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뮤지컬 바보사랑 리뷰

글 입력 2016.08.05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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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뮤지컬 바보사랑을 보러 갔다. 신촌역 5번출구에서 가까워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새로 지은 건물답게 작지만 아주 깔끔한 분위기였다. 


바보사랑34.JPG

 
소극장 뮤지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관객과 객석의 무대는 거의 연극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다. 나의 예상보다 더 작은 공연장의 크기에 어떤 식으로 뮤지컬이 진행될지 더욱 기대가 되었다. 사진은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리며 찍은 것인데, 사진 속 바닥을 보면 군데군데 붙여진 하얀 테이프들이 보일 것이다. 이것은 무대의 소품들과 배우들의 동선을 위해 지정해놓은 마킹이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합을 맞추고 연습했을 배우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예술가로서의 삶이 주는 희열과 기쁨이 분명 있지만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순간들일 뿐이고 그 찰나의 행복을 맞보기 위해 주어지는 인내와 고통,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잠시나마 음악을 전공했던 나 자신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공연 관계자 분께서 감사하게도 나를 비롯한 몇몇 분들에게 더 좋은 자리를 권해주셨다. 이제 막 시작한 공연이라 좁은 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다 차지 않은 터라 남은 자리 중 더 괜찮은 좌석으로 변경해주셨다. 변경된 좌석에 앉아 뒤에 앉은 외국인들의 잡담을 잠깐 엿듣다 보니 어느 새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제목처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등장인물은 설계와 인테리어 회사를 차린 세 명의 젊은이들, 원우, 그의 친구 맑음, 그의 형 현석, 그리고 원우와 현석의 어머니, DJ한나, 멀티역의 배기사 총 6명이며 원우와 DJ 한나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우는 평소 DJ 한나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꼭 한번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청년이다. 그러다 한나의 집 인테리어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던 원우는 꿈에 그리던 한나를 실제로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그렇게 서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친구인 맑음은 언제나 사랑을 꿈꾸지만 소개팅만 95번째 할 만큼 자신을 사랑해주고, 사랑할 남자를 찾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그런 맑음의 곁엔 3년간 그녀를 혼자 짝사랑해온 원우의 형, 현석이 있었다. 항상 작업 때문에 올라간 바짓단을 정리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주고, 비가 올 때면 우산을 준비해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 처음엔 그저 오빠로만 생각했던 사람이 점점 남자로 느껴지던 맑음은 그에게 먼저 좋아 한다 고백하고 현석과의 사랑을 시작한다.  


“니가 먼저 끊어”
 
“아니야, 니가 먼저 끊어” 

“그럼 하나, 둘, 셋하면 같이 끊자. 하나, 둘, 셋!”


이처럼 조금 오글거리지만 연인들이라면 꼭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만한 이야기들로 전개가 되었고 이 장면에서 모두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며 나만 전화 통화할 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다른 스토리로 장면 전환을 할 때는 피아노의 선율과 함께 DJ 한나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극을 진행해나갔다. 주인공들의 속마음은 주로 노래를 통해 전개되었고 라이브 연주에 맞춘 배우들의 연기와, 춤, 노래 삼박자가 조화를 잘 이루어서 어떠한 불편함과 어색함도 없이 물 흐르듯 전개되었다. 그렇게 사랑의 달달함만 보여주며 뮤지컬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사실 원우는 21살 때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희귀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쁨도 잠시, 완치된 줄 알았던 원우의 희귀병이 다시 재발하며 원우에게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 한나 역을 맡은 배우의 슬픈 연기에 나도 같이 몰입되기 시작하면서 원우와, 현석, 그들의 어머니가 함께 한 장면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스토리가 조금 뜬금없고 한국형 신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소설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실제로 나는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나의 할머니는 3년 전 계단에서 떨어져 뇌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셨다. 병원으로 달려간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지도 모른다는 극의 대사와 똑같은 말을 들었고 나는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할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화내지 말걸.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줄걸. 


언제나 나는 할머니를 향해 화내고, 소리치고, 짜증만 부리고 막말하던 손녀였다. 나를 위한다는 행동이 귀찮기만 해서 내뱉던 짜증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려 더 못된 소리만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는 고비를 넘겼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순 없게 되었다. 괄괄하고 독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의 못된 소리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던 우리 할머니. 머리를 다친 휴우증으로 인한 치매 때문에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고 옛날 일도, 가족들의 이름도 까먹기 일수였다. 한나가 대사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우리 시간 속에 살자,” 

“우리 이 시간을 견뎌요.” 

