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책과영화] 01.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장자크 아노의 < 연인 >

글 입력 2016.10.0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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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3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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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The Lover)>이 올해 여름 리마스터링 무삭제판으로 재개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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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소설 <연인(L’Amant)>이 원작이며 소설은 1인칭과 3인칭을 오가고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뒤섞인 다소 혼란스러운 문체가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프랑스 소녀와 부유한 중국인 남자의 광적인 사랑을 그리며 그 사랑의 배경이 되는 식민지 시대 베트남 정경을 아름답고 아련한 이미지들로 엮어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런 장면 장면의 문장의 호흡을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쿠르상을 수상할 만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도 소설에서 그려지는 중요한 사건과 배경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치밀하고 감각적인 영상미를 구현해 냈기에 원작을 잘 살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남녀 주인공의 성애에 관하여 ‘예술이냐, 외설이냐’로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상당한 장면들이 남녀의 성행위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 <연인>을 둘러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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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란은 예술사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담론이다. 대게 노출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가를 두고 예술과 포르노그래피를 나누지만 선정성의 덫에 걸린 수많은 미술 작품과 영화, 글들을 조금만 둘러봐도 그 기준이 얼마나 얄팍하고 부실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던 박찬욱의 <아가씨>도 그 안에서 그려지는 여성 간의 베드신에 대해서만큼은 외설이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지 않았던가. 한끝 차이로 의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그쪽 세계인 것이다.

  영화 <연인(The Lover)>에서 그려지는 성행위는 물론 분명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체모 노출은 물론이고 땀구멍까지 속속들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살결과 살결을 클로즈업하는 연출들은 리얼함의 끝을 보여준다. 게다가 미성년자인 어린 여성과 성인 남성이 서로의 육체를 탐하고, 미래를 함께 하겠다는 약속도 없이 잦은 만남을 가지며 쾌락에 몰입하는 것은 분명히 어떤 이들에겐 심정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지고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나 그림, 글과 같은 예술적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반드시 ‘맥락’을 갖는 법이다. 그 맥락이 알기 쉽게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든, 은밀한 알레고리로 작용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와 이야기,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감정과 입장, 문제의식들은 분명 그 작품을 관통하는 어떤 ‘메세지’를 생성하게 된다. 따라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특히 작품에 한해서는 더더욱) 그 메시지, 주제의식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지와 관련된 태도가 전제되어야 하며, 예술로 볼 것인지 외설로 치부할 것인지는 그 태도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연인(The Lover)>은 포르노적인가? 절대적으로 ‘모든 장면이 다 예술적이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인물들이 서로의 육체에 품게 되는 집요한 성욕의 앞뒤를 짚어본다면 그들의 정사를 ‘이해 불가한 행위’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성행위는 서로가 서로를 사로잡고 계속해서 사로잡힐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당대에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계층 간의 만남이었기에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불가능한 남녀의 극심한 갈증이 낳은 몸부림이었다. 또한, 소녀가 가족에 대해 품는 깊은 혐오와 슬픔, 사랑 말고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의 공허를 더 극명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 장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보더라도,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 미성숙한 두 명의 인간이 만나 엇갈리고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끝내 결말부에 다다라서는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자체만으로도 불안하고 비상식적으로 그려지던 만남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모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연인>은 책과 영화에서 모두 완성도가 높은 편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상호보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질적이지 않고 긴밀했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어지러운 퍼즐 같은 이미지들을 영화는 급하지 않은 전개 속도로 설득력 있게 엮어 장면들을 풀어냈으며, 영화로 봤을 때 어림짐작으로나 상상했을 미세한 감정선들을 소설에서는 특유의 문체와 호흡으로 더 다채롭게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이든 영화든 무엇으로 접해도, 그 쓸쓸하면서도 꿈결 같고 격정적인 독특한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는 신기한 작품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체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기 힘들었다면 영화를 찾아봐도 좋을 것 같고 원작을 접하기 이전에 영화를 봤다 하더라도 소설을 감상하는 데에 방해가 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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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리는 음성 속에서, 갑자기, 
그녀는 잊고 있던 중국 억양을 기억해 냈다. 
그는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오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은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



글. 김해서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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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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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이체르
    • 이 영화를 본지 2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쇼팽이 흐르고 출발하는 뱃전에서 소리없이 울던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리고 그 남자가 '너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나는 죽어가고 있다'라던 대사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정말 충격적일만큼 가슴속 깊이 각인되었던것 같아요., 이젠 너무 오래되어서 이미지만 강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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