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70억의 더그와 케일린, 상처투성이 운동장

글 입력 2016.12.1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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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책이던 영화던 연극이던 본인은 워낙 감정적이어서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잘 하는데, 특히 슬픈 내용의 작품들을 볼 때 눈물을 펑펑 흘리는 건 다반사이다. 오늘 보게 된 연극 상처투성이 운동장도 기존에 본 코믹 연극과는 달리 진지하고 조용한 느낌의 연극인 것 같아 연기하는 배우들 앞에서 펑펑 울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먹먹했다. 딱 이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굉장히 슬퍼서 눈물 콧물 다 빼는 것이 아닌, 절망과 희망이 섞여 서로 중화되는 두 인물의 삶이 슬프기도, 웃음이 나기도 해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어 그저 먹먹하다고 밖에 표현 못 할 것 같다.


더그-케일린.JPG

 
 나는 워낙 두 배우의 연기력이 출중했고 나도 워낙 감정이입을 잘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그와 케일린이라는 두 인물을 보면서 너무 이쁘고 빛나보였다. 이 느낌은 ‘교통사고를 당한 고양이를 보살피는 친구 고양이’라는 감동적인 기사를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것일까. 작고 연약한 존재인 둘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의지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다시 먹먹해졌다. 나는 더그와 케일린이라는 두 인물이 단순히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를 생각하는 그 감정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더 넓고 따뜻한 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그 둘만이 정확하게 느끼고 있겠지만, 의지와 애증과 위로와 동정이 뒤섞여있는 사랑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나도 초등학생 때 묘하게도 더그처럼 자전거 앞바퀴에 발이 걸려 넘어져서, 바닥에 부딪히면서 오른쪽 앞니가 살짝 깨진 적이 있다. 그 때 10초 정도 기절상태라는 것도 경험해봤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꽤나 아물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혀로 오른쪽 앞니를 만져보면 깨져있음이 느껴진다. 이 상처를 기억해주는 것은 그때 같이 자전거를 탔던 같은 반 친구와 부모님일 것이고, 굳이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이 상처가 난 사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


상처투성이 운동장5.JPG


 더그와 케일린은 그것이 마음의 상처던, 몸에 난 상처던 서로의 상처를 또렷이 기억해준다. 그리고 서로에게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치유 받는다. 몇 년 동안 보지 않고 살아도 서로를 기억하고, 운명적으로 어떻게든 서로를 찾아 결국 만나게 된다. 이것은 두 인물을 넘어 극 밖의 우리가 받게 되는 상처들이 영원하지 않고 몇 년이던, 몇 십 년이던 결국 아물게 된다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뿐이라는 것도.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더그와 케일린이 아니더라도, 성별이 남자와 여자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8살, 13살, 18살, 23살, 28살, 33살, 38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더그와 케일린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70억의 더그 혹은 케일린, 그 중 특히 요즘 더 힘들 5천만의 더그 혹은 케일린의 상처가 얼른 서로를 통해 아물었으면 좋겠다.
 




상처투성이-저화질.jpg
 

상처투성이 운동장


2016.12.15 목 - 12.31 토

나온씨어터

월,수,목,금 8시 / 토,일 4시
(화요일 공연없음)


작 라지브 조세프
번역/드라마터그 마정화
연출 마두영
출연 조아라, 백종승
무대 서지영
조명 노명준
의상 김미나
음향 정혜수
분장 장경숙
조연출 김유림
그래픽디자인 황가림
사진 김한내, 장우제
기획 나희경
제작 디렉터그42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매 인터파크티켓, 플레이티켓, 대학로티켓닷컴

 
문의 Play for Life 010-2069-7202





2010 퓰리처상 수상자 라지브 조세프 작품 국내초연!

라지브 조세프는 2005년 < Huck & Holden >으로 데뷔한 이후 <상처투성이 운동장(Gruesome, Playground, Injuries)>, <종이에서 걸어 나온 새(Animals Out of Paper)> 등의 작품으로 꾸준히 관심과 호평을 받아 온 작가이다. 2010년 <바그다드 동물원의 벵갈 호랑이(Bengal Tiger at the Baghdad Zoo)>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극작가로서의 이름을 더 확실히 각인시켰다.

<상처투성이 운동장>은 2009년 초연당시 탄탄한 드라마와 캐릭터 구성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미국 전역에서 공연이 지속되었다. 인생은 무결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부상의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절대로 무겁거나 슬프지 않게, 그렇지만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만들어간다.





전마띠아스_에디터9기.jpg
 

[전마띠아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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