“아빠가 그랬어. 사랑은 선택이라고, 선택과 함께 하는 책임이라고” 


그 뒤로는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가족 외엔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는 할머니 덕분에 누군가는 항상 곁에 머물며 기저귀, 옷, 밥 먹는 것까지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하나하나 다 챙겨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은 백수로 놀고먹던 내 몫이었다. 아픈 자신 곁에 머무는 한나를 떠나보내기 위해 못된 말만 하던 원우와는 달리 나는 미움과 짜증의 감정만을 담아 어린아이처럼 순둥이가 되어버린(가족 한정) 할머니에게 마구 화를 냈었다. 변명하자면 그 책임이 너무 버거웠다. 왜 아이를 낳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에 걸리고 아이가 꼴도 보기 싫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을 서로 견디다 보니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게 됐고 사랑하니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그렇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처럼, 영화처럼, 사랑하기에 모자란 시간. 표현 못한 사랑을 말해 봐요”


기저귀를 갈아주며 시원해? 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바보처럼 웃던 할머니.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 할머니 굉장히 곱다. 지금도 어딜 가나 예쁘단 소리 들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럽다. 우리 가족들 중에 할머니가 젤 예쁘다. 50살은 더 어린 나보다 더 예쁘다. 옛날 성격 다 잃진 않았는지 가끔씩 골 때리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하는 파격적인 우리 할머니. 나의 과격한 성격의 배경엔 할머니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우리 할머니 정말로 예쁘다. 내 이름은 매일 까먹어도 돈 계산은 물어보면 척척 나온다. 귀엽다. 돈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돈 좋아하는 것도 다 할머니 영향을 받아서일 것이다. 사랑스럽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여전히 나부터 먼저 먹으라고 챙겨준다. 바보 같다. 누가 누굴 챙기는지. 한번 표현하기 시작하니 그다음은 쉽다. 표현할수록 더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한나와 원우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끝으로 모든 배우들이 나와 함께 노래하며 마무리된다. 객석과의 거리가 극도로 좁아서 본인들의 연기나 노래, 박자에 더 신경이 쓰였을 텐데 조금의 실수도 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프로다운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 서로에 대한 합도 정말 잘 맞아보였는데 그만큼 많은 연습을 했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  모든 것이 정말 좋았지만 한 가지 약간 불편했던 점이 있다. 극 중에서 남성 배우가 여성 배우를 향해 손을 올려 때리는 듯한 행동을 할 때와 귓방망이를 날리겠다는 식의 표현을 굳이 넣어야만 했는지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장난처럼 넘어가던 부분이었지만 나에게는 유머로 다가오지 않았던 유일한 장면들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소극장 뮤지컬의 매력에 눈 뜨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배우의 눈에서 떨어져 반짝이던 눈물방울과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보일 만큼 가까운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은 극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랑처럼 보편적인 주제로 일상적인 이야기와 공감을 그려낸 스토리 또한 창작 뮤지컬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뮤지컬은 만들지 못하고 소극장에서의 공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창작 뮤지컬의 한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뮤지컬 공연이 다 위키드, 노트르담 드 파리, 모차르트처럼 화려해야할까? 

뮤지컬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배우 홍광호가 7년 만에 다시 소극장 뮤지컬인 빨래에 출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극장 뮤지컬과는 다른 소극장 뮤지컬만의 장점과 매력이 분명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짐작해본다. 그리고 그것은 직접 소극장 공연을 관람해본다면 몸소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대극장 뮤지컬의 장점이 화려한 무대 연출과 오케스트라, 대중적인 뮤지컬 넘버들이라면 내가 느낀 소극장 뮤지컬의 장점은 누구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스토리와 가까운 거리감이다. 무대와 관객석의 가까운 거리 덕분에 배우의 표정과 몸짓, 연기, 노래에 더 몰입할 수 있고, 관객 따로, 배우 따로가 아니라 함께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더해 비싼 티켓으로 일반 관객들에게는 선뜻 관람하기 어려운 대극장 뮤지컬의 진입장벽을 소극장 뮤지컬로 대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로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또 한 명의 문화애호가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점으로 보아 뮤지컬 바보사랑은 소극장 뮤지컬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뮤지컬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뮤지컬을 보고 싶지만 나는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 너무 복잡한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기만 한 것은 싫어 어떤 공연을 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뮤지컬 바보사랑을 추천해주고 싶다. 돈 날렸다며 후회하지 않을거라 확신한다. 공연을 보며 뮤지컬의 매력과 함께 사랑, 일상, 현재의 소중함에 대하여 한 번쯤 사색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처럼, 영화처럼, 사랑하기에 모자란 시간. 표현 못한 사랑을 말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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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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