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문학]

글 입력 2016.11.1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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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시집 코너를 훑어보다가 이 시집을 만났다. 시집의 특성상 얇디 얇은 책이라 빼곡한 코너의 시집 제목을 읽는 것 또한 집중하여야 한다.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서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겨 그 책을 집어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집의 경우가 그러했다.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니. 아직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도 이 문장만큼은 꽤 로맨틱하고 애틋함을 자아내는 것은 틀림없다. 작가인 박준 시인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이 아닌 청춘을 살아가는 30대이다. 어떤 계기로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다가 하루도 아닌 며칠을 먹게 되었는지 궁금해 이 시집을 읽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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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을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나는 작가가 아니고 그와 비슷한 삶을 산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서 나 또한 누군가가 떠올랐고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내적인 만족감에 배부를 때가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은 시와도 같다. 인생을 산문으로 써내려가다가도 생을 마감하고 내가 영원히 잠든 그 자리에 나의 사연 많았던 삶은 단 한 두 줄로 요약되어 적혀진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삶을 살아간다. 문장을 시작하고 마침표를 찍는 글과도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뜻하지 않게 얼굴 붉히는 일로 시작되는 만남이 시작될 수도 있지만 글과 글의 만남에 있어서는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에 나는 동의한다. 비록 몇 번을 수정을 거친 문장이라도 마침표를 찍은 문장에는 더 이상의 거짓됨은 없다. 여러 감정이 얼룩진 글들의 의미는 퇴색되지 말아야 하며 그 만남에 있어서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그 문장들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하고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이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것처럼
아득하다
  
 
p.22-23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中


 
이 시집의 실린 시들은 다소 다른 시들에 비해 산문적이다 싶을 정로도 시 치고는 꽤 길다. 그러나 문장의 길이는 짤막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어려운 단어 또한 찾을 수 없다. 그저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단어로 서정적인 느낌을 주며 마음을 찡하게 한다. 별 거 아닌 일에도 행복해하고 눈물짓는 것에 우리는 감동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감동받는 것은 단순히 눈물을 많이 흘렸기에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눈물에 들어있는 당신의 슬픔과 상대방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 아님에도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위로로 다가온다. 직접적인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깊은 유대감이 생기게 되고 더욱 끈끈해진다. 눈물이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지만 누군가의 슬픔에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 그리고 나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볼 수 있는 마음이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이 시는 말해주고 있다.


나 또한 어쩌지 못하는 숱한 밤들을 글로 풀어 적어 낼 때가 많았다. 마음속으로 되뇌이는 말들을 문장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신중한 머뭇거림이 지속되며 종이 위에 마음을 눌러담아 마침표를 찍어내는 것은 정말로 심적 소모가 큰 일이다. 작가와 일반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생각을 얼마나 문장으로서 잘 풀어내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인가이다. 어떠한 글을 보고 내 생각과 별 다를 바 없다며 작가에 대해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별 다를 바 없는 생각을 작가는 몇 번을 썼다 지우고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멋지다고 써내려간 문장이 지금 보니 유치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어 얼굴을 붉히며 몇 번의 수정을 거쳐야만 누군가의 감탄을 그리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문장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평범하고 사소한 것이 사실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것처럼 우리가 큰 거부감이나 의문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사회에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름보다는 직급으로 혹은 다른 무언가로 지칭되어 많이 불려지고 격해진 감정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작지만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진다면 우리는 깊어져가는 밤이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강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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