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이 끝난 후 [공연예술]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
글 입력 2017.02.15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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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났다. 하나의 극을 올리는 데에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나는 서울대학교 총연극회 극단 연극하나요에서 기획한, 미국의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작품 < The Skin of Our Teeth >의 각색 작품 <가까스로, 우리>에서 배우를 맡았다. 지난 6주 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아마추어 연극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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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시작



하나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의 시작은 각본을 선정하는 것이다. 전문 연극인이 모인 것은 아니라 희곡에 대해 심도 있는 지식을 갖춘 사람은 많이 없으나, 오히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 연극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실험적인 극을 선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각종 시공간이나 예산 등의 장벽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장벽들은 연출가가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극을 풀어나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희곡은 특히 더 유동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연출가가 어떻게 방향을 잡고 배우와 스탭들이 어떻게 표현해내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의 극이 나올 수 있다. 종이 위 활자들이 3차원의 세계로 들어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그것은 각본을 선정한 연출가의 머릿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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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논의



아마추어 연극은 같이 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이루어진다. 연출가는 주로 인맥을 동원해서 자신이 생각한 극에 어울리는 배역과, 자신을 도와줄 스탭들을 모집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자그마한 팀이 꾸려진다. 그리고 모두 모여 연출가의 각본을 읽고, 생각을 나눈다. 연극을 만든다는 것은 각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인 것을 어떻게 관객에게 표현하는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같이 극을 꾸리는 사람들끼리 대본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보이는 모습도 당연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가까스로, 우리>와 같은 실험적인 부조리극은 배우와 스탭들 스스로 먼저 이해하고 그것을 구현해낼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공연 직전까지 끊임없는 논의를 거듭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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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연습



본격적인 연극 준비가 시작되면 각자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배우는 대본을 분석하고, 외우고, 연습한다. 스탭은 무대, 조명, 음향, 의상/분장 등으로 나뉘어 극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기획/홍보를 담당하는 사람은 후원자를 구하고, 공연장과 연습장소를 예약하고, 포스터를 만드는 등 각종 행정적인 업무를 한다. 연출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극의 전체적인 방향을 이끈다.
   
연기를 맡았던 입장에서 배우의 역할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그 역시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해석해야 하는 사람이다. 텍스트를 기본으로 하지만, 좀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상상하고 덧붙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연출 및 다른 배우들과 상의를 통해 조화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연기에 있어 개인의 발성, 발음, 동작, 그리고 완벽한 대본 숙지, 감정 표현 등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인 것 같다. 모놀로그 극이 아닌 이상 연기는 타인과 호흡을 주고받는 것이다. 상대 배우와 감정을 잘 주고받으면 대사도 더 현실적으로 들리고 극의 밀도가 높아진다. 배우들 뿐 아니라 관객들까지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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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연 무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작업이 이루어지고, 만들어진 무대를 토대로 테크 리허설을 진행하게 된다. 테크 리허설은 조명, 음향 등을 실제 공연할 때처럼 시험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준비된 의상까지 모두 갖춘 채 최종 리허설을 진행하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된다. 연극은 관객이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홍보는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오히려 관객이 많을수록, 반응이 크고 좋을수록 더욱 신나게 몰입해서 연기를 하게 된다.
 
한 번의 공연을 할 때는 극단의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집중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연극에는 많은 요소와 역할들이 있고, 그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극이 제대로 완성된다. 어느 하나라도 실수하게 되면 다른 배우나 스탭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집중이 흐려지고, 그것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좋은 극이라는 것은 결국 완전한 팀워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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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후  



같은 대본이라도 누가 연출하고 연기하느냐에 따라 극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연극이라도 그날그날 배우들의 컨디션에 따라,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연극만이 가지는 묘한 매력일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연습한 100분짜리 극을 몇 번을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매 공연마다 새롭게 터지는 웃음, 새롭게 발생하는 실수, 새롭게 피어나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바로 그런 맛에 연극에 빠진 사람들은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꾸만 다시 하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아마추어 중에서도 초보 수준의 배우로서 연극을 거의 처음 만들어보았지만, 하나의 극을 하면서 나눈 생각들, 느꼈던 감정들이 꽤나 강렬했다. 컴컴한 무대 뒤에서 들었던 생각. 결국은 사람이 모여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구나. 글자들 사이로 우리가 이끌어낸 생각들을 과연 관객들도 느끼고 돌아갔을지 궁금하다. 100분의 시간은 짧지만, 그 여운은 6주의 시간보다 더 오래 그들의 머릿속에 자그마한 흔적을 남기기를.



연극이 끝나고 난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슬픔만이 흐르고 있죠
 
- 샤프, 연극이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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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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