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보다 진한 물의 형제애, 연극 형제의 밤.

글 입력 2016.04.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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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우리는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피를 나눈 이들간의 정이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들간의 정보다는 두텁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혈연주의는 수많은 아침드라마에서 잘 드러난다. 드라마에서는 생면부지거나 철천지 원수여도 결국 혈연을 따라가는 이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혈연'주의는 뿌리깊게 박혀있으며,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답습되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 지고있는 현재에도 저러한 이데올로기때문에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가족은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는다. 형제의 밤은, 이러한 '비정상 적인' 가족 형태에서 출발한다.

형제의 밤은 부모님의 사고 이후부터 시작한다. 연소와 수동이라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함께 묶일 수 있던 것은 그들의 부모님의 덕택이었다. 각각 혈연관계인 연소와 그의 아버지, 수동과 그의 어머니의 쌍이 존재하고, 이 혈연의 쌍이  '결혼'이라는 사회적으로 용인 된 결합을을 했기에 그들은 가족으로 엮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연소'와 '수동'이라는, 혈연적으로 묶이지 않은 가족구성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혈연주의 이데올로기 적으로 '정상적'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가족형태였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살아계실때 까지만 해도 이들은 '가족'으로 존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을 엮어주던 '부모님'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부터, 그 둘의 관계는 미묘해진다. 가족인. 혹은 가족이었던. 혹은 가족 이었을. 미묘한 관계.



"우리가 뭔데, 가족? 웃기지마!" 


 그 관계 속에서 수동은 그 미묘한 '가족'관계를 청산코자 한다. 각각 '혈연'으로 묶여있던(그렇게 믿었던) 쪽의 것만을 가지고 '가족'이란 울타리를 해체하자 제안한다. "우리가 뭔데, 가족? 웃기지마!" 라는 대사에서러나듯,  수동에게 연소는 '어머니가 결혼한 남자의 아들'이었고, 혹은 '아버지의 아들'이었을 뿐 '결혼'이나, '혈연'으로 묶이지 않았기에 '가족'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연소는 '아무것도 엮일 것이 없더라도', 부모님과, 수동과 함께했던 15년여간의 세월이 속에 수동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사실상 아버지와 결혼을 했을 뿐인자를 '어머니'로 받아들이며, '어머니'에 대해서 때때로는 수동이 대하는 것보다 더욱 소중히 대한다. 혈연도 무엇도 없지만, 연소에게는 어머니도 수동도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수동의 막말에 화도 내고, 몸싸움도 벌이면서도 '수동'을 버릴 수 없던 것이다. 

여기까지보면 '가족'에 대한 새로운 관념, 즉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변화 된 가족 이데올로기를 가진 연소와, 혈연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동의 대립으로 보인다. '수동'은 혈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며 '연소'는 현대사회로 오면서 변한 가족이데올로기를 가진, 현대적 사상을 가진 인물로 규정짓고 그 둘의 대립 중, 결국 '연소'가 이김(가족의 형성)으로써 혈연이데올로기의 몰락을 나타내는 듯도 보인다. 



"나, 어머니 아들 아니야."


하지만 '형제의 밤'은, 이 둘의 대립을 그렇게 뻔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흘러가게 두지 않는다. 형제의 밤은 극 중 "나, 어머니 아들 아니야." 라는 수동의 고백과, "나 아버지 7살때 처음봤다'는 연소의 고백으로 우리가 '당연스레' 생각하고 있던 '아버지-연소', '어머니-수동'의 혈연관계를 깨버린다. 극 내내 관객들은 각각의 쌍이 혈연관계일것이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어머니가 수동을 데려왔고, 아버지가 연소를 데려왔다.'는 것 뿐, 그 둘이 혈연관계일 것이라는 정보는 그 어디에도 없었는데 말이다. 형제의 밤은, 그렇게 관객이 가지고있던 고정관념조차 깨버리며 '가족'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이는 수동의 고백과, 그에대한 연소의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머니와 혈연관계가 아니라서 혈연관계로 추정되는 '수연'이 나타나면 자신은 '어머니'를 뺏기게 된다고 절절하게 울부짖는 수동에게 연소는 담담하게 답한다. 그래서 뭐가 어쨌느냐고 말이다. 결국 수동이 믿었던, 또 관객들이 믿었던 어머니-자신, 아버지-연소로 엮인 관계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개인들의 집합'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들은 실은 그 누구도, 심지어 '혈연주의'를 신봉한다고 믿었던 수동조차도, '혈연'이 아니었다. 관용적으로 표현하자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던 것이다. 수동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자신이 혈연관계가 아님에 오랜기간 절망해 왔다. '어머니의 혈연'의 존재 가능성에 그토록이나 두려워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혈연'관계가 나타나면, '혈연'이 아닌 자신은 '가족'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뭐 어쨌는데?"


 하지만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있던 연소는 '그게 뭐 어쨌느냐'고 답한다. 연소에게는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의심 할 여지가 없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께해왔던 그 세월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묶여있던 그 세월들은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어 주었다.  연소에겐 '피'가 섞이든, 섞이지 않았든 그들이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소는 아버지와 혈연관계일지도 모르는 '수연'의 존재가 두렵지 않다. 아버지, 어머니와 혈연관계인 존재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가능성'일 뿐. 애초에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기에, 새로운 혈연의 등장은 그의 '가족'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그에게 '혈연'의 여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극은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떠나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혈연'과, '결혼'이라는 제도적 관습을 넘어서 '가족'을 만드는 무언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 각각의 개개인들이 모여서 '가족'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즉 더 이상은 '가족'이란 개념에, '혈연'과 '결혼'이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형제의 밤'이라는 제목에서의 '형제'는 우리가 지금껏 받아들여왔던 그러한 '형제'들과는, 분명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물은 피보다 진하다!"


형제의 밤은 이처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부정하며, '피보다 진한 물'의 저력을 보여준다. '혈연'이 아님에 그토록 절망하던 수동은, 연소의 말에 조용히 수긍한다. 그리고는 아까 본인이 거절했던 '빗물 소주'를 연소에게 권한다. '빗물 소주'는 결코 둘이 짠 하고 마시는 법이 없다. 한번은 연소가, 한번은 수동이 서로에게 권하고 거절당한 후 혼자 연달아 두잔을 마신다. 하지만 '짠'을 하지 않았더라도, 함께 마시지 않았더라도. '빗물 소주'를 권한 연소의 마음을 수동이 이해 한 순간, 그 마음으로 수동이 연소에게 '빗물소주'를 건넨 순간 그 둘은 강하게 이어졌다. '빗물 소주', 즉 '물'로서 그들은 피보다 진하게 이어진 것이다. 마치 샴쌍둥이와 같던, 수연과 같던, '수'와, '연'과 같던 둘의 마지막 모습은 그들의 이어짐을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그들은, '피'보다 진한 물로, 혈연보다 강렬한 정으로 '가족'으로 엮였다. 마치 한 몸으로 태어난 듯,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말이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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