파도에서도 살아남아 보았기 때문에 허리춤까지 오는 파도쯤이야 아무렇지 않을 뿐이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고, 경륜이 쌓일수록 나이테처럼 굳은살도 두터워지는 법이니 말이다. 허나 아무리 많은 파도가 할퀴고 지나갔어도, 바다에 나선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모든 파도 앞에서 우리는 반드시 위로가 필요하다.

 혼자일 땐 작은 시련도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몰려온다. 여행 중 버스를 잘못 타는 건 흔한 일이고, 길을 가다 넘어질 수도 있으며 최선을 다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교수님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바다를 항해하다 물고기 대신 얻어온 상흔을 다른 이에게 위로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바다도, 그 위에서의 항해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나보다 험한 바닷바람을 맞은 다른 배의 찌그러진 자국에 있지 않다. 더 큰 바다로 나가기 위함이니 견디라는, 힘든 건 너 하나가 아니라는 이미 견디고 있는 이에 대한 몰이해적인 무엇도 아니다. 단지 파도가 있었구나ㅡ하고, 그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것, 파도가 없었구나ㅡ하고, 함께 안도의 숨을 내쉬어 주는 그런 위로다. 어떠한 가식도 없이 생채기로 얼룩진 서로의 못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지그시 응시하는 것. 흐르는 눈물을 모르는 척 닦아 주는 것. 하루의 끝에서 상대에게 건넬 위로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상대에게 받을 위로 역시 그런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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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배를 타 본 적도, 세상 앞에 나서본 적도 없어 단언할 수는 없으나 흐르는 게 바다고 세상이니까, 잠잠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끝별의 시 <밀물>에서 배는 늘 바다가 잠잠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진짜 바다가 잠잠했을까. 단지 거센 파도를 맞고 왔음에도 그것이 할퀸 제 몸에 난 흉터를 보며 살아있음에 다행이라고 말해주는 또 다른 배가 있어 수난의 기억들이 미화된 건 아닐까. 밀물에 기대어 뭍에 정박한 두 척의 배에게 오늘도 바다는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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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 이미지 출처 구글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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