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만의 색이 뚜렷했던 연주 - 임현정 리사이틀

글 입력 2017.02.13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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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다행히 외출하기 딱 좋은 겨울 날씨였다. 몸이 움치러 들만큼 추웠다면 마냥 이불 속에 처박혀 빈둥거리고 싶었을 터인데, 그렇지 않아 정말 다행스러웠다. 적당히 차가운 겨울바람을 느끼며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예술의 전당 음악당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그 곳은 사람들로 복작거렸고 나는 그런 사람들 틈 사이로 들어가 잽싸게 표를 받은 뒤 2층 객석에 자리했다. 기대감을 품은 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현정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아. 첫 등장부터 그는 내 기대감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느 클래식 전공자들이 그러하듯이, 그 또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겠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뒤집고, 그는 실크 소재의 수트나 다름없는 검은색 의상을 입은 채로 등장했다. 블랙과 바지라니. 그보다 쿨하고 시크해 보이긴 어려우리라. 알고 보니 블랙 의상은 그가 연주 때마다 입는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었다. 임현정은 법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의상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검은색 옷을 입는 것은 청중들이 연주자가 아닌 음악에 주목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작곡가가 표현한 진리이기도 하죠. 그 소중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연주자는 작곡가와 청중 사이에서 그저 매개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멋지지 않은가. 유독 여성 아티스트들에겐 음악 이외에 외적인 부분에서 청중들의 눈을 만족시켜줘야 하는 무언의 책임감이 더해진다. 마치 상품처럼. 예쁘지만 몸에는 불편한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한 채 무대에 서서 여성성을 강조해야만 한다. 이런 은근한 압박 속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연주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그가 자신만의 개성과 해석이 담긴 슈만의 카니발을 연주하는 동안 사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듣던 대로 그의 연주는 빨랐고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음표들과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숨이 찼다. 그 당황스러움은 브람스의 곡까지 이어져 1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의 연주에 적응하려 애를 썼다. 물론 클래식에 전혀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그가 얼마나 노력가이며 그에 걸맞은 뛰어난 테크닉을 지녔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연주 내내 이어진 그의 속주와 과해 보이는 터치는 나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고 해야 할까. 중간중간 그가 관객에게 마법을 걸듯이 보여준 아름다운 감정의 표현력을 음미할 새가 없어 쉽게 몰입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1부를 보낸 뒤 시작된 2부에서의 라벨은 앞선 프로그램과는 달리 그녀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가벼우면서도 힘이 넘치는 터치, 화려한 테크닉, 자유로움, 음표들이 톡톡 튀듯 생동감이 덧붙여진 라벨의 거울은 이름처럼 그녀 자신을 비추는 곡과 같이 느껴졌다. 그날 그가 연주했던 프로그램 중 라벨이야말로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낸 곡이라 생각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연주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뉜다. 나에겐 썩 호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연주였지만 이 날 그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젠틀함과 매너, 음악에 대한 열정은 너무나 멋지고 사랑스러웠다. 무려 6곡을 앙코르곡으로 들려주는 연주자가 또 어디 있으랴. 심지어 전혀 지친 기색 없이 굉장한 파워로 엄청나게 빠른 속주를 보여주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연주는 잔뜩 힘을 빼고 연주한 듯이. 나는 그조차도 부담스러워 했는데 그보다 더한 연주가 있을 줄이야. 가장 인상 깊었던 앙코르곡은 그가 제일 좋아한다던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이었다. 곡이 지닌 서정성과 아름다운 멜로디, 부드러우면서 힘 있는 감정의 표현력이 그의 연주를 통해 짧지만 제대로 느껴졌다.


 "모든 예술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음악에는 작곡가가 삶 속에서 느낀 모든 감정들이 에센스처럼 담겨 있어요. 피아노라는 도구로 그 영혼을 탐구하고 본질을 드러내는 데 깊은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의 연주가 익숙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린 부분이 많았으나 이처럼 진정한 예술과 음악에 대해 사유할 줄 아는, 성숙한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리라. 개성 가득한 그의 행보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하며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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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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