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백혜선 피아노 리사이틀_귀가 즐거운 시간

글 입력 2017.02.2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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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다운 경치나 그림, 사진을 보며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입을 즐겁게도 한다. 요즘은 향수 냄새를 맡으며 코를 즐겁게 하는 것에도 재미를 들렸는데, 귀를 즐겁게 하는 일에는 다소 서툴렀다. 특히나 이렇게 음악을 직접 듣는 일이 흔치 않았기에 공연을 하면서 새삼 귀를 즐겁게 하는 일도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느꼈다.

연주회란 설레면서도 막상 걱정이 되는 일이었다. 음악 쪽에 일가견이 없었기에 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졸지나 않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아는 노래 베토벤의 월광이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걱정보다도 사실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듣는다는 그 자체가 굉장히 기대되었다. 영상으로만 보고 듣던 것을 직접 보고 들으면 소름이 끼칠 때가 있었기에 오늘은 어떨지 궁금해 하며 신나게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은 어느 정도 눈으로 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내 자리에서 연주자의 화려한 손놀림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대신 페달 밟는 거라도 열심히 봤다. 나는 그저 웅장한 느낌이 좋아서 음정이 다 섞여도 페달을 계속 밟는 걸 좋아했는데, 어떤 식으로 곡에서 아름답게 사용되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손놀림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더더욱 귀를 쫑긋 세우려고 노력했다.

첫 마디를 시작하는 순간 그야말로 속으로 탄성이 나왔다. 내가 피아노 학원을 지나치며 수없이 들었던 월광이지만 그 느낌부터가 너무나 달랐다. 손가락이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이 정말 신기했다. 같은 악기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연주자의 감정이 마구 느껴졌고, 힘차게 치는 부분에서는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피아노를 칠 때에는 그저 악보에 맞춰 건반을 두드리는 느낌이었고, 녹음된 연주를 들을 때에도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확실히 곡 자체가 살아있는 듯했다. 이래서 역시 직접 듣는 것과 녹음된 연주의 느낌이 다르다는 거구나 싶었다. ‘월광’은 많이 들어보고 친숙한 곡인만큼 오히려 그 전에 내가 그 곡을 들었던 경험들과 대비되어 새롭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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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끝날 때마다 연주자께서 곡 설명과 함께 자신의 개인적인 느낌과 감상을 설명해주셨다. 그런 말 한마디로 공연이 더욱 잘 이해되고 막연히 멀게만 느껴지던 클래식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연주자께서 사실 이렇게 작은 공연장이 처음이라서 관객하고 가까워 오히려 떨린다고 하셔서 뭔가 인간미가 느껴졌다ㅎㅎ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무소르그스키가 절친했던 친구의 유작전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인데, 음악을 들으면서 정말 내가 전람회의 그림들을 살펴보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특히나 그가 봤던 빅토르 하트르의 그림들, 혹은 그의 그림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화면에 띄워줘서 음악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 연주 전에 연주자께서 소주제를 갖고 있는 각 곡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왔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려 했는지를 설명해주셔서 그에 맞춰 더 이해가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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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작품 사이를 걸어갈 때를 표현한 프롬나드 부분이 너무나 신나고 즐거웠다. 실제로 연주자께서 표현해주셨던 것처럼 무소르그스키가 그의 거대한 몸을 이끌고 크게 한 발짝씩 힘차게 내딛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림을 다 감상했는지 프롬나드가 연주되고 다음 작품을 향해 걸어가는 부분에서는 다음에 감상할 작품을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가장 첫 번째 곡인 ‘난쟁이’는 정말 난쟁이들이 절뚝거리면서 걸어다니고 재빨리 뛰어 굴속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특유의 음울함이 느껴지면서도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두 번째 곡인 ‘고성’도 그 이름에 걸맞게 오래된 성의 모습처럼 신비로움을 지니면서도 이제는 낡아서 흙바람에 흘려나가는 듯한 모습이 떠올랐다. 세 번째 곡은 연주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이 메롱메롱 하면서 놀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이어서 나오는 연주에서도 소달구지가 느릿느릿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시골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모습,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 부유하고 가난한 사람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 시장에서 아줌마들이 떠드는 모습,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마녀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어렸을 때 봤던 클래식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모든 장면이 다 생생하게 그려져서 정말 흥미진진했다. 전시회를 보고 이를 이렇게나 잘 표현해낸 무소르그스키에게 감동했고, 이를 다시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해내어 들려주는 백혜선 씨께도 감동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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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기하고 즐거운 연주회였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연주자가 전하는 다양한 감정과 느낌을 상상하면서 즐길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특정한 장면이 이렇게나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경험은 처음이어서 그야말로 놀라웠고 듣는 내내 감탄했다. 그림과 함께 즐긴다는 그 자체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직접 곡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귀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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