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영화 우리 선희 [시각예술]

존나 사랑했다 시발..

by 하영광 에디터
2016.10.22 20:47




"존나 사랑했다 시발.."

 대학에 입학하니 미팅제의가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나는 제의를 못이기는 척 하며 존나 열심히 서울 전역을 싸돌아 댕겼는데, 우리 과에서 미팅엘 나가는 멤버는 거의 정해져있었다. 나는 나름의 수확들을 짭짤히 올렸지만, 동기인 친구놈은 그러지 못했다. 그 녀석은 나가는 미팅 자리 마다 여자 애에게 첫눈에 반하곤 하는 연쇄사랑마였다. 뭐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작은 키였지만 옷도 잘 맞춰입고 얼굴도 반반하게 생긴 친구였기에 나는 걔가 곧 연애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몇 달째 실패만을 거듭했다. 몇번의 미팅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났던 나는 친구들에게 동정 아닌 동정심이 생겨 포지션을 공격수에서 서포터로 바꿨다. 전문 용어로 폭탄 제거반이고, 친구가 맘에 드는 여성분과 잘 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나는 꽤나 역할을 잘 수행해서 동기놈과 여자애를 파트너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나 또한 다른 여자애와 파트너로 맺어졌다. 뭐 잘된 일이였다. 몇 주 뒤 나와 맺어진 여자애로부터 학교 앞 치킨집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그곳에는 동기 녀석 커플도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고 썸 정도 였던 걸로 기억하지만 편의상 이렇게 쓰겠다)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술이 좀 들어가니 동기놈은 파트너에게 자신의 마음을 부담스럽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을 오글거리는 사투리로 (동기녀석은 서울 출신이다) "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노?" "내가 니를 엄~청 맘에 들어한다 아이가." 그 녀석의 파트너 입장에선 몇 번 보지도 않은 남자애가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 당연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여자애는 침착하게 답변을 피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밤과 술이 있다면 남녀사이엔 친구가 없다고 했던가. 술이 약한 내가 먼저 집에 들어 간 후 그 둘은 늦게까지 같이 있었다고 했다. 뭐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그 둘만 알겠지.

 몇 주 뒤 남자 애들끼리 모여 친한 동기 형 집에서 디비 잔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이야깃거리는 당연히 동기 친구 놈의 연애 성공 여부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날이 있은 뒤로 연락이 뜸해졌다는 것이다. 그 녀석은 여자애와 거의 사귈 뻔 했는데 자신이 너무 부담스럽게 해서 이러는 것 같다고 자책하며 꾸역 꾸역 전화와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썰을 풀다 술기운이 오르자 한껏 감정이 차오른 친구는 여자애에게 취중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숨죽이고 대화를 엿들었다. 걔는 갑자기 급성 경상도 토속병에 걸린 건지 또다시 사투리를 쓰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해

남: "야! 니 뭐하노?"

여: "애들이랑 팬션 와서 술먹고 있는데, 왜?"

남: "야 밤늦었는데 무슨 술인데? 위험하다. 조금만 먹고 빨리 자라."

여: "..애들이랑 오늘 밤새도록 놀기러 했다. 근데 왜?"

남: "아니 그냥.. 내가 걱정돼서 그러제.."

(정적)

 맞다. 이 녀석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몇 분간 혼자 횡설수설 하더니 제발 전화를 끊으라는 우리의 조언을 듣고 통화를 종료했다. 드디어 자신도 관계의 끝을 직감한 것인지 세상의 모든 아픔을 혼자 겪는 아련하고 불쌍한 남자 주인공 표정으로 풀썩 침대에 누워 "아.. 존나 사랑했다." 를 시전하고 골아 떨어졌다. 빤스 차림으로 그런 대사를 내뱉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2주 뒤 그 여자애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 우리선희 >는 '인생은 새디스틱한 작가가 쓴 코메디' 라는 우디 앨런 형님의 말이 가장 어울리는 영화였다. 극 중 선희는 분명 한 사람이지만 재학, 문수, 최교수에게 각각 존재하는 '우리' 선희이기도 하다. 그 여자애 또한 내 친구의 우리 선희인 동시에 현재 남자친구의 우리 선희일 것이다. 뭐 다른 남자가 더 있을 지도 모르지. 우리라는 말은 둘 만의 야릇한 비밀을 갖고 있다는 착각의 단어다. 냉정한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남자들에게 선희는 한없이 미화되고 완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현실을 알아버린다고 한들 뭐가 바뀌겠나. 선희는 너희들을 속이고 나와의 은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선희인 것을.


첨부파일 다운로드
우리_선희1.jpg (116.0K)
다운로드
우리_선희2.jpg (305.6K)
다운로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