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험카메라를 들며)당신은 악인입니까? [문화전반]

WWYD(What would you do?)와 젠틀맨(Gentleman)
글 입력 2017.01.16 03: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sns에서 떠들썩한 영상이 몇 개 있었다. 불편하게 연출된 상황 속에서 지나가던 시민이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찰하는 영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몰래카메라는 12부작으로 제작된 <젠틀맨>이라는 예능 이였다. 대표적으로 ‘실종아동을 눈앞에서 발견한다면?’과 ‘아동학대를 목격했다면?’편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술 취한 사람이 운전을 하려고 하는 상황’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마주하는 상황들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실종아동을 주제로 한 편이 감동적이라 그 길로 전 회를 다 찾아보게 되었는데,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구나. 내가 돕고자 하는 그 손길이 오지랖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느꼈던 짜릿한 휴머니즘은 점점 사그라져 갔다. 단순히 감동이 무뎌졌다기보다 일방적인 불쾌감이 어느 순간 확 찾아왔기 때문이다.


1.png
출처 : youtube


마트에서 손님에게 종업원이 막말을 하는 상황이 연출된 편이 있다. 영상이 게시되고 나서 다들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못됐다’ 등, 연기자가 기가 막히게 잘해낸 덕분에 한마음 한뜻으로 욕하고 있었지만, 난 그 무리에 참여하기가 거북했다. 약 1년 동안 용돈벌이로 캐셔 일을했던 적이 있다. 좋은 기억은 아니다. 살면서 만날 수 있을 좋지 않은 사람들을 다 맛 본 느낌이였다. 매번 외상을 요구하는 사람, 극빈대우를 바라는 사람, 물건을 훔치는 사람, 어린친구라며 만만히 보는 사람 등.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소비자가 전부 좋은 사람만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아르바이트로 했던 것과 나와 달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던 그 중압감은 어땠을지. 매번 돈이 없다고 외상을 하던 어르신을 그냥 보냈을 때의 책임을 잘 알고 있을 직원(연기자)에 더 이입이 되었다. 중요한 건 연출이 잘 됐다, 못됐다가 아닌 <특정 사람들의 입장에서 반대의 사람을 악인으로 표현한 무조건적인 강요>가 불편했다는 점이다. 특히나 ‘착한사람’,‘좋은 서비스’ 콤플렉스에 빠진 우리나라 정서상 더욱 좋지는 않았다. Gentleman이라는 방송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

비슷한 영상으론 미국의 WWYD(What would you do?)라는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이 있다. 마찬가지로 날 것 그대로의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프로지만, 인종차별, 동성애 차별 등 훨씬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젠틀맨과 달리 더욱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자유국가인 만큼 다들 주눅 들지 않고 의견을 표출 해 매 회마다 시민들이 멋들어진 명언을 들려 준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악인’과 ‘선인’을 뚜렷하게 정하지 않고 양 쪽 의견을 얼추 비슷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다.

 
2.png
출처 : youtube


최고의 영상으로 손꼽히는 것은 흑인의 백인 인종차별 영상이다. 당연히 연기자의 시간배분 비율은 얼마 없었고, 연기자를 향해 욕을 뱉는 시민도 많지만, 그녀 나름의 논리도 무시되진 않았다. 그리고 틀에 짜여진 대로 악인을 연기하지 않고 시민의 따뜻한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 안기까지 한다. 

반면 젠틀맨에선 항상 ‘악인’을 꾸짖고 벌하는 시민을 영웅화 시키고 당연한 것처럼 방송에 노출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자극적인 걸 바라는 시청자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단지 권선징악을 앞세운 삼류드라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3.jpg

 
96년도 <이경규가 간다>는 그 삼류드라마 계열에서 벗어난 몇 안되는 몰래카메라 시리즈 중 하나다. PD는 교통질서 계몽운동을 목표로해, 한 밤중에 신호와 정지선을 준수하는 사람에게 양심냉장고를 주는 ‘정지선 지키기’편을 제작했다. 그리고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이경규와 스탭들이 모두 철수하려는 찰나에 뇌성마비 장애인이 신호와 정지선을 모두 지켜 냉장고를 받는 명장면이 탄생했다. 국민을 일깨우려는 철저한 교훈적 프로그램을 목표로 한다면 이 영상 정도의 맛은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매체)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 데 반해 아직 그 의식 수준 발전은 현저히 더딘 것 같다. 그리고 그 더딘 속도에 한 몫 하는 것이 ‘나쁜 소비자’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소재만을 소비하니 그 소비에 맞춘 컨텐츠 역시 제자리걸음 일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나쁜 소비자들 중 하나로, 앞으로 미디어를 ‘좋게 소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중이고 다함께 고민 해 보고 싶다.



김경진_에디터9기.jpg
 

[김경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