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랭스와 아비뇽으로의 여행

글 입력 2016.05.0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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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와 아비뇽으로의 여행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아마도 2001년 연초의 겨울이었을 것이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사숙하는 무슈 함의 자가용을 타고 파리에서 랭스로 향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 랭스에 도착한 우리는 그 유명한 랭스 대성당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무슈 함의 오랜 지기들인 화가 몇몇과 저녁을 들었다.
랭스 대성당 하면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로시니의 오페라 ‘랭스로의 여행’이다. 나폴레옹의 몰락 직후 부르봉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10세의 대관식이 열리는 랭스 대성당으로 향하는 다국적 인물들의 천태만상을 그린 ‘랭스로의 여행’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로시니의 오페라다. 로시니의 마지막 이탈리아어 오페라로 1825년에 작곡된 ‘랭스로의 여행’을 떠올리며 나는 당시 랭스행을 즐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오페라 속 등장인물들처럼 나 또한 랭스 대성당에는 당도하지 못하고 말았다. 대신 랭스 오페라극장을 지나쳤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찌든 때로 얼룩진 퇴락한 오페라극장 외관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비록 극장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극장 밖을 서성거려야 했지만 나는 유서 깊은 랭스 오페라극장에 보물 같은 것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랭스 오페라극장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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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스 오페라극장 정면 / © l'Opera de Reims


1873년 랭스 태생의 건축가 알퐁스 고세에 의해 설계되어 개관한 랭스 오페라극장은 최초 1200석 규모로 지어진 이탈리아 양식의 극장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개,보수를 거치면서 지금의 790석으로 축소된 객석수와는 상관없이 이 오페라극장은 한 달에 한 편 꼴로 오페라를 자체제작해서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20만이 채 안 되는 적은 인구수에도 이렇듯 적지 않은 오페라를 상연하는 랭스 오페라극장의 저력은 레무아(랭스시민)들의 식지 않는 오페라 사랑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당장 2015/2016 시즌 동안 랭스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를 일별해 보면, 구노의 ‘로메오와 쥘리에트’를 시작으로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야나체크의 ‘영리한 암여우’, 푸치니의 ‘나비부인’, 미터러의 ‘마르타’,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 그레트리의 ‘푸른 수염’, 오펜바흐의 ‘달 여행’ 등 다양한 메뉴 일색이다. 랭스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샹파뉴 아르덴 리리크 합창단이 랭스 오페라극장을 지탱하는 두 앙상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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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스 오페라극장 객석 / © l'Opera de Reims


몇 달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되던 1차세계대전의 고색창연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1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당시 미국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랭스를 방문해 폐허로 변해버린 랭스 대성당의 잔해를 둘러보던 장면이 인상깊었다. 이로부터 27년이 흐른 1945년 5월 9일,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의 대표 데니츠 제독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장소 또한 랭스였다. 그만큼 랭스는 유럽 양차대전의 종식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도시로 역사에 양각되어 있는 것이다.
그 언젠가 랭스를 다시 방문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랭스 대성당과 랭스 오페라극장에 들어가서 미사에 참석하고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실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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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스 오페라극장 천장화 / © l'Opera de Reims



- 액상 프로방스와 오랑주 사이에서 만난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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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 정면 / © l'Opera Grand Avignon


그로부터 5년 여가 흐른 2006년 7월 8일 토요일 이른 오후의 2시간 가량을 나는 아비뇽에 있었다. 액상 프로방스 음악제를 2박 3일 간 관람하고 오페라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오랑주로 이동하는 사이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아비뇽에 내렸던 것이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비뇽 거리 곳곳에서 물결치던 연극인들의 행렬이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프랑스에서도 제법 이름 높은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관만 놓고 보면 프랑스에서도 손꼽힐 만한 호화로운 극장이었다. 1825년에 개관한 아비뇽의 첫 번째 오페라극장이 1846년 연초 화마로 소실되자 같은 장소에 재차 건립된 현재의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은 1120석이라는 제법 널찍한 객석수를 보유하고 있다. 랭스 오페라극장처럼 19세기에 유행하던 이탈리아 양식으로 건축되었지만 장대함에 있어 랭스 오페라극장을 앞지르고 있다. 오페라를 중심으로 발레와 바로크음악 및 오케스트라 콘서트, 실내악, 연극 등 거의 모든 공연예술장르들을 포괄하는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의 2015/2016 시즌 라인업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르토크의 ‘푸른 수염 영주의 성’과 외트뵈시의 신작오페라 ‘피 흘리지 않고’로 스타트를 끊자마자 헨델의 ‘아치스와 갈라테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도니체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퍼셀의 ‘요정의 여왕’, 오펜바흐의 ‘파리지앵의 삶’, 들리브의 ‘라크메’,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비제의 ‘카르멘’ 등의 오페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것이다. 오페라와는 별도로 9편의 발레 및 이 극장의 상주악단인 아비뇽-프로방스 레지오날 오케스트라가 관현악 무대를 장식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밖에도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에서는 연중 쉴 새 없이 모종의 무대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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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 객석 / © l'Opera Grand Avignon


흔히 아비뇽 하면 매년 7월 펼쳐지는 아비뇽 연극제만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에도 들러 오페라와 발레, 클래식음악의 진수를 만끽해볼 것을 권한다. 물론 이런 나 자신조차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에서 무언가를 본 적은 없다. 2시간의 아비뇽 체류를 마치고 이동한 오랑주 코레지 무대에서 툴루즈와 몬테카를로, 아비뇽 오페라극장의 연합합창단이 수놓은 베르디 ‘아이다’의 위력적인 음량만을 경험했을 뿐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랭스처럼 아비뇽을 다시 방문하는 날에는 반드시 그 곳 그랑 아비뇽 오페라극장의 객석에 앉아 오페라와 발레의 향연을 마음껏 즐길 생각이다.

랭스와 아비뇽에 몇 시간 머물렀지만 나는 이 두 프랑스 도시가 품고 있는 음악의 진수를 경험하지는 못했다. 언제 랭스와 아비뇽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이 두 도시의 오페라극장에 들러 오페라를 감상하고 난 후의 소회를 나에게 들려줄 수는 없는지. 아니면 차라리 내가 그 두 도시로 떠나는게 빠를는지.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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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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