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가 아닌 폭력 [시각 예술]

보장되지 않는 제작진의 안전, 촬영 현장 속 비윤리
글 입력 2017.01.2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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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다른 길이 있다’라는 개봉작이다. 이 영화는 조창호 감독의 영화로, 비교적 신인인 서예지 배우, 김재욱 배우가 출연한다. 삶의 벼랑 끝에 선 남녀가 우연히 함께 춘천을 여행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속에는 차 안에서 여자주인공이 연탄가스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연탄가스를 차에서 마시며 죽는 것은 그간 영상에서 다분히 볼 수 있었던 연출 장면이다. 그러나 논란이 된 부분은 이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 현장에 있다. 다음은 서예지 배우의 ‘스타뉴스’ 인터뷰 내용이다.

  “촬영을 하는 날, 감독님이 혼자 와서 연탄 가스를 실제로 마실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당황하며 되물었으나 감독이 ‘정원이(극 중 인물 이름)가 실제 가스를 마셨을 때의 느낌과 감정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정원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하겠다고 했다. 지옥의 느낌이었고,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마음은 담담했다.”
 
   영화라는 장르에 ‘현실감’, 혹은 ‘리얼’을 부여하기 위해 배우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는 연출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기본적인 안전 보장이 심히 우려되는 촬영 현장이다. 한 네티즌은 SNS를 통해 ‘다른 길이 있다'를 보며 예의 그 장면이 나오자, 연기가 아니라 서예지 배우가 실제로 죽도록 괴로워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이 후 나오는 김재욱 배우가 자동차에서 정원을 구해내는 신 같은 경우는 차 유리가 설탕이 아니라 진짜 유리였다고 한다. 보통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배우의 안전과 촬영의 용이함을 위해 유리 대신 설탕을 사용한다. 그런데 ‘다른 길이 있다’ 촬영 현장에서는 이에 대해 김재욱 배우에게 슛 들어가기 전에 말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재욱 배우는 인터뷰를 통해 “유리를 깨고 나서 감각이 없는데 뭔가 따뜻해서 보니 손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다른 길이 있다’의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전반적 내용은 촬영 현장과 모순된다.

   조창호 감독은 지난 20일, 위와 같은 사실들에 대한 감독 입장서를 올렸으며, 입장서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아래는 조창호 감독 입장서를 일부 발췌한 것이다.

  대부분의 연기가 연탄 가스가 아니었으나 미량의 연탄 가스가 흘러 나왔음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당연히 제가 질타를 받아 마땅한 부분이며 배우의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크게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서예지 배우에게 공식적인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 (함께 논란이 되었던 얼음 위 씬의 촬영에 대해) 촬영 당시에는 예산을 오버해 가며 안전사고에 대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논란으로 과연 충분했는가, 당시의 판단이 옳았는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창호 감독은 덧붙여 논란으로 불쾌함을 겪은 관객들과 배우들에게 깊은 사과를 전했다.

  어느 순간 ‘리얼리즘’이라는 말이나 ‘사실적 연기’라는 말이 예술로 승화되어 배우나 제작진들에게 직업 속 영광이나 열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 촬영 현장은 예술 창작 현장인 동시에 노동 현장이다. 아주 기본적인 안전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영화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폭력의 현장이 될 것이다.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건강과 인권이 보장되는 촬영 현장이야말로 적절한 환경이다.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은 이제 직업적 열정이 아니라 폭력이다.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영상인들은 노동 현장 속 올바른 직업 윤리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열정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든 순간, 영상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끔찍한 비디오로 남고 말 것이다.

 
위 오피니언은 아래 기사문을 비롯한 인터뷰, 입장서 등을 참고하였으며, 영화 ‘다른 길이 있다’의 촬영 현장에 대한 사실은 실제 인터뷰되고 언급된 것들만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영화계의 건강한 촬영 현장을 바랍니다. 
http://m.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090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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