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얀 동그라미 이야기

글 입력 2016.07.0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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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단어는 청자에게 어떠한 분위기를 가지고 다가간다. ‘하얀 동그라미’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인데, 다른 단어들에 비해 단정하고 똑 떨어지는, 말끔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하얀 동그라미 이야기’라는 연극을 보러 갔을 때, 나는 ‘하얀 동그라미’와 같은 연극을 보기를 기대했다. 새로운 요소가 얼마 되지 않아 단조롭게 느낄 수도 있지만, 각각의 요소가 완성도가 높은 담백하고 말끔한 연극. 그러나 ‘하얀 동그라미 이야기’는 그 제목이 주는 인상과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연극이었다. 다른 연극에 비해 다양한 요소가 새로운 자극을 주며 퐁퐁 튀어오르는, 의욕 많은 신입사원과 같은 무대였달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청각 자극의 사용이었다. 무대 위에는 피아노, 드럼, 젬베 등의 악기가 마련되어 있었고, 악사들이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각각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연주했다. 녹음된 음악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특유의 생동감이 극의 전반적인 집중도를 높여주었다. 게다가 일종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많이 사용했는데, 서양 악기와 동양 악기의 특징적인 음색이 함께 뒤섞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객참여를 높이려는 시도도 극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배우들은 제 4의 벽을 계속해서 무너뜨리면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었고, 객석 곳곳에서 튀어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무대’와 ‘객석’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듦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단순히 극의 진행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뛰어들어 함께 극을 즐기게끔 만들었다. 이러한 의도는 ‘하얀 동그라미 이야기’의 안내책자에 보다 노골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단순히 하나의 재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해당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연극을 연출하고 싶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소품과 조명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대 정 중앙으로 떨어지는 속이 빈 하얀 동그라미와 같은 조명은 특히 극 전반을 하나의 오브제로 묶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대 효과인 가짜 눈을 배우가 실제로 빗자루로 쓸기도 했다. 플롯 내에서도 개그 코드와 감동 코드가 공존했고, 관객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여러 가지가 함께 공존하는, 욕심 많은 비빔밥 같은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너무 많은 요소를 끌어 쓰다 보니 각 요소의 완성도가 비교적 떨어진다는 인상도 받았다. 특히 플롯의 경우 그 원작이 주는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연극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솔로몬의 재판’에 생각보다 충실했고, 각색은 그 표피적인 부분만 건드릴 뿐 그 안의 가치나 감동 요소를 재해석 해 내지 못했다. 반전을 기대했으나 반전이 없었고, 스토리는 예상 범위 내에서 잔잔하게 흘러갔다. 기승전결 속에 어디가 ‘감동 포인트’ 역할을 맡았는지 명확했고, 또 그 감동 포인트도 클리셰에 충실했다. 결국 모든 콘텐츠는 온전히 새로울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의 의무는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표현해 내는 것에 있다. 목적적 클리셰가 아니라 수단적 클리셰만을 취함으로써, 그 ‘뻔함’에 매몰되어 버리는 메시지와 감동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나는 이 연극이 솔로몬의 재판을 수단적 클리셰로 취하기를 바랐으나 그 활용이 목적적 클리셰에 가까웠고, 따라서 여러모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짜임새 있는 연극이었다. 다소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시너지 효과를 냈다. 요소가 많아질수록 각 요소는 각자의 목적에 충실해 최종 목적인 ‘주제 전달’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요소를 사용한 극은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해진다. 그러나 만약 그 모든 요소를 하나의 주제로 끌어 모을 수 있다면 그 연극은 어떠한 무대보다도 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얀 동그라미 이야기’는 그러한 연극으로 향하는 좋은 시도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산만한 느낌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도 조금씩은 남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큰 어긋남 없이 여러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조금 어설퍼도 이 연극이 어떤 이상향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지가 보였고, 그래서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연극이었다. 


[이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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