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단편소설집 리뷰

글 입력 2016.08.19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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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리사는 존경하고 좋아하던 작가 루스를 그녀의 대학원 교수로 만나게 된다. 첫 수업을 위해 루스의 집을 찾아간 리사는 너무나 들뜬 나머지 산만한 모습을 보여주며 루스의 예상보다 좀 더 가벼운 첫인상을 남긴다. 끼니 사이의 식사라는 리사의 소설을 피드백 해주며 글쓰기와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 하던 루스의 대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풍겼다. 1991년, 루스의 조교가 된 리사는 루스의 집을 자주 드나들며 그녀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어느 날 리사는 루스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그녀의 책상과 방을 정리해주지만 그것을 본 리사는 

"이렇게 정리된 곳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라며 불같이 화를 낸다. 이 짧은 장면에서도 대사를 통해 두 캐릭터가 가진 가치관과 세심한 심리 묘사를 엿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루스의 입장에 공감이 갔다. 누군가를 위한다면 나의 방식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지레 짐작하고 행동하다 혼자 상처받는 일은 조금 이기적이지 않은가. 리사의 모습에서 루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약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루스는 이내 리사가 한 행동을 받아들이며 그녀를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 더 열렸음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1992년, 그녀들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이야기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토론을 벌인다. 리사는 우디 앨런이 아무 것도 모르는 순이를 꼬드긴 변태일 뿐이며 그는 moralist, 이 시대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루스는 스타들도 그들만의 사생활이 있으며 영화 몇 편 찍은 것으로 그에게 도덕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말한다. 

예술가의 도덕성이 그의 예술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와 순이의 사랑이 기괴하고 도덕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관계라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루스의 이야기처럼 그것은 우리가 터치할 수 없는 그들만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예술성마저 폄하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배우 이병헌의 경우는 정말 싫다. 그의 연기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나에게 그는 도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연기자이기 때문에 그의 연기조차 좋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사람과 상황에 따라 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예술가에게 도덕성과 사생활의 자유를 이야기할까.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만이 예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도덕적 지탄을 받는 사람의 예술은 형편없으니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일까.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의 예술만이 언제나 아름답고 의미가 있을까. 또는 누구의 예술이건 가치 있기만 하다면 예술가의 도덕성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인가.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개인적인 도덕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던 루스와 리사의 토론은 나에게 예술가의 도덕성과 사생활을 어떤 식으로 바라 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장면이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둘의 관계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여러 단편들을 쓰며 자신의 인생과 경험들을 모두 소비한 리사는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결국은 1996년, 그녀가 탐내고 부러워하던 스승 루스의 인생을 그린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루스가 수 십 년간 간직해온 델모어 슈왈츠와의 고통스럽지만 가장 빛났던 사랑 이야기를 놓고 둘은 서로의 관점으로 날카로운 대사들을 주고받는다. 

루스와의 토론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만큼 성장하고 그녀에게 무신경해지는 리사. 그녀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고, 조금씩 약한 모습을 보이며 늙어가던 루스의 모습은 연극을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선할 만큼 서글펐다. 

"너의 성공이 질투 나는 게 아니야. 그런 식의 질투가 아니야. 
니가 겪을, 너의 앞에 놓인 미래가 부러울 뿐이야." 

이렇게 소리치던 루스의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승처럼, 부모처럼, 누군가를 가르치고 기르며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도 고통스러운 일인가. 루스는 리사를 제자로 받아들이며 그녀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고, 사랑했고, 그녀의 행동에 아파했다. 그리고 리사 앞에 놓인 시간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연극은 두 사람을 통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단순히 착취당하고 착취하는 1차원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리사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존재임을 알지만 동시에 기쁨도 함께 느끼던 루스의 모습과, 루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고 그녀를 흠모하던 리사의 모습은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우고 가르침을 받는 유동적인 관계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위치였으며 부모의 입장은 더더욱 아닌 내가 리사보다 루스의 행복과 슬픔에 더 공감했던 것은 왜일까. 어쩌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앞에 놓인 기회와 시간보다 다른 사람의 미래를 부러워 할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

인터미션을 포함해 무려 160분이라는 긴 시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날카롭고 관찰력 있는 대사로 예술가의 도덕성,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한 연극 단편소설집은 대사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탄탄한 짜임새를 보여주었다. 엄청난 대사량을 소화하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극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2인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공연장을 가득 매웠던 그들의 존재감은 극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21일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깊이 있는 연극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라며 리뷰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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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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