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레알 솔루트 >

글 입력 2016.05.2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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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빛과돌 포스터.jpeg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연극 <레알 솔루트>를 감상했다. 막막한 시대에 갇힌 상태로 활로를 찾아야 하는 청춘 세대에게 고하는, 창작집단 빛과돌의 메시지는 아주 직접적이고 저속할 수도 있는 일상적인 언어들을 통해 생생하게 와 닿았다.




 시놉시스

 고등학교 동창인 형석과 민준 그리고 달구는 올 해로 서른 살이 된 암울한 청춘들이다.
 형석은 일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주류백화점’을 물려 받았으나 길 건너편에 대기업이 거대자본으로 골목상권에 비집고 들어온 ‘종합 주류 할인 창고’에 수완에서도 물량에서도 밀려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 무리하게 대출까지 받아서 ‘종합 주류 할인 창고’의 미끼 상품 전략을 흉내 내 보았으나 그마저도 실패하여 가게의 고급술들에는 모두 차압 딱지가 붙은 상태이다.
 셋 중 유일한 기혼자인 달구는 형석의 가게 건물 지하에 있는 목욕탕에서 때를 민다. 달구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내가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형석의 가게 화장실을 자주 사용한다. 달구에게는 연년생인 네 명의 아이가 있는데 아내는 한 명을 더 낳자고 종용하고 있다. 지금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에 부친 달구는 아내의 요구를 피하느라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민준은 어플 개발로 한 몫을 챙기려는 IT 꿈나무이다. 민준이 개발하는 어플은 항상 기발하긴 하지만 투자자의 마음을 끌기에는 한 끗이 부족하다. 그러던 중 민준이 대박이라고 심혈을 기울인 어플이 투자자를 못찾자 그만 건달형제들이 운영하는 사채 돈에 손을 대고 만다. 하지만 출시한 어플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민준은 건달형제들에게 콩팥을 적출당할 위기에 봉착한다.

 한달 전 형석과 민준은 크게 싸웠다. 형석이 가게를 살리기 위해 대출받은 돈을 민준이 자신의 어플 개발비에 투자하라고 종용하다가 크게 다투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한 것이다. 이에 달구는 어딘가에서 구한 ‘레알 솔루트’라는 몹시 좋은 술로 이들을 화해시킬 자리를 마련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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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백화점'이라는, 형석의 아버지가 남겨주신 공간을 통해 형석을 비롯한 민준, 달구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아주 암울하기 그지없다. 형석은 주류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으나 건너편에 대기업이 차린 '종합 주류 할인창고'에 밀려 가게 곳곳에 차압딱지가 붙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달구 역시 세신사로 생활하면서 연년생의 자녀 넷을 두고 있고 아내가 다섯째를 낳고 싶어하는 상황이라 심적인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더해 민준은 어플 개발을 통해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하는 것을 꿈꾸지만 제대로 투자자를 찾지도 못해 사채를 썼을 뿐더러 결과물인 어플이 쪽박을 차는 바람에 경제적, 신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



세신사, 자영업자, 개발자라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들은 무언가에 대한 박탈감,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는 현 시대 청춘들을 대변한다. 자신의 삶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고, 현실을 타개하고자 분투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나아지기는 커녕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려움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극 중 인물인 민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력하지 않는 순간 뒤처지는 것"이라 표현한다.


정말 그렇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어서는 안된다는 중압감에 우리는 매순간을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막상 그 노력의 결과는 아주 단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 민준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노력해야 고작 현상유지를 이룰까 말까 한 정도. 달구의 입을 빌어 표현한 것처럼, "돈이 1등이고 사람이 2등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결국 물질을 좇아 매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괄목할 만한 물질의 축적 혹은 성공이라는 아웃풋을 산출해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물질이 우선시 되면서 더욱 삭막해지기도 한다. 마치 투자자가 필요해서 형석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민준과,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게를 지키기 위해 대출금을 가게를 위해 쓰고 민준의 투자 요청을 거절했던 형석의 사이가 소원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민준과 형석의 사이가 서먹해진 것을 달래기 위해 달구가 '레알 솔루트'를 가지고 와서 화해를 도모하는 모습은 아주 순박하고 귀여웠다. 술을 마시기 직전까지도 돈 문제로 투닥투닥 하던 친구들은 달구의 중재로 술을 함께 나눠 마시는데, 아주 귀한 술이라는 달구의 말처럼 그들은 술을 아주 달게 마셨다. 술을 마시며 느끼는 감상을 온 몸으로 표현하면서. 그렇게 좋은 기분을 더욱 고조시키려 라디오를 튼 그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레알 솔루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잠시 멈춘다. 돈이 급한 형석과 민준의 귀에, 레알 솔루트가 천만원을 호가하는 아주 귀한 술이며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이 뇌리같이 박혀든 것이다. 달구의 중재로 화해하고 우선은 돈 문제를 접어두었던 그들은 그 때부터 달구가 누구에게서, 어떻게 이 술을 받았는지를 분석하며 급기야 레알 솔루트를 주었다는 그 사람의 집에서 술을 훔쳐와야겠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시켜나간다.



그러나 형석과 민준이 꿈꾸는, 레알 솔루트 갈취를 통해 공공(형석과 민준이라는 개인 둘이 모여 만들어진 공공)의 이익을 실현한다는, 이른바 민간소득재분배의 기제는 끝내 작동되지 못한다. 극의 절정에 이르러 드러나는 달구의 역할은 바로 여기서 빛을 발했다. 극의 초중반에서 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 논리와 대기업의 골목 상권 죽이기를 통렬하게 꼬집던 민준과 형석에 비해 달구는 비교적 소소하고 감초 같은 역할인 듯해 보였다. 그러나 절정에서, 달구는 '레알 솔루트'를 통해 자본주의의 삭막한 논리에 압도되어 있던 민준과 형석의 모습, 즉 우리의 또 다른 내면의 모습을 통렬하게 꼬집었다.




극의 결말에 이르러 다시금 화해하는 세 친구의 모습, 더불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식을 통해 다시금 경제적인 성공을 꿈꾸며 춤추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었다. 물질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회,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수저론으로 구분해서 그 답답한 현실을 토로하기도 한다. 주저 앉아버릴 것 같다가도 결국, 우리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희망 같은 무언가를 붙잡고 일어난다. 연극 <레알 솔루트>에서는 시종일관 그것이 웃음으로의 승화 그리고 우정과 인간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굉장히 무겁고 암울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그러나 <레알 솔루트>는 바로 현실에서 사용할 것 같은, 아주 날 것의 욕설들과 표현들을 고스란히 사용하여 사회의 답답하고 부조리한 현상들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진용석 작가 및 연출이 표현한 것처럼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웃음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냈기 때문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작위적이게 느껴지지 않고, 풍자적이면서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칫 작품의 주제가 경홀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아주 세련되게, 풍자와 해학을 잘 담아냈다고 느꼈다.



작품의 내용에서부터 배우 손성민, 한규원, 장우성의 연기, 나아가 연출까지 모든 것이 아주 조화로운 작품이었다. 이번 <레알 솔루트>가 창작집단 빛과돌이 만든 네번째 창작극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다섯번째 창작극은 어떤 작품이 될지, 그리고 무엇을 전해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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