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가도 - 서재는 주인의 인문학적 초상

글 입력 2016.10.0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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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도292_프린트된 한지에 손바느질_150cm×142cm_2015.jpg


"촬영이 늘어날수록
서재가 그 분의 인문학적 초상이라는 확신이
더욱 굳어갑니다"


책을 읽고 나니 왜 작가가 책가도를 내면의 얼굴이라 일컬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다지도 다를 수 있을까. 작가가 찍은 책장들은 비슷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른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책장 주인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책장의 형태나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가로로 긴 책장, 세로로 길고 넓은 책장, 흰색, 고동색, 밝은 갈색 등 다양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속을 채우는 책들의 모습은 어떤가. 책이 놓여진 모습만 보아도 책 주인의 성격이 단정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성격인지, 수더분하고 털털한 성격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책가도 234의 주인공인 소설가 안정효님의 책장은 단정함을 넘어 그야말로 깔끔 그 자체였다. 작가는 그의 책장에서 먼지 한 톨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각이 딱 잡혀 있어 일자로 꼿꼿하게 서 있는 책들의 모습이란. 

아. 저절로 내 책장에 눈이 가게 만들었다. 일자로 서 있기는커녕 죄다 건방지게 반쯤 누워있는 꼴이랄까. 손을 들어 책장 속을 스윽 훑어보았다. 허연 먼지가 검지손가락에 묻어나왔다. 아. 더럽긴 하다. 하지만 치우기는 귀찮은걸. 내 몸만 잘 씻으면 되지 뭐.
반갑게도 내 책장처럼 수더분한 책장도 더러 있었다. 물론 먼지는 없겠지만. 특히 서민 교수님의 책장은 내 책장과 비슷했다. 널브러져 있는 종이 더미들. 반쯤 누운 책들. 왠지 서민 교수님의 성격도 나와 비슷할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이거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일이다. 그저 책장에 꽂힌 책들을 찍은 사진일 뿐인데 이처럼 다양하고 보는 재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다. 심지어 책장을 활용하는 방식 또한 저마다의 특징을 담고 있었다. 아트디렉터의 책장에는 책과 함께 재밌는 소품들이 가득하고 건축가의 책장은 건축가다운 공간 활용을 통해 책장 가운데 사이로 창밖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서양사학자의 책장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기념품들이 책과 함께, 학자의 책장에는 오롯이 책만이 가득했다. 

보기엔 그저 책장일 뿐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책장의 주인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까지 알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책장의 모습이 내면의 모습이라던 작가의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책장은 진정 내면의 얼굴 그 자체였다. 이렇게 사람의 얼굴처럼 천차만별인 책장들의 모습에서 문득 딱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책에 담긴 책장들이 모두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는 것.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의 듬성듬성 빈 곳 가득한 책장이 더없이 부끄러워졌다. 저들의 옹골찬 내면과는 달리 속 빈 강정 같은 나의 모습이 고대로 드러난다. 지금부터 하나씩 채우고 말리라. 그럼 언젠가 내 책장도 나의 얼굴을 담고 있겠지. 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작가의 정성이 담긴 손바느질과 한지 프린팅의 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던 점 또한 책의 특별함을 더해주었다. 나의 내면을 은은하게 채워 줄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작가처럼 나만의 책장을 사진으로 꼭 담아내리라 다짐하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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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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