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구스러운 명작, 처참함의 클래식 ‘살인의 추억’ (2003)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2.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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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대 초반의 나이인 나는 여태까지 정말 평범하게 문화 생활을 즐겼다. 현재 시점에 개봉해서 화제가 되는 영화들, 베스트셀러, 음원 순위 1위 등 현재의 명작들은 웬만하면 다 챙겨보고, 들었다. 사실 그것들을 내가 직접 보지 않아도 요즘은 SNS와 기사를 통해 대충 어떤 내용이고 대중들은 어떤 반응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직접 보지 않아도 대충 아는 것들은 2016년 전후 요즘의 것들뿐만 아니라 1900년대 이후로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수많은 영화, 문학, 음악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각 분야에서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현재까지도 숱한 패러디, 오마주, 인용, 참고, 리메이크의 대상이 되어 현재 시점에까지 항상 언급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는 게 정말 많다는 것이다. 영화로만 예를 들어도 타이타닉, 캐리비안의 해적, 스타워즈, 포레스트 검프, 대부 등등등 블록버스터와 멜로를 넘나드는 셀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다. 사실 이런 명작들을 여태까지 직접 보지 않았다는 것이 송구스럽고, 죄송하고, ‘이걸 여태 안 봤어?’라는 소리까지 들을 까봐 쪽팔리기도 하다. 나름대로 문화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하는 사람이 여태껏 뭐 했나 싶기도 하다.

 세 살 난 아이가 엄마와 함께 산책하다가 바람을 처음으로 맞을 때, 그 아이는 태어나 바람이란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스물 몇 살의 내가 이런 문화 예술계의 새로운 바람이었던 것들을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볼 때, 나도 뭔가 새로운 경험과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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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2003년 4월 25일 개봉 | 한국 | 범죄


 흔히들 2003년을 한국 영화계의 전설이었던 해로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2003년 한 해 동안만 그 유명한 올드보이, 장화 홍련, (당시에는 처참한 흥행기록이었지만) 지구를 지켜라와 이번에 본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지만 나처럼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조금 하자면, ‘살인의 추억’은 아직까지도 미제사건으로 남은 1986 ~ 1991년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폭력과 미신 등의 구시대적인 수사 기법을 고수하는 박두만 (송강호 분)과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 등 신시대적인 수사 기법을 고수하는 서태윤 (김상경 분) 이 70대 노인부터 10대 청소년까지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찾기 위해 겪는 갈등과 협력이 중심이다.

 2003년이 전설의 해였던 것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살인의 추억은 그저 개그 콘서트에서 ‘향숙이’만을 줄곧 외치던 추억의 코너의 근간이 된 영화밖에 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그 유명한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나에게 그런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그 영화가 이렇게나 진지하고 씁쓸한데 웃기고 처참한 기분을 남기는 영화일 줄이야. 나는 어김없이 또 송구스러워졌다. 이런 영화를 지금 보게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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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고 어둡기만 할수도 있었던 영화를 여유로움으로 풀어준 건 단연 송강호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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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03년도에는 없었을 '씬 스틸러'란 말이 아깝지 않은 백광호.

 
 나는 희한하게 이 영화를 보면서 정 반대 나라의 정 반대 시간대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2008)>가 자꾸 떠올랐다. <다크나이트> 속의 현실 자체도 그러했지만 특히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 조커를 처음 봤을 때의 처참함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토록 혼란스럽고 처절하고 처참한 인물을 보고 있자니 연기라고는 해도 기분이 처참하면서도 이상했다. 반면, 그와 비교해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느낀 처참함은 그보다 분명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조커라는 인물은 아무리 현실적인 설정을 선호하고 워낙 훌륭하게 하는 놀란 감독의 작품이라지만 분명히 픽션인 반면 살인의 추억은 아무리 각색과 영화적 표현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씁쓸하고 처참했다.

 봉준호 감독은 당시에 부족했던 과학 수사 기법의 필요성과 여전히 구시대적인 수사를 고수하는 시대상, 그리고 언제든지 범죄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 10여년 전의 영화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영화 상의 주요 시간대는 1980년대이다) 지금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 시대상을 표현하지만, 그것을 2016년 현재의 시점에서 보게 된 나는 지금 이 영화를 봐도 분명 느낄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2003년 이후로 현재까지 과학 수사가 많이 발전되고 구시대적인 수사 기법 또한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연히 범죄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따금씩 범죄와 우리의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생긴다. 불안에 떨면서 매일 매일을 처참한 기분으로 살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런 영화를 다시 한번 보면서 ‘경각심’ 정도를 다시 느끼는 정도는 좋지 않을까. 이른바 클래식한 처참함을 다시금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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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장면이지만 직접 내 두 눈으로 봤을 때의 전율은 생각보다 더 깊었다.


 박두만 형사 (송강호)는 영화에서 총 2번, 화면을 응시하면서 화면 밖의 우리와 눈을 마주친다. 한번은 진범에게, 한번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로 여전히 잡히지 않은 진범에게 조용하고 담담하게 경멸과 저주를,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경멸의 대상인 범인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있을 수 있다는 경고를. 그의 눈빛 속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10여년 후 그의 눈빛을 보는 지금도 메시지가 뚜렷함은 씁쓸한 일일까 감탄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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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마띠아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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