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많이 듣느냐 하면 많이 듣는 편이긴 하지만,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시간은 또 드물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좋아하긴 하지만 제대로 들을 기회가 드물었다.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 말고 바로 내 귓가에 울려퍼지는 음악을 듣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이 비루투오시 이탈리아니 내한 공연에 갈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공연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대망의 공연날, 자리는 생각보다 상당히 앞쪽이었다. 무대가 바로 앞에 있어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보일 것 같은 거리감. 공연이 시작되고 연주자 분들이 입장한 후 기분 좋은 예감은 사실로 변했다. 관객들을 항한 작은 웃음 하나하나와 연주자들 서로 교감하는 작은 눈짓들이 보여 마치 나조차 무대의 일부가 된 것 같은 현장감을 느꼈다. 공연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감성적이었다. 현이 끊어질 정도로 격정적인 연주를 보여주다가도, 어느 순간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하며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주의 풍성함이 관객들에게 계속 전해졌기 때문일까 관객들의 반응도 열렬했다. 브라보, 브라보! 그러면 연주자 분들은 그에 반응하듯 씨익 웃으시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공연 중에는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알베르토 마르티니의 솔로 파트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정말 감탄을 멈추지 못할 정도의 연주였다. 초반부의 솔로 파트에서는 천국을 거니는 듯한,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선율에 흠뻑 젖어들었다. 바이올린이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알베르토 마르티니의 격정적인 연주는 그 이후에서도 뇌리에 깊게 남았다. 그의 열정 넘치는 연주가 바이올린 활의 일부를 끊어지게 할 정도로 강렬했던 것이다. 정말 굉장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앙상블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압도적인 무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현악기만을 통해서 이런 풍성하고 다양한 소리와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가지고 있던 현악의 멜로디에 대한 고정관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현악은 생각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동시에 섬세했으며, 소리와 감정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그리고 중간에 현악기와는 다른, 독특하고 선명한, 어떤 맑은 소리가 들려 무엇인가 했었다. 그 소리는 피아노처럼 생겼으나 피아노는 아닌 한 악기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바로크 시대의 악기인 하프시코드였다. 현악의 매력에 빠짐과 동시에 하프시코드의 매력에도 푹 빠졌다. 마치 나 자신을 바로크 시대에 있는 것 처럼 느끼게 만드는 무대였다.
들었던 곡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후반부 곡이었던 사계와 앙코르 곡들이었다. 사계는 사실 봄 밖에 귀에 익지 않았었는데, 다른 곡들과 함께 이어 듣게 되니 마치 한 해의 풍경을 미리 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각각의 악기들이 때로는 서로 같게, 때로는 서로 다르게 부드러이 교차하며 어우러지는 음들이 귓가를 꽉 채웠다.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진 앙코르에서는 귀에 익은 곡들이 나와 마지막까지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박수갈채와 브라보 소리. 박수를 치다가 팔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양 손을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놀라운 공연이었다.
이 비루투오시 이탈리아니. 공연장을 나오면서 그 다음 공연을 기대하게 되는 그런 공연이었다. 한번 더 내한한다면 이번에도 주저않고 달려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