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길] 뒷모습과 부끄러움

글 입력 2016.11.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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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202545.JPG
 

햇빛 좋은 날, 혜화에서 찍은 사진이다.

비록 이 아이들이 전시 단체관람객으로 들어와 공간은 좁았지만, 이렇게 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뒷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이렇듯 기가 막히게 들어온 햇빛과 예쁜 벽돌 건물, 그리고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들의 뒷모습만이 마음에 다가왔지만, 11월 6일 현재의 나는 이 사진을 보면 조금 부끄럽고, 조금 미안하다.

현재의 시국을 10년 뒤면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배울 이 아이들은 얼마나 기가 차고 어이가 없을까.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지고 모두가 어느 정도는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움켜쥐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사회.

학교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맨 뒷줄에서 작은 목소리로 외치다가 일찍 자리를 떠났다. 옆에 있던 내 친구는 나보다 오래 있었고, 나보다 목소리가 컸지만, 부끄럽다고 했다. 영화 "동주"를 보고는 더 부끄럽다고 했다.

역사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 거센 흐름에 꿋꿋이 맞설 수 있는 용기와 긍지가 내게 있을까.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김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